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 버리기

by 은조

지난 금요일 대학병원 첫 외래를 다녀왔고 내가 가져간 조직 샘플로 조직검사를 다시 할 예정이다. 그리고 검진센터에서 촬영한 사진 파일 화질이 좋지 않아 추가로 확대 촬영을 하고 귀가했다. 다시 시작된 일주일간의 기다림. 너무 걱정 안 해도 된다는 교수님 말씀에 마음을 놓아 보려다가도 혹시라도 다른 병변이 발견되진 않을까, 다른 안 좋은 결과가 나오진 않을까 하는 암울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계획했던 대로 촬영용 부케를 만들기 위해 꽃시장도 가고 날이 너무 좋아 간단히 파스타를 만들어 옆 동네에서 피크닉도 했다. 걱정한다고 결과가 바뀌진 않으니 내게 주어진 시간 동안은 행복하자.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증식한다. 이상하게 나는 암울한 생각이 가득 차 마침내 우울감이 들기 시작하면 잠이 쏟아졌다. 스스로 뇌의 전원을 꺼 우울로부터 지키려는 방어기제인 걸까? 단순히 ‘괜찮을 거야’처럼 근거가 뒷받침되지 않는 위로는 전혀 와닿지도 위로가 되지도 않고 정말로 고민거리가 해결이 돼야만 그제야 걱정을 그만둘 수 있었다. 겉으로는 허허- 하며 무던해 보이지만 속은 스스로도 피곤할 정도로 예민한 사람이다. 이래서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건가 보다.



실은 안 그러려고 무던히 애써보기도 했다. 잡생각이 들지 않게 비트가 빠른 k-pop을 들어보기도 하고 어려운 인문학 책을 읽어보기도 했다. 평소 좋아하는 애니메이션도 보기도 한다. 하지만 순간뿐이었다. 다시 우울해지니까 기운 없이 잠이 오고 잠을 안 자려 노력하니 계속 군것질이 떠올랐다.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그럴 때 가끔 어머니가 해주신 말씀이 떠오른다. “남들 다 하하 호호 걱정 없이 사는 것 같고 너한테만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것 같고 그러지? 아냐. 남들 다 속에 응어리 하나씩은 품고 살아. 그걸 밖에선 내색하지 않는 것뿐이지. 네가 그 사람들이랑 살아 봤니?” 맞다. 나만 힘든 건 아니다. 아니,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다들 하루하루 살아가는 중이다.



예민한 것도 타고난 기질이라 바꾸는 게 어렵겠지만 내가 살려면, 행복하려면 조금은 내려놓을 줄 알아야 했다. 우선은 장기적인 금전 계획을 멈췄다. 막 ‘n억 모으기’ 같은 거창한 계획은 아니었지만 신혼집 마련을 위한 저축 계획은 계속하고 있었다. 매달 가계부를 적으면 항상 예산보다 더 많이 지출했는데(예산이 아주 타이트한 편) 초과 지출이 발생하면 목표 금액에서 멀어지는 게 수식 결과 셀로 바로 보이니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그래서 신혼집은 처음부터 욕심내지 않고 능력이 되는 선에서 구하기로 하고 매달 지출은 기록하되 목표치보다 초과 지출해도 고민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대신 쓸데없는 지출은 없다는 가정 하에.



그리고 너무 먼 미래를 계획하지 않기로 했다. 대문자 J형 인간이라 뭐든지 계획하고 지켜내고 체크리스트에서 하나씩 지워야 마음이 편한 사람인데 반대로 생각하면 그것들을 지키지 못하면 큰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기도 하다. 정말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 이상 너무 장기적인 계획이나 빡빡한 계획은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플랜 A가 지켜지지 못할 걸 대비한 플랜 B, C, D…를 세울 것 같긴 하지만 조금 어긋나는 것에 마음의 면역을 기르기로 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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