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뚜벅이, 이제 그만 정산합시다!!"

by 호주아재

어느 날 저녁, 나는 소파에 앉아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자기야, 우리 이제 호주에서 자리도 잡았고… 차 한 대 사는 거 어때?"

아내가 나를 힐끗 보더니 묻는다.

"갑자기 웬 차?"

"아니, 장 볼 때마다 쌀이랑 물이며 낑낑대며 들고 오는 것도 이제 지쳤고, 쉬는 날마다 집에서 뒹굴기만 하잖아. 차 한 대 있으면 여행도 다니고, 더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해서."

아내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음 주 자기 쉬는 날 한 번 차 보러 가자!"

너무나 쿨한 반응에 내가 더 놀랐다.

"아! 드디어 5년 만의 뚜벅이 생활을 끝내는 건가?"

경제적인 문제로 새 차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우리만의 첫 차를 산다는 설렘이 가득했다.

그렇게 우리는 중고차 매장이 몰려 있는 Moorooka로 향했다. 처음 가 본 그곳은 마치 자동차의 도시 같았다. 끝이 안 보이는 차들, 눈이 빙글빙글 돌 정도의 다양한 모델들...

무루카는 도시 전체가 자동차 매장이다.

"이 많은 차 중에 어떻게 고르지?"

고민하던 찰나, 한 딜러가 우리를 보자마자 쓱 다가오더니 웃으며 말했다.

"Hey mate! First car in Australia? Don’t worry, I have the best deal for ya!"
(번역: "헤이 친구! 호주에서 첫 차 사는 거야? 걱정 마, 내가 최고로 좋은 차 딜 해줄게!")

그 말에 신뢰감보다는 왠지 사기당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뭐, 한 번 보기나 하자.

딜러가 보여준 첫 번째 차는 마치 할리우드 액션 영화에서 폭발하기 3초 전인 듯한 상태였다. 엔진을 켜자마자 ‘쿠르릉~ 콰과광!’ '주변을 뒤흔드는 이 떨림!!!....

"어? 이거 배기음은? 와우... 비싼 스포츠카가 아닌 머플러가 삭아서 떨어질 것 같은 소리?" 내가 얼마나 어설프게 보였길래 이런 똥차를 감히?...

과감히 '패스'

다음으로 본 차는 킬로수가 30만을 넘겼다. 하지만 딜러는 웃으며 말했다.

"Mate!!, this car has a lot experience! It has seen all of Australia!"
(번역: "친구!!, 이 차는 경험이 풍부해! 호주 전역을 다 돌아봤다고!")

헐!! 그 경험이 너무 많아서 앞으로 또 갈 수 있을지가 문제지!

다른 매장도 기웃기웃 여기저기 들러보던 중, 한쪽 구석에서 아주 깔끔하고 킬로 수도 적당한 해치백을 발견했다.

"5년밖엔 안 된 연식에 킬로수가 65K! 오! 오! 오! 좋다 이거닷!!!"

"이거, 딱인데?"

"오, 자기야, 이 차 느낌이 너무 좋아!"

딜러에게 가격을 물었더니, 예상보다 괜찮은 가격! 게다가 딜러가 직접 우리를 태우고 시운전을 시연해 줬고, 차도 너무 조용하고 부드럽게 잘 나갔다.

결국, 우리는 그 차를 계약했다. 드디어 5년간의 뚜벅이 생활을 끝내고, 우리만의 첫 차를 가지게 된 순간!...

호주에서 처음 샀던 중고 Hatchback 자동차


일주일 후, 깨끗이 광을 내고 있는 차의 키를 받아 들고 환하게 웃으며 아내에게 말했다.

"자기야, 이제 우리도 차 타고 다니는 사람 됐다!"

아내는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그렇게 좋아?"...

그리고 아내는 미소를 지으며 손끝으로 차를 가리키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 차는 사실... 자기 선물이야! 내가 캐주얼로 몇 달간 일하면서 모은 돈으로 샀으니까, 자기에게 주는 선물!"

그 말에 나는 잠시 말을 잃었고, 그제야 아내의 마음을 깨닫게 되었다. 차를 사고 싶은 마음만큼, 우리에게 이 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아내의 노력이 담긴 '선물'이라는 걸 알았다.

그런데, 진짜 큰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처음 제 에세이를 접하시는 분들께*

2권에 담긴 모든 이야기는 "웰던인생, 미디엄레어 꿈" 1권에서부터 이어지는 흐름 속에 놓여 있습니다.
아직 1권을 읽지 않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어주시면 더욱 깊이 있고 생생하게 다가올 거라 생각합니다.
정주행을 추천드립니다.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hoju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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