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대학병원에서 추가 촬영한 것과 조직검사 결과를 합한 최종 진단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비정형 세포라는 암 직전 단계의 조직이 나왔다 보니 극단적인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는데
그 생각의 끝은 인생의 허무함에 도달했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것을 부정하는 건 절대 아니고 쓸데없는 것에 감정을 소모한 게, 그게 허무했다.
상사의 어투가 조금 달라지면 혹여 실수한 게 있었는지 자기 검열을 하고
다른 사람 기분 상하지 않게 과하게 친절했던 것.
작은 실수에 겁먹고 사소한 일로 가족과 다퉜던 날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전혀 그럴 필요 없었는데, 아니 그러지 말걸 하는 아쉬움이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겉으로는 쿨한 척, 괜찮은 척, 신경 안 쓰는 척했지만 성격상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오랫동안 되새기고 붙잡는 경향이 크다.
‘무던해 보이지만 속으론 무지하게 꼬장 한 스타일’이라고,
엄마가 날 간파해 한 줄로 정의한 문장이다.
회사 점심을 먹고 엄마와 10~20분 정도 통화하는 게 거의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주된 대화 내용은 뭘 먹었는지, 다른 친척들 안부 전화는 없었는지,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서로를 체크하는 내용이다.
거의 매주 주말마다 보는데도 우린 서로가 왜 그리 애틋하고 걱정되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3년 전 소포성 림프종을 진단받고 6개월간의 항암치료와 2년간의 유지치료를 받았다.
다행히 치료받는 동안 약 부작용이 없어 다른 약으로 바꾸는 일도 없었고
지금은 완전관해로 진단받아 6개월마다 CT촬영으로 추적검사를 받고 있다.
엄마는 어떤 대화여도 마지막은 ‘너 자신을 가장 사랑하라’고 마무리 짓는다.
죽음의 문턱에 한 번 갔다가 살아났다 생각하니 더 이상 무서울 게 없더란다.
그동안은 자신만 참으면 넘어갈 일이라면 기꺼이 참아왔고 무엇이든 잘 해내고 싶은 욕심도 많아
뜻대로 잘 안되면 속으로 삭이느라 애쓰셨다고 한다.
엄마는 지금까지도 그 응어리가 병이 된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이젠 그 어떤 일보다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신다.
지금도 잘하는진 모르겠지만 어릴 땐 거절이나 싫은 소리 하는 게 어려웠다.
솔직히 지금도 직장에서 상대방에 책임이 있어도 강하게 말하지 못하고 완곡하게 돌려 말하는 편이다.
나는 상대방한테 짜증이 나는데 당사자에게 풀 수도 없으니 혼자 마음을 가다듬는 일도 있다.
잠깐 밖을 걷거나 냉수 마시기로 그 순간을 참았는데 이젠 생각 자체를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모를 수도 있지’ 혹은 ‘저 사람도 실수했네? 그럼 나도 실수해도 너무 겁먹지 말자, 윈윈이니까.’처럼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기대치를 조금 낮추고 너그러워 지기로.
세상에 사람들은 다양하고 나 자신조차도 매번 같은 인성이지 않다.
이렇게 제각각인 주변을 다 맞출 수도 없는데 나보다 타인을 더 위하고 눈치 보면 쉽게 상처받는다.
그러지 말자. 조금은 내가 세상의 중심일 필요도 있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