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를 업으로 삼는다는 건 단순히 불과 칼을 다루는 일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 주방에 서며 천천히 깨달은 것은, 음식이 결국 사람의 마음을 담는 그릇이라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깨달음이 내 안에 뿌리내리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쉐라톤 호텔 주방은 5성급의 위용만큼이나 거대한 세계였다.
메인, 파스타, 그릴, 디저트 등 수많은 전문 주방이 층층이 나뉘어 있었고,
그곳을 묵묵히 받치는 이들은 '스튜어드(Steward)'라 불리는 키친핸드였다.
하루 종일 설거지와 바닥 청소, 무거운 그릇 운반을 도맡는 그들은 호텔 주방에서 가장 낮은 직급이었지만, 단 한 끼의 서비스도 그들 없이는 불가능했다.
그중 한 사람이 인도 출신의 모헤샤였다.
구릿빛 피부, 허리를 반쯤 굽힌 채 무거운 팬을 나르던 뒷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점심 서비스가 끝난 어느 오후, 모두가 정리에 몰두하던 순간 그가 작은 플라스틱 통을 들고 내 앞에 섰다.
"셰프... 이거 좀 데워도 될까요? 아내가 싸준 거라서요."
규정상 개인 음식을 주방 기물로 데우는 건 금지였다.
그러나 나는 사람을 먼저 보았다.
전자레인지 속에서 돌아가던 통에서 이국적인 카레 향이 퍼져 나왔다.
양식의 향만 오가던 주방을 채운 낯선 냄새가
이상하게도 마음을 데우고 있었다.
"셰프도... 드셔 보시겠습니까?"
그가 건넨 한 숟가락은 부드럽고도 깊은 맛이었다.
"와... 네 아내 정말 요리를 잘하시네. 혹시 레스토랑 셰프야?"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때 그의 표정이 흔들렸다.
"예전에 일했었죠. 하지만 지금은... 갑상선암으로 투병 중이에요."
순간 공기가 멎었다.
"밤에도 자주 깨지만, 제가 새벽에 일찍 나가는 걸 알면 꼭 부엌으로 나옵니다.
힘겹게 숨을 몰아쉬면서도 도시락을 만들죠. 본인도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저한테만 따뜻한 음식을 챙겨주려고요."
말끝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내 가슴이 먼저 무너져 내렸다.
투병으로 기운조차 없는 몸을 일으켜 남편을 위해 한 끼를 준비하는 마음... 그것은 레시피로는 가르칠 수 없는, 사랑의 언어였다.
"인도로 돌아가 수술을 받고 오면 어떨까?"
내가 조심스레 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제 마을엔 병원도, 의사도 없습니다. 그리고 출국하면 비자가 취소돼요.
아내를 살리고 싶어도... 갈 수도, 남아 있을 수도 없습니다."
눈물이 밀려와 눈가를 타고 흐르는 속도조차 마음과 같았다.
모헤샤도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뜨겁던 주방 한쪽에서, 우리는 한참을 그렇게 울었다.
식어버린 도시락은 몇 숟가락만 남긴 채 굳어 있었다.
모헤샤는 물 한 모금 없이 천천히 씹어 삼켰다.
그것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었다.
아내의 숨결이자, 삶을 붙잡는 마지막 끈이었다.
식어버린 밥알에도 사랑의 온기가 스며 있었다.
저녁 서비스가 시작되기 전, 나는 그를 위해 피자를 만들었다.
반죽을 꺼내 빠르게 밀고, 소스를 바르고, 치즈를 듬뿍 올렸다.
토핑은 단순했지만 마음만큼은 정성을 다했다.
갓 구워낸 피자를 모헤샤 앞에 두며 말했다.
"늘 아내 도시락만 먹잖아. 오늘은 내가 널 위해 요리해 줄게."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가가 젖어 있었지만, 입가엔 작은 미소가 번졌다. 내가 구운 피자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두 마음을 잇는 조용한 다리이자, 하루를 따뜻하게 묶는 위로였다.
그날 이후 '셰프'라는 이름은 내게 다른 의미가 되었다.
맛을 내는 기술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마음을 담아 음식을 내는 일...
그것이 진짜 셰프가 걸어야 할 길임을 나는 모헤샤를 통해 배웠다.
이제 주방을 바라볼 때면, 칼과 불보다 먼저 스튜어드들의 그림자가 떠오른다.
그 무겁고 보이지 않는 노동, 그리고 그 안에서 한 여인이 남편을 위해 도시락을 만들던 사라지지 않는 사랑.
그 모든 것이 내게 요리보다 더 깊은 진실을 알려 주었다.
*처음 제 에세이를 접하시는 분들께*
3권에 담긴 모든 이야기는 "웰던인생, 미디엄레어 꿈" 1권에서부터 이어지는 흐름 속에 놓여 있습니다.
아직 1권과 2권을 읽지 않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어주시면 더욱 깊이 있고 생생하게 다가올 거라 생각합니다.
정주행을 추천드립니다.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hoju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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