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향했던 6주간의 일정은 그야말로 의료 정비 투어였다. '성지순례가 아닌 병원순례...'
종합 건강검진부터 정형외과, 치과, 안과, 이비인후과까지, 10년 넘게 주방에서 버티며 조금씩 망가졌던 몸을 다시 끌어올리기 위한 고군분투였다.
테니스엘보 치료, 무릎 연골 재검사, 미뤄왔던 치과 진료까지 받으며 '이젠 정말 멈춰야 할 때'라는 걸 절실히 느끼고, 그 절실함은 곧 결심으로 이어졌다.
"지금이 아니면, 나는 영영 다시 설 수 없을지도 모른다."
물론 누군가는 그렇게 말한다.
"검은 머리 외국인들은 아프기만 하면 다 한국 들어와서 치료받는다더라."
어쩌면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게 그건 단순한 '역이민 의료 쇼핑'이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한국인이고, 그 뿌리를 가진 사람으로서, 몸과 마음이 가장 안전하게 회복될 수 있는 곳이 고향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선택의 문제라기보다, 본능 같은 귀향이었다.
그렇게 6주간의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고, 가족과 친구들과 오랜만에 나눈 웃음과 대화는 짧을수록 더 소중했으며, 그래서 더욱 아쉬움이 깊게 남았다. 또다시 작별을 고하고 호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이미 새로운 각오를 품고 있었다.
호주에서도 이어지는 병원 일정들 속에서, 다행히도 정부의 근로복지 시스템 덕분에 4개월간의 휴식 진단서를 받고 생활비 걱정 없이 재활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얻게 되었다. 그때 나는 단순히 몸을 쉬게 하는 게 아니라, 무너진 내 삶을 재건하는 시간으로 삼겠다고 마음먹었다.
단순한 회복이 아니었다.
재기(再起)를 위한, 철저한 준비였다.
매일같이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무릎을 구부리는 데도 진땀을 흘리며, 나는 하나씩 내 몸의 파편을 다시 붙여나갔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의지였다.
"나는 반드시 다시 주방에 선다."
그 믿음 하나로, 버텼고, 움직였고, 다시 나를 만들기 시작했다.
쉼의 시간 동안에도 셰프로서의 나를 놓지 않기 위해 매일 레시피를 하나씩 외웠고, 눈을 감고 불 앞에 서 있는 나를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그려냈다.
몸이 멈췄을 뿐, 나의 요리 본능은 단 한 번도 꺼진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시기, 가장 감사했던 건,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늘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라는 이유로 미뤄왔던 일상의 온기 속에서, 나는 다시 셰프가 아닌 남편으로, 아빠로서 숨을 고를 수 있었다.
6개월의 시간은 단순한 재활기간이 아니라, 내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자 새로운 챕터의 서막이었으며, 멈춤이 아니라, 점프를 위한 웅크림의 시간이었다.
그때 다졌던 각오와 불굴의 의지는 지금도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숨 쉰다.
*처음 제 에세이를 접하시는 분들께*
3권에 담긴 모든 이야기는 "웰던인생, 미디엄레어 꿈" 1권에서부터 이어지는 흐름 속에 놓여 있습니다.
아직 1권과 2권을 읽지 않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어주시면 더욱 깊이 있고 생생하게 다가올 거라 생각합니다.
정주행을 추천드립니다.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hoju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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