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묘지가 많은 서울?

외국인의 시선에서 본 한국의 야경

by 호주아재

얼마 전 한국 여행을 다녀온 호주인 직장동료가 여행 후유증에 걸린 사람처럼 며칠 내내 한국 이야기만 했다. K-Pop 플레이리스트를 새로 만들고, 냉장고에는 김치를 들여놓고, 라면도 젓가락으로 먹기 시작했다며 스스로도 만족해하며 웃었다.

그 친구의 여행 후기는 늘 일정한 흐름을 따른다.
셰프답게 음식 이야기로 시작해 쇼핑 이야기로 열이 오르고, 마지막에는 꼭 "그런데 말이야, 궁금한 게 있어..."라는 말이 등장한다. 이번에도 그 순서 그대로였다.

길거리 토스트가 왜 그렇게 맛있는지 분석을 한참 늘어놓고, 산 낙지를 초고추장에 떨어뜨리면 낙지가 스스로 춤을 추며 소스를 골고루 묻혀 먹기 편하다는 농담에, 입안에서 꿈틀거릴 때 느껴지는 묘한 짜릿함도 빼놓지 않았다. 또한 순대를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으면 전혀 다른 요리가 된다는 발견까지 신나게 이야기하던 그는, 갑자기 표정을 바꾸며 서울에서 가장 놀랐던 순간을 꺼냈다.

여행 가이드 없이 혼자 다니던 그는 외국인들이 꼭 가본다는 야경을 보기 위해 서울의 '남산'에 올랐다고 했다.

도시는 영화 세트장처럼 반짝였고, 그는 감탄하며 카메라를 줌으로 당겼다. 그 순간 화면 속에 빨간 불빛들이 줄지어 들어왔고, 그는 그 자리에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고 했다.
서울 한복판에 공동묘지가 이렇게 많다니, '죽은 사람들과 이렇게 가까이 살아가는 나라구나' 하며 잠깐 숙연해졌다는 것이다. 고층빌딩과 도시의 불빛 사이에 묘지가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풍경이 경건하게 느껴졌고, 과거와 현재를 함께 품고 사는 모습이 존경스럽게까지 느껴졌다고 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빨간 불빛이 너무 규칙적으로 늘어서 있어 마치 공포영화 예고편 속 한 장면 같았다고 했다. 혼자 내려오는 길에는 괜히 발걸음이 빨라졌고, 뒤에서 누가 따라오는 것 같은 기분까지 들어 그날 심박수가 여행 중 최고치를 찍었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그가 찍은 야경 사진을 보여주었다.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던 나는 순간 웃음이 터졌다. 그가 공동묘지라고 믿었던 빨간 불빛의 정체는 묘지가 아니라 '교회 십자가'였던 것이다.
내 설명을 들은 그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나 혼자 정말 착각하고 있었네." 하며
허탈하면서도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에는 공동묘지라고 믿고 봤던 풍경이 사실은 동네 교회였다는 사실이 너무 허무하면서도 웃겼고, 같은 사진인데 의미가 바뀌니 분위기도 완전히 달라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울은 한 장면 안에 서로 다른 이야기가 동시에 들어 있는 도시 같다고 덧붙였다. 수없이 많은 고층빌딩과 카페와 그리고 멋스러운 옛 건축물들, 교회와 쉴 새 없이 반짝이는 네온사인이 한 화면 안에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는 말이었다.

이 이야기를 듣다 보니,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어릴 적 동네 뒷산에 올랐다가 해 질 녘이 되어 내려오며 괜히 한 번쯤 뒤를 돌아보던 순간, 유난히 눈에 많이 들어오던 빨간 십자가들, 그리고 그것을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는 외국인의 시선까지, 익숙한 기억들이 겹겹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그의 '공동묘지 도시' 해석은 웃고 지나갈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묘하게 오래 남는 이야기로 남았다. 같은 풍경도 누가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장면으로 기억된다는 사실을 '서울의 밤'이 꽤 유쾌하게 보여준 셈이다.

그리고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괜스레 부러운 마음이 남았다.
그는 낯선 시선으로 한국의 서울을 새롭게 발견하고 돌아왔지만, 정작 그곳에서 오래 살았던 기억이 있는 나는 아직 그가 본 것처럼 그 장면을 다시 바라본 적은 없다. 언젠가 그가 보았던 야경을 같은 자리에서 보게 된다면 이미 '공동묘지'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나는 아마도 "풉!"하고 웃음이 먼저 나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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