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라톤에 출근한 지 한 달쯤 지난 2016년 11월 초, 이제는 거의 모든 주방의 운영 체계를 익히고 팀원들과의 호흡도 맞아가기 시작할 무렵, 한국에서 한 통의 낯선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KBS 방송 작가입니다."
잠깐, KBS라고? 또 나를 어떻게 알았대? 순간, 고개가 갸웃해졌다. 내가 무슨 연예인도 아닌데?...
그런데 작가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미래기획 2030-글로벌로 떠난 청년들'이라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특별 프로그램을 준비 중인데, 한국 산업인력공단을 통해 내 이야기를 듣고 연락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해 나는 해외 취업 청년들을 위한 멘토링 프로그램에 자원해 활발히 활동 중이었고, 그 진심 어린 활동이 계기가 되어 방송국에까지 닿게 된 것이었다.
이후로 작가와는 몇 차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내가 호주에서 어떻게 일하고 살아왔는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이 길을 선택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눴다. 단순한 경력 소개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고민과 선택의 순간들을 솔직하게 풀어내는 시간이었다.
11월 말,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됐다. 카메라는 나의 일상을 따라다니며 쉐라톤 주방에서의 하루, 골드코스트에서의 삶, 그리고 미래에 대한 생각까지 담아냈다.
촬영 중의 한 장면은 지금도 유난히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야외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던 중, 갑자기 강한 바닷바람이 몰아쳤다. 마이크에는 거센 바람 소리만 가득했고, 공중을 날던 드론은 순식간에 방향을 잃고 바다 너머로 날아가 버렸다. 제작진은 한참 동안 드론을 찾아 헤매야 했고, 나는 멋쩍게 바람과 싸우며 인터뷰를 이어갔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지만, 누구 하나 짜증 내지 않았고 오히려 웃으며 분위기를 풀어갔다. 긴장된 촬영 현장에서도 그런 여유와 웃음을 잃지 않았던 제작진과의 호흡이, 지금 돌이켜봐도 참 따뜻하게 느껴진다.
프로그램이 한국에서 방영된 후, 오래 연락 없던 친구들한테 연락이 쏟아졌다. "야, 너 TV 나왔더라! 멋지더라." "진짜 네가 거기까지 갔구나." 평소 연락 없이 지내던 선후배들까지 메시지를 보내왔다. 나보다도 어머니가 더 흥분하셔서, 마치 아들이 연예인이라도 된 것처럼 여기저기 자랑을 하셨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하지만 그보다 더 인상 깊었던 건, 방송을 본 몇몇 후배들이 내게 연락을 해왔다는 거다. "형 덕분에 용기 얻었어요." "저도 언젠가 해외에 나가서 도전해보고 싶어요." 그런 메시지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단순히 화면에 비친 내가 아닌, 그 안에서 진심이 전달되었다는 느낌.
그 촬영 이후,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다짐했다.
'앞으로 더 진심으로 일하자. 그리고 나처럼 도전하는 누군가에게 진짜 울림을 주는 사람이 되자.'
반짝였다가 사라지는 사람이 아니라, 오래 기억되고, 누군가에게 길잡이가 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 다짐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여전히 틈날 때마다 젊은 후배 셰프들을 만나 멘토링을 해오고 있고, 때론 주방의 현실적인 조언을, 때론 해외에서의 삶에 대한 조언을 나누고 있다.
그들이 나를 보고 조금이라도 용기를 얻고, 자신의 길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나 역시 그들의 눈빛에서 다시 힘을 얻고, 내가 걸어온 길을 더욱 단단하게 다져간다.
*처음 제 에세이를 접하시는 분들께*
3권에 담긴 모든 이야기는 "웰던인생, 미디엄레어 꿈" 1권에서부터 이어지는 흐름 속에 놓여 있습니다.
아직 1권과 2권을 읽지 않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어주시면 더욱 깊이 있고 생생하게 다가올 거라 생각합니다.
정주행을 추천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웰던인생, 미디엄레어 꿈 1권.
https://brunch.co.kr/brunchbook/hojuaz
웰던인생, 미디엄레어 꿈 2권.
https://brunch.co.kr/brunchbook/hojuaz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