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있어 더 또렷이 보이는 대한민국!
얼마 전,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 지었다.
남은 한 경기를 남겨둔 시점에서 이미 티켓을 손에 쥔 한국은, 내년에 열릴 북중미 월드컵 무대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고 있다.
'본선 진출'이라는 말이 이젠 익숙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 안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가 담겨 있다.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아시아 예선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11번 연속으로 세계 무대를 밟는다는 건, 그 자체로 위대한 일이다.
그건 단지 잘하는 선수가 많아서 가능한 게 아니다. 그들은 ‘함께’ 뛰는 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축구 얘기를 하다 보면
꼭 떠오르는 나라가 있다.
중국.
세계 인구 1위, 세계 2위의 경제 대국.
우주로 위성을 쏘아 올리고, 인공지능과 로봇기술에선 이미 선진국 수준.
스포츠 분야에선 탁구, 체조, 다이빙 등 개인 종목에서 거의 천하무적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축구만 하면 조용하다.
이번에도 중국은 월드컵 본선에 오르지 못했다. 또 탈락이다.
"16억 인구에서 축구 잘하는 11명 못 뽑냐?"는 말, 이젠 농담처럼 들리지만, 웃을 일만은 아니다.
문제는 실력이 아니라 '신뢰'에 있다.
중국은 종종 ‘서로를 믿지 못하는 사회’라는 평을 듣는다. 줄보다는 새치기, 협력보다는 경쟁, 양보보다는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라는 말이 익숙한 곳.
그러니 축구가 되지 않는 것이다.
축구는 기술이 아니라 ‘관계’로 하는 경기다.
모든 패스는 믿음에서 시작된다.
“내가 넘긴 공이 돌아올 것이다”는 신뢰 없이는 아무리 뛰어난 개인도 경기를 풀 수 없다.
한 명이 아닌 열한 명이,
서로를 믿고, 기다리고, 양보하며
같은 방향을 바라볼 때
비로소 골문은 열린다.
그래서 축구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중국의 단체 스포츠 부진은 단지 운동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 깃든 조직문화, 인간관계, 신뢰의 부재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반대로 한국이 11회 연속 본선에 오를 수 있었던 건, 그들이 기술만이 아니라 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스타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믿고 함께 뛰었다. 이건 단지 경기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신뢰 없는 사회에선 패스도 없다.
공을 넘기지 못하면, 골도 없다.
그리고 그건 월드컵만의 문제가 아니다.
축구는 11명이 함께 뛴다. 정치는 수천만이 함께 산다.
저번 주, 우리나라는 새로운 정부를 맞이했다.
좌파와 우파, 이념과 진영, 그런 이름표를 잠시 내려놓고 우리는 다시 한 팀이 되어야 한다.
승패를 넘어선 ‘함께’의 가치.
경쟁을 넘어선 ‘협력’의 미덕.
이제는 나의 목소리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때다.
우리 모두가 서로를 조금 더 믿을 수 있다면,
우리 사회도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공을 넘길 수 있는 용기, 그 공이 돌아올 거라는 믿음, 그게 바로 진짜 강한 팀의 조건이다.
11번 연속으로 월드컵 본선에 오른 우리.
이젠, 11명만이 아니라 5천5백만이 함께 뛰는 사회가 되기를... 서로를 믿고 패스할 줄 아는 나라가 되기를...
그리고 이 모든 바람을,
지구 반대편에서 대한민국을 그리워하며 지켜보는 한 재외국민의 시선에서 전하고 싶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나는 대한민국을 사랑한다.
그 땅에서 태어났고, 그 언어로 꿈을 꾸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 나라가 잘되기를, 더 멋지게 성장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하고 있다.
이제 우리 모두가 한 팀이라는 마음으로,
그라운드를 넘어 삶의 무대에서도 함께 뛸 수 있기를...
그게 내가 바라는 가장 소박하고 진심 어린 골이다.
추신.
저는 비평가도, 평론가도 아닙니다. 그저 ‘작가’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저만의 작은 시선을 글로 옮겼을 뿐입니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신 중국 동포분들이나 화교분들 중
마음이 불편하셨다면, 그건 결코 제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를 폄하하기보다,
우리가 함께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진심 어린 바람에서 비롯된 이야기였습니다.
이 작은 글이 오히려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