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밝고 넓은 사무실 안으로 인사 담당자를 따라갔다. 잠시 후, 후광이 비치는 듯한 셰프 한 명이 들어오며 나를 반갑게 맞았다.
"Minho? My name is Geoff, Executive Chef at Palazzo Versace. Nice to meet you."
(민호? 나는 팔라조 베르사체의 총괄 셰프인 제프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셰프와 악수를 나누는 순간, 그저 머릿속은 백지상태. '어디에서 왔냐?', '왜 셰프를 하게 됐냐?', '마지막 목표는 뭐냐?' 이런 기본적인 질문들이 떠오르긴 했지만, 다른 예상 질문들은 연습을 하긴 한 건가? 하는 수준으로 이미 모두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렸다.
셰프는 자리에 앉으며 첫 질문을 던졌다.
"어디서 왔죠? 그리고, 왜 셰프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건가요?"
나는 잠깐 생각을 하며, 평소에 하던 대로 대답하려 했지만,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건 내가 온갖 요리 학교에서 배운 기법들과 고생스러운 주방 일들이었다. 말이 길어지기 시작하면서, 셰프의 표정이 점점 더 집중하는 눈빛으로 변해갔다.
"음, 사실 제가 처음 주방에 들어간 건..."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내가 처음 칼을 잡고 불 앞에 섰던 순간, 그때의 두려움과 흥분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셰프는 눈을 크게 뜨며, "좋아요, 계속 말씀해 보세요"라고 계속 유도했다.
셰프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럼, 제일 힘들었던 순간은 무엇이었나요? 주방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나는 잠시 멈칫하고, 생각을 정리한 후 입을 열었다.
"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한 번 손님이 너무 늦게 오셨는데, 주방 정리가 거의 끝난 시간에 준비한 요리를 제대로 서빙할 수 없어서 정말 난감했던 일이 있었어요. 물론 완벽하게 서비스를 했지만, 그날은 거의 기계처럼 움직였죠. 하지만 그때 깨달았습니다. 주방에서의 시간은, 어떻게 보면 모든 게 순간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걸요. 순간순간의 선택이 내 요리를 완성시키니까요."
셰프는 고개를 끄덕이며, "정말 중요한 이야기네요. 주방에서의 순간은 모든 걸 결정짓죠. 자, 그럼 팀워크는 어떻게 하시나요?"
"팀워크? 그건 정말 중요하죠. 특히 주방에서는 다 함께 움직여야 하니까요. 한 명이라도 흐트러지면, 그날의 요리는 망칠 수 있어요." 나는 말하면서도 그간 겪었던 팀워크의 어려움을 떠올렸다.
그러던 중, 셰프가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그럼 혹시... '강남스타일' 알아요?"
순간, 나는 눈을 크게 뜨며, 이게 진짜 질문인지, 아니면 농담인지 헷갈렸다.
하지만, 그 시점에 '강남스타일'이 세계적으로 또한, 호주 전역을 강타했던 터라,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물론이죠," 나는 그렇게 말하고 무언가에 홀린 듯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오빤 강남스타일!! 후후 훗훗......
셰프는 박수를 탁 치며 한참을 웃었다.
"열정이 넘쳐서 좋아요. 솔직히, 이렇게 신나게 인터뷰 본 지원자는 처음이에요."
그제야 긴장이 풀리며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셰프는 또한 한국인 인터뷰는 이 호텔에서 처음이라는 얘기를 꺼냈다.
그 말에 나는 조금 당황했지만, 그래도 내 방식대로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이어갔다.
그렇게 시작된 인터뷰는 예상보다 훨씬 길어졌다.
시간이 흐르고, 나는 계속해서 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셰프가 질문을 던지면, 나는 그 질문에 대해 떠들기 시작하고, 또 떠들고... 결국 1시간 30분이 훌쩍 지나버렸다.
그리고 나중에 깨달았다.
이건 면접이라기보다는, 어쩌면 내 인생의 한 장을 진심으로 나눈 대화였는지도 모른다.
그날 면접실을 나서며, 나는 문득 생각했다.
'아, 이곳이라면 나의 모든 열정과 땀을 쏟아도 되겠다. 정말, 일 하고 싶다.'
그날의 인터뷰는 단순한 채용 절차가 아니었다.
그건, 내 이야기를 처음으로 온전히 들어준 누군가의 앞에서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보인 순간이었다.
*처음 제 에세이를 접하시는 분들께*
2권에 담긴 모든 이야기는 "웰던인생, 미디엄레어 꿈" 1권에서부터 이어지는 흐름 속에 놓여 있습니다.
아직 1권을 읽지 않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어주시면 더욱 깊이 있고 생생하게 다가올 거라 생각합니다.
정주행을 추천드립니다.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hojua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