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포 호텔에서 일한 지 어느덧 1년. 사건사고 없이 지나치게 평온했던 나날들. 그런데 그 평온함을 박살 내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안, 나 애들레이드로 가야 해... 몇 년 동안..."
알피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부모님이랑 가족들이 다 거기 계시거든. 가까이서 함께 있길 원하셔."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뭐? 무슨 말이야? 이해 못 하겠어. 다시 말해줘!"
알피는 남호주 애들레이드 출신이었다. 브리즈번에는 결혼 때문에 잠시 왔었고, 이후 이곳의 매력에 빠져 정착했지만, 이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아니, 갑자기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날 버리고 혼자 떠난다고? 무슨 여자친구가 일방적으로 이별 통보하듯이?'
그는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가까이서 돌보고 싶다고 했다.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이유였다. 하지만 당장 나에게 미치는 충격은 엄청났다.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며 천천히 말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내 예상보다 너무 빨리 왔네. 네가 지금까지 나를 얼마나 챙겨줬고, 좋은 셰프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알지. 그래서 더더욱 붙잡을 수가 없다."
설령 따라가서 계속 같이 일하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나는 당시 영주권 브리징 비자 상태였고, 퀸즐랜드에서 기술이민을 신청한 터라 다른 주로 옮길 수도 없었다.
알피는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이안, 미안하지만... 몇 년 후에 다시 브리즈번으로 돌아올 거야. 그때까지 더 성장해 있어. 그때 다시 함께 일하고 싶어. 진심이야."
'이 사람, 떠나는 순간까지도 멋지게 가려고 하네. 진짜 스승이자 선배란 이런 거구나......'
나는 목이 메어 울먹이며 말했다.
"난 호주에서 너 같은 멋진 셰프를 만난 게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해. 네 덕분에 정말 많은 걸 배웠어. 나도 진심이야."
"나 없어도 계속해서 여기서 일할 수도 있고, 더 배울 수 있는 곳으로 가도 괜찮아. 필요하면 내가 취업을 도와줄게." 알피가 마지막까지 나를 걱정하며 도와주려 했다.
나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 하지만 이제는 내 힘으로 해볼게. 여기까지 너한테 너무 많이 신세를 졌으니까. 이제 나도 한 번 부딪혀볼 때가 된 것 같아."
그 말에 알피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는 결심했다. 이곳에서 안주하지 않기로. 이제 새로운 무대로 나아갈 시간이었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상하게도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더 컸다.
'그래, 이제 진짜 내 길을 가보자.'
이전의 성공과 실패가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고, 그 경험들이 내 안에서 끊임없이 나를 자극했다.
이제는 그것들을 발판 삼아,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길을 가는 거였다. 길이 험난할지라도, 그 길을 가는 것이 나의 선택이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내 발걸음은 점점 더 확신에 차올랐다.
알피의 마지막 날, 우리는 눈물의 술잔을 들었다.
이별주란 건 항상 똑같다. 처음엔 다들 괜찮은 척하지만, 잔이 몇 바퀴 돌고 나면 결국 한 놈씩 울기 시작한다.
"아, 씨... 눈에 먼지 들어갔나 봐."
"하하 이안!, 먼지가 아니라 엄마가 또 보고 싶은 거 아냐?" "너 양파 깔때도 엄마 보고 싶어서 울었잖아, 하하하!!!"
알피도 눈가를 훔치며 웃었고, 우리는 그렇게 밤새 술을 마셨다.
그리고 14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만나면 여전히 요리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처음엔 우아하게 마시다가 결국 인간의 존엄성을 내려놓은 채, 짖지도 못하는 멍멍이가 될 때까지 달린다.
*처음 제 에세이를 접하시는 분들께*
2권에 담긴 모든 이야기는 "웰던인생, 미디엄레어 꿈" 1권에서부터 이어지는 흐름 속에 놓여 있습니다.
아직 1권을 읽지 않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어주시면 더욱 깊이 있고 생생하게 다가올 거라 생각합니다.
정주행을 추천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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