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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격 Mar 01. 2020

정치 얘기

술자리를 찝찝하게 하는 얘기

idus에 상품을 올렸지만 한 달째 하나도 팔리지 않고 있다. idus의 무상 촬영 서비스를 받아 상품 사진을 교체하였다. 

내가 찍었던 사진보다 훨씬 그럴듯하다. 말할 수 없이 감사했다. 그리고 팔리지 않는다. 


값싸고 품질 좋은 공장 제품 대신 수제품을 찾는 이유를 생각해 봤다. 

수제품은 좀 더 트렌디해야 할 것 같다. 사전제작 드라마가 아닌 반응 봐가며 찍는 쪽 대본 드라마가 되어야 할 것 같다. 유행에 따라 만들어지는 먹거리, 미용제품이 주로 나간다.  

그런 분위기를 느끼고 한 달 전부터 도자기 인형, 차총으로 방향을 바꿨다. 

인터넷상에서 팔릴만한 귀여운 것을 만들기로 했다. 도자기는 호흡이 느린 분야라 열심히 만들어 보고 있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판매용 제품을 생산해내지 못하고 있다. 내일 TEST 제품들 재벌 해볼 생각이다. 

이렇게 느려 터진 공방 얘기만으로는 브런치 운영이 안돼서 사적인 얘기도 올리려 한다. 


-- 사적인 얘기 --


나는 사학과를 다녔다. 역사를 공부하는 학과를 졸업하고 프로그래머로 18년 일하다가 지금은 도예가가 되고 싶어 한다. 갈피를 못 잡고 피곤하게 살고 있다. 한국 기준으로는 동정의 대상이다.


역사를 전공했다고 하면 지나간 일(과거), 전 세계 모든 유물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단톡 방에 어딘가에서 찍은 석탑 사진이 올라온다. 


“어딘 줄 알아?”


해외 박물관을 가서도 퀴즈를 낸다. 


“니가 이런 건 잘 알아야 하는 거 아니야.” 


고등학교까지의 역사교육이 그러했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공돌이들이 뭘 알겠는가. 답답하지 않다. 


대학에서는 지식을 가르치는데 크게 관심이 없다. 어떤 일을 어떻게 이해하고 기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한다. 졸업한 지 20년 됐지만 지금도 화두가 되고 있는 페미니즘, 언론, 계층 계급화, 협오 같은 것을 얘기했었다. 앞서 갔다기보단 그런 쪽에선 발전이 없는 것이다. 기술 발전만 있었을 뿐이다.

하여간 지식 전수에 관심 없는 교수님이 지나가는 말로 당부하셨던 얘기가 있다. 


“역사공부는 과거나 미래가 궁금해서 하는 거 아니다. 현재가 궁금해서 하는 거다.”


딴 나라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는 현대사에 관심을 보이면 혼나는 분위기가 있다. 역사에 관심이 많다는 애들도 대부분 조선 시대 왕 얘기를 한다. 


그게 니하고 뭔상관인데?

역사잖아.

근데?


교육이 잘 된 애들이니 이해한다. 그들은 현재가 궁금하지 않다.  



“역사학자는 자신을 객관화시킬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조폭들이 의리를 강조하듯이 그쪽 동네에서 아무도 지키지 않지만 중요한 덕목이라서 강조하셨던 것 같다.

과거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역사학자들은 공무원이기 쉽다. 

우리는 성장기에 그들의 근로 결과물이 참고대상이 아니라 진리이니 그대로 의역 없이 외우라고 교육받았다. 

객관적이지 못하다고 공무원을 욕할 순 없다. 삼성 다니는 이에게 왜 삼성폰 쓰냐고 따질 순 없다. 아이폰 써도 돼요?


기자나 아나운서들도 마찬가지다. 영혼을 담아 열심히 근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 윤리 같은건 사내에서 자긍심을 고취시켜 혼신의 힘을 쏟도록 하는 인재관리 기술일 뿐이다. 


객관성은 필요하지만 지켜질 수 없는 덕목이다.


이런 상황의 술자리(현재에 관심 없고 뉴스와 진실을 동일 시하는 이들과의 술자리)는 혈압을 높이고 핏대 세우며 붉어진 얼굴로 목소리를 키우게 된다. 옆테이블에서 인상 구기며 쳐다본다. 젊은 시절 짜증나서 쳐다봤던 아저씨들의 모습이다.  


직장 생활할 때는 상하관계가 있어서 그랬는지 대립각을 세우는 경우가 없었다. 지역색의 영향인지 고향 친구들의 하나 된 의견을 듣고 있자면 혈압이 오른다. 답답하다. 선동에 저렇게 무방비로 영향을 받나?


술에서 깨는 다음날이면 창피함이 몰려온다. 왜 그렇게 주변에 해가 되도록 시끄러웠고 서로 기분 나빠했는지. 


양심은 저 밑바닥 무의식 세계에 자리 잡은 혼난 기억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또다시 혼날까 봐 겁이 나서 생기는 보호 기재이다. 그들의 현대사 외면은 양심적인 행위이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사고를 한다는 것은 내 편을 버리는 행동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 또한 보호 기재에 어긋나는 겁나는 일이다. 목소리 키울만하다. 


그럼 내가 목소리를 키우는 이유는 뭔가? 덕후기질이 없어서 그렇지 현대사를 적당히 알고 지금을 해석하기 위해 공부해야 겠다는 생각도 있다. 그러면 내편이 없어서 인가? 이 동네는 다수가 분명한 동네이다. 내 생각만 바꾸면 모두가 내편이 된다. 근데 그걸 못한다. 

이런 성향 때문에 술자리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나만 없으면 같은 방향으로 유쾌하게 욕 할 수 있다. 친구들 사이에서 나 때문에 정치 얘기는 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이제 할 얘기가 없다. 


차총은 혼자 차를 마실 때 벗으로 삼는 도자기 인형이다. 차가 발달한 중국의 문화인 것 같은데, 혼술이 발달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도 쓸모가 있겠다. 나한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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