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호주 도로에서 길 잃은 "육군 1호차" 운전병

by 호주아재

"이제 우리 집에 어떻게 갈래?" 불안한 듯 조심스럽게 아내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외쳤다.

"차도 샀겠다! 미리 보험도 들었고! 내비게이션도 샀고! 뭐가 걱정이야? 더군다나 난, 대한민국 육군 서울을 지키는 수도방위 사령부 1호차 운전병 출신이야! 엘리트 중의 엘리트!!!"

큰소리로 자신을 다독였지만, 사실 속은 콩알만 했다.

1호차 운전병 이었던 군 생활시절


잠깐! 한국과 호주 운전의 주요 차이점을 설명하자면,

운전 방향:

한국 - 우측통행 / 호주 - 좌측통행

운전석 위치:

한국 - 왼쪽 / 호주 - 오른쪽

방향지시등과 와이퍼 작동 레버 위치: 반대

...한 마디로 전부 다 반대!...




이제 문제는, 내가 평생 우측통행에 익숙한 몸이라 뇌에서 "좌측! 좌측!"을 외치는데, 현실은 우측통행.
"멘붕이란 단어를 이럴 때 쓰는구나!!"를 되뇌며, 출발과 동시에 첫 번째 실수 발생.


좌회전을 해야 하는데, 익숙한 감각대로 우회전을 하려다 맞은편에서 오는 차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모든 차들이 일제히 브레이크를 밟으며 클락션이 울려 퍼졌다. 마치 공포 영화에서 주인공이 어두운 복도를 걷다가 불쑥 유령과 마주친 것처럼.

아내의 눈이 커지더니 바로 잔소리 모드 ON.

"자기야! 거기로 가면 안 돼!"

"알아! 알아! 당황해서 그런 거야!"
"당황하는 게 문제거든? 정신 똑바로 안 차렷!!"

긴장해서 식은땀까지 나기 시작했다. 심지어 방향지시등을 켜려다가 와이퍼를 풀가동하는 실수를 연달아 저질렀다. 갑자기 앞 유리에 빗방울 한 방울 없는데 와이퍼가 미친 듯이 움직이자, 어이없다는 듯 아내가 말했다.

"뭐야! 왜 비도 안 오는데 와이퍼를 켜!

"아니, 그냥 유리창에 먼지 때문에 앞이 잘 안 보이는 것 같아서...(억지 변명)

그렇게 출발한 지 5분 만에 우리는 이미 진이 빠져 있었다. 그러나 최고의 위기는 아직 남아 있었다.

고속도로에 진입해야 하는데, 좌측통행이라 합류 방향이 반대! 한국에서는 오른쪽에서 합류하면 되지만, 여기서는 왼쪽에서 들어가야 한다.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여보, 진입해야 해! 지금!"

"알아! 근데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겠어!!"

뒤에서 빵빵거리는 클락션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결국, 정신을 바짝 차리고 초보 티 풀풀 내며 조심스럽게 합류에 성공했다. 그리고 마치 한 판 전쟁을 치른 듯한 기분으로 드디어 집 방향으로 직진!

그렇게 20분 거리를 1시간 걸려서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내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처음부터 운전을 잘하면 내가 레이서를 했지!"

아내는 한숨을 쉬며 나를 쳐다보더니 한마디 했다. "그러니까 자기가 셰프 하는 거야!!"

그리고 그날 이후, 아내는 나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운전은 차보다 멘탈이 더 중요하다.'

그 말은 단순히 핸들을 잡는 순간뿐 아니라, 인생 전체에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다가오는 변수들, 익숙했던 모든 감각이 통하지 않는 순간들 속에서 필요한 건 완벽한 기술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었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요리는 내가 수없이 반복하며 익숙해진 세계였다면, 호주에서의 운전은 아직 내게 낯선 인생의 또 다른 무대.
그리고 그 무대 위에서 나의 무대 감독이자, 멘탈 코치이자, 내비게이터이자, 때론 브레이크 역할까지 해주는 단 한 사람. 바로 내 아내라는 걸.

비록 그날 와이퍼는 정신없이 돌아가고, 클락션은 내 심장보다 크게 울렸지만, 그래도 우리는 함께 웃으며 무사히 도착했다.
그리고 그게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도착일지도 모른다.


*처음 제 에세이를 접하시는 분들께*

2권에 담긴 모든 이야기는 "웰던인생, 미디엄레어 꿈" 1권에서부터 이어지는 흐름 속에 놓여 있습니다.
아직 1권을 읽지 않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어주시면 더욱 깊이 있고 생생하게 다가올 거라 생각합니다.
정주행을 추천드립니다.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hoju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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