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실습지: "Banquet Kitchen" (일명, 양파 지옥)
처음 실습 배정을 받았을 때, 나는 두근거렸다.
드디어 진짜 주방에 들어가는구나. 이제 요리사로서의 첫걸음을 떼는구나.
그렇게 설레는 마음을 안고 들어간 곳은… 다소 생소한 이름의
‘Banquet Kitchen (연회장 주방)'
결혼식, 기업 행사, 연회, 세미나 등 호텔에서 열리는 모든 대형 이벤트의 음식이 이곳에서 만들어진다고 했다.
기본이 100명, 많으면 500명 분량의 요리를 한 번에 준비해야 하는 곳.
그 규모에 압도당할 틈도 없이, 나의 첫 임무가 정해졌다.
'양파 깎기…'라고 불렀지만, 사실은 ‘미르포와 60kg 손질하기’였다.
아주 단순하고 명확한 업무였다.
하루 20kg 양파를 까고, 자르고.
20kg 당근도 깎고, 또 자르고.
20kg 셀러리를 다듬고 썰고...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똑같은 하루가 반복됐다.
요리사라면 누구나 아는 그 이름, "미르포와(Mirepoix)".
비프와 치킨 스톡, 그리고 각종 소스를 위한 기본 재료 손질이었지만,
아무리 요리의 기본 중의 기본이라 해도,
녀석이 왜 이렇게 잔인한 건지...
처음엔 솔직히 쿨하게 이렇게 생각했다.
‘뭐, 그냥 채소 손질이지. 하루 이틀이면 익숙해지겠지.’
하지만 막상 20kg 양파를 마주한 순간, 내 생각은 바로 바뀌었다.
눈물이 났다.
그게 양파 때문인지, 내 처지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눈물이 많이 났다.
그렇게 양파와 함께한 나의 석 달...
하루하루 눈물을 쏟으며 썬 양파의 무게는, 어느새 내 마음의 무게가 되어갔다.
내가 요리사가 되려고 이곳에 왔던가, 아니면 양파 전문가가 되려고 했던가.
점점 내가 누군지, 뭘 하고 있는지조차 헷갈릴 즈음—
그 긴 시간의 끝에, 드디어 다음 기수 후배가 들어왔다.
그 아이에게 양파 깎는 법을 알려주며 살짝 웃음이 났다.
‘이제 네 차례야.’
해방이 되면 기쁠 줄 알았다. 감격에 겨워 눈물이라도 날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아무 감정이 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눈물샘이 이미 다 말라버린 듯했으니까.
하루 4시간 정도 미르포와 전쟁이 끝나면, 그다음부터는 거의 '주방 전속 심부름 요정'이 되었다.
“이안! 이거 좀 가져와줄래?”
“이안! 이거 빨리 옮겨줘!”
하루에도 수십 번 불리며 이 주방, 저 주방을 뛰어다녔다.
그러다 어느 날, 무심코 거울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잠시 멍해졌다.
“어라… 나 왜 이렇게 늙었지?”
"이건, 요정이랑은 거리가 먼 몽타주인데..."
다크서클은 턱 끝까지 내려와 있고,
피부는 기름지고 푸석하고,
머리는 땀에 절어 스스로 눌린 듯한 형체.
내가 몇 년을 일했더라…
그 순간엔 정말로 내가 3년 차는 된 줄 알았다.
하지만 이내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이안! 거기서 뭐 해? 빨리 움직여!”
그 소리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나는 자연스럽게 발을 옮겼다.
그러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제 겨우… 석 달밖에 안 지났는데…”
그 시절의 나는 참 순수했고, 무엇보다 열정 하나로만 버티고 있었다.
그래서 더 많이 울고, 더 자주 지치고, 때론 스스로가 작아지는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모든 순간이 나를 만들어준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많은 양파 속에서도
잊히지 않는 건 손끝의 아픔도, 눈물도 아닌
매일 나를 불러주던 사람들의 목소리,
내 이름 섞인 그 익숙한 부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