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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작가 Nov 23. 2022

너도 여행 가고 싶니?_브라티슬라바에서 미아가 될 뻔

9. 브라티슬라바에서 미아가 될 뻔했다.

 부다페스트에서 한 달 살기를 하던 중에 당일치기로 어디 다녀올 만한 곳이 없을까 알아봤는데 슬로바키아의 수도인 브라티슬라바를 많이들 다녀오는 거 같아서 바로 버스를 예약했다. 찾아보니 1박을 할 만큼 볼 게 많은 곳이 아니고 볼거리가 한 곳에 모여있다길래 당일치기로 계획을 짰다. 나는 위에 사진에 있는 저 동상 하나만 보고 간 거다. 그 외에는 잘 모르겠다. 그저 약간의 지루함을 달래주기 위해 당일치기로 다녀온 것이니까. 


 슬로바키아는 의외로 유로를 사용하고 물가가 낮은 편이다. 다만 어디든 마찬가지겠지만 사람 손을 거치면 비싸다. 버스 터미널에 내리자마자 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공사현장뿐이었다. 여기저기 높은 빌딩을 올리고 있었다. 수도를 본격적으로 개발하는 것인지, 여행을 다 마치고 나서 느낀 건데 중심부에 관광지를 몰아두고 나머지는 다 개발하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터미널 근처는 지금 가면 빌딩들이 다 올라갔을 테니 약간 여의도 같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생각보다 유럽 같지 않는 도시구나 싶었지만 터미널을 벗어나 관광지의 중심부로 가니까 역시나 유럽은 유럽이었다. 

 이렇게 보니까 여기가 브라티슬라바인지 서울 여의도 한강 공원인지 구분이 안 간다. 그만큼 도시적인 도시다. 도시적인 도시라는 말이 좀 웃길 수 있는 게 저 강을 등지면 누가 봐도 유럽풍의 건물들이 즐비하다. 그래서 내가 브라티슬라바에서 가장 많이 느낀 게 바로 이질감이다. 묘하게 안 어울리는, 유럽이라고 다 옛날 건물을 그대로 유지할 거라는 건 편견이겠지만, 2016년에 비엔나에서 도나우강을 생각 없이 걷다가 마주친 수많은 빌딩들이 기억이 났다. 그때도 굉장한 이질감이 들었는데 이 도시 또한 마찬가지였다. 


 의외로 쇼핑하기 좋은 도시다. 터미널에서 한 5분 정도만 걸어가면 대형 쇼핑몰이 하나 있는 데 있을 건 다 있다. 구경하기 괜찮고 부다페스트가 쇼핑하기 그리 좋은 도시는 아니어서 차라리 브라티슬라바나 비엔나가 쇼핑은 괜찮을 것이다. 


 구경을 다 하고 이제 버스 터미널로 돌아가서 버스 시간을 확인했는데 아무리 봐도 우리가 타야 할 버스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이 문제인지 가볍게 피자를 먹으면서 생각해보고 찾아봤지만 아무리 봐도 연착이나 취소에 대한 내용이 없길래 단순 오류라고 생각했다. 그냥 전광판에 우리가 타야 할 버스가 안 떴다고 생각하며 버스를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았다. 그 와중에 터미널이 문을 닫아야 한다고 나가라고 해서 그 추운 겨울에 밖에서 버스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근데 터미널을 8시에 닫기도 하나? 그 뒤에 버스가 없나? 우리와 같은 버스를 타는 외국인 형을 만났는데 그 형이 알려주기를 버스가 연착이 되었다는 메일을 받았다는 것이다. 부랴부랴 나도 메일함에 들어가서 봤는데 

 무려 45분이나 연착이 된다는 메일이 와있었다. 그래서 45분 정도면 충분히 기다릴만하니까 열심히 기다렸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올 기미가 안 보여서 메일함을 보니 계속 연착이 된다는 메일이 왔다. 근데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는 게 터미널에도 전광판에 띄워줘야 하는 거 아닌가? 플랫폼에 가서 기다렸는데 버스가 연착이 된다는 표시가 없어서 순간 잘못 온 줄 알았는데, 친구들과 이제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버스가 제시간에 올 생각은 없고 계속 연착이 되는 걸 보아하니 무작정 기다리기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방을 잡고 내일 아침에 갈 것인지 아니면 이왕 나온 김에 다른 도시를 가서 2박 정도 보고 올 것인지 고민을 했지만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왜냐면 우린 정말 당일치기할 생각으로 아무것도 들고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333분에서 300분으로 줄어들었다고 친절히 메일을 보내준다. 저걸 보고서 희망을 품었지만 그냥 희망만 품었고 버스는 정말 칼같이 5시간 뒤에 왔다. 버스가 올 때까지 우리는 터미널을 빙빙 돌면서 끝말잇기를 했다. 내가 지금까지 끝말잇기를 한 순간을 다 합쳐도 이날 끝말잇기를 한 시간보다 적을 거 같다. 너무 추웠는데 어디 들어갈 곳은 없고 덜덜 떨면서 끝말잇기를 하며 버스를 기다렸다. 긴 기다림 끝에 버스가 와서 버스를 탔고 그렇게 우리는 해가 뜨고서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덕분에 기억에 안 남을 수가 없을 당일치기 여행이 되었다. 그리고 세상이 아무리 내 마음대로 안 된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마음대로 안 될 줄은 몰랐는데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고 생각을 했다. 도시-> 도시 이동할 땐 꼭 메일을 확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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