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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격 Jan 22. 2020

판매 시작. 그와 동시에 실패.

의식변화가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개업 후 8개월 만에 판매를 시작했다. 

idus(수제품 쇼핑몰) 최종 승인 후 20일이 더 지나서야 상품을 등록할 수 있었다. 또다시 이렇게 늘어진 것은 늘 그렇듯 남다르게 잘하고 싶어서 욕심내다가 이렇게 됐다. 

혹 할만한 상품 사진을 위해 이렇게 저렇게 찍어 보고 상품 등록 방법, 배송, 반품 UI를 습득하고 주의 사항 확인하고 혹 할만한 상품 소개를 위해 그곳에서 편찬한 성공 Case 모음집(12,900원)을 사서 읽으며 온라인 시장을 공부했다. 

공부 결과를 각색해서 정리해 본다. 

1. 브랜드나 작품보다는 나라는 사람 자체를 보여줘라. 일상에 신경 쓰는 사람임을 티 내고 스토리를 만들어라. (작업환경, 작업 모습 노출)

2. 상품을 다양하게 가져가서 고객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라. 일정 횟수 이상의 공통된 고객 의견이 있을 경우 적극 반영하라. 

3. 광고, 이벤트를 통해 고객을 끌어 모아라. (idus는 그 사이트 내에서 노출의 빈도를 높이기 위한 이벤트와 광고를 진행하고 있다. 비용이 드는 일이다.) 

4. 사진을 잘 찍어라. (상품에 시선이 가도록 무채색 배경 사용. 식물, 영문 책 같은 소품과 함께 AM10시에서 PM2시 사이의 자연광 이용, 어도비의 사진 보정 프로그램 추천 등의 내용이 있다) 자신 없으면 idus에서 제공하는 무료촬영 대행 서비스를 이용하라.

5. 먹거리나 미용제품을 팔아라. (내가 결과적으로 얻은 교훈. 책자의 성공 Case 대부분이 그랬고 도자기를 하는 공방은 하나도 소개되지 못했다.)    

6. 검색 랭킹 높이기에 신경 써라. 

적합도 : 상품명과 속성/태그 작성 시 검색에 용이하되 관련 없는 낚시성 명칭과 태그는 단속 대상이다. 

인기도 : 클릭수, 판매실적, 리뷰수, 최신성 순으로 가산점이 있으므로 클릭을 부르는 메인 사진과 상품명이어야 하고 리뷰를 활성화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7. 악성, 강성 고객의 경우 무조건 사과하라. 감당 안되면 idus의 고객 대응팀 도움을 요청하라. (online에서도 고객 대응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러한 교훈을 바탕으로 작성을 진행했다. 그릇에는 음식이 담겨야 하고 자연광 아래서 사진을 찍어야 하니 하루에 한 장밖에 찍지 못한다. (만든 건 먹어야 하고 점심을 복수로 먹을 순 없고 흐린 날은 자연광이 없어서)   


상품 소개글은 지름 20cm, 높이 9cm의 사발을 면기, 식판, 다기, 샐러드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멀티 플레이어라고 뻔뻔하게 소개했다. 지나친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OFFLINE에서 못해본 유쾌한 삶을 ONLINE에서 실험해보고 싶었다. 

용기를 낸 결과 판매 수량 "0"


음. 아닌가 보군. 뭐가 어디부터....


5일 지났지만 상황은 여전하다. 고민되는 아침이 이어졌다. 

남들에게 인기 있는 길은 박터지니까 가지 말자 했는데, 협소하고 가난한 시장에서 먹고사는 것도 박터지는 일이다. 안될 일을 시작했나. 쭈그려 앉아 머리를 감다가 한숨을 내쉰다. 

아는 길만 가는 것은 재미없으니 여행처럼 즐기자 했건만 먹고사는 것과 연결되니 마냥 낭만적일 수가 없다. 헛소리를 했구나.


조회 200건에 판매 “0”. 보고도 안 산다.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 본 사람은 없다는 말도 있는데, 이건 뭔가! 사진을 다시 찍어야 하나? 유쾌한 소개글이 거슬렸나? 갖가지 물음표로 머리가 아프다. 

8개월 준비해서 올렸는데 “0”이다. 진작 올려서 현장을 느껴 봤어야 했는데 오랫동안 숙고해서 들인 노력이 오랫동안의 삽질을 낳은 건가. 내 속도로 가기로 했으니 자책 좀 하지 말자 하지만 마음은 통제되지 않는다. 


며칠간 간간히 포기를 생각했지만 아직은 거쳐야 할 과정을 겪는 거라고 생각된다. 판매는 이제 시작이니 좌절할 일이 아니라고 스스로 위로한다. 어른이니까 스스로 위로할 수 있어야지.. 


그동안 생산 노동자 입장에서 고민해왔는데 이제는 판매자 입장으로 생각해야 한다.

일단 설이 끝나면 상품 사진 대신 촬영 서비스를 요청해서 전문 직장인이 찍어주는 사진으로 교체하고 다른 색깔로 몇 작품을 더 올려보고 소개글도 진지하고 아름답게 바꿔봐야겠다. 나답진 않지만 아름답게 찬양해야겠다. 그래서 몇 개라도 팔리면 조회수 늘리기 위한 마케팅도 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면기는 접는다. 

이렇게 해볼 수 있는 것이 있으니 견디기 수월하다. 마냥 앉아서 손써볼 일 없이 기다려야 하는 것보단 나은 것 같다. 


좋아하는 것만 골라 나답게 살자고 했지만 세상으로부터 먹고살게 도움을 받아야 하니 타협이 필요하다. 타협이 아니라 대화 정도가 되겠다. 대학가에서 홍어를 팔려고 했던 것 같다. 떡볶이를 팔자. idus의 인기 상품들을 다시 확인하고 그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반영해야겠다. 젊은 스타일이네 하고 께름칙함 정도만 남기고 넘어갔는데, 이런 결과를 낳았다. 초짜는 확실히 해야 할 부분과 넘어가도 될 부분을 구별하지 못한다. 

[사진 외에도 꽤나 만들었는데... 딴 데 팔면 된다]


또 이렇게 다시 시작이다. 좀처럼 시작이라는 단어를 떨칠 수가 없다. 이런 식이라서 과정을 즐기라고 하는 건가? 1년 가까이 수입이 없다. 백수로 긴 시간을 견뎌내기도 쉽지 않다. 도전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사회는 그런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도 투박하다. 무뎌져야 한다고 다짐하지만 수많은 다짐들이 기억도 나지 않는다. 


며칠을 복잡한 머리로 기운 없이 어수선하게 일했다. 술 먹고 싶어 졌지만 긴축 재정해야 하고 술자리 친구들이 자꾸 정치 얘기를 꺼내서 할많하않 상황이 되니 짜증 나서 안 먹기로 했다. 참았다. 술 먹으면 화가 많아져서 우울할 땐 먹지 않기로 했다. 


그러던 중 법륜스님의 인스타그램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도를 닦는 것은 고상한 것이 아닙니다. 밥 먹을 때 밥 먹고 똥 눌 때 똥 누는 거예요. 밥 먹으며 똥 생각하고 똥 누면서 밥 생각하는 건 도에 맞지 않는 거예요.


눈앞의 일을 하자. 


저녁에는 저녁을 먹고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밤에는 눈을 감으면 나도 시 구절처럼. 

혼나지 않는 꿈을 꿀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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