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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격 Aug 27. 2021

서로 간의체험

교회에서 문의가 왔다. 20명 단체 수업이었다. 

두 번째 수업부터 단체를 치러야 했다. 

시국도 그렇고 혼자 커버 가능 인원도 모른다. 

시간과 날짜를 나눠 2주에 걸쳐서 진행했다.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보고 사전 준비를 했지만 긴장되었다. 


서두르지만 않으면 된다. 

전문가 양성 수업은 아니니까.

완벽함 같은 건 필요 없다고 되뇌었다. 


취미 체험은 좋은 감정을 경험하는 거니까 마음가짐에 정성을 들여야 한다. 

나의 처지가 있으니 단체 손님이 고맙지 않을 수가 없다. 


수업이 시작되었다. 

열심히 설명하다 보니 숨이 가빠왔다. 


서두르고 있구나. 내가 서두르면 체험자도 서두르게 된다. 


깊이 숨을 쉬며 말을 끊었다. 

체험자와 더불어 보호자, 인솔자가 쳐다보고 있었다. 

다시 주의사항을 얘기하고 어떻게 만들지 1:1로 다양한 의견을 가능한 방법으로 조율하고 각자 작업을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사장님 혹은 선생님을 외쳤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나는 잠깐만요를 외쳤다. 

정신없지는 않았다. 무난히 끝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네 차례의 수업을 진행했다. 

최종으로 21명이 체험했고 39개의 기물(접시 혹은 머그컵)이 생겼다. 

며칠 동안 살피며 마무리되지 않은 것 다듬고 마르면서 금이 가지 않게 잔여 작업을 했다. 


이후 이틀 건너 한 번씩 손님이 왔다. 

크게 난감하거나 어찌해야 할지 모를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각박하게 구는 사람도 없었고 별거 아닌 것에 재밌어했다. 


이런 포인트에 긴장하고 좋아하는구나..


할만했다. 사람만 좀 많이 오면 운영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불안하고 난감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크게 만든 기물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접합 부위에 금이 가는 머그컵이 발견됐다. 


아.. 이런 균열은 답이 없는데..


흙을 추가하여 틈새를 메워가며 보수하고 비닐로 꽁꽁 감싸서 더욱 천천히 말렸다. 

전달해 주기로 한 일정이 있기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초벌을 했고 불안감을 안고 가마 뚜껑을 열었다. 


단체 수업 기물 중에 터져 있는 것이 있었다. 한숨이 나왔다. 

제작 시 흙 사이에 공기가 들어가면 가마에서 열을 받아 터지게 된다. 주변 기물도 같이 망가질 수 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기물을 모두 꺼내고 가마를 청소했다. 


건조 시 금이 가서 보수작업했던 것들을 살펴봤다. 

작은 것들은 수습이 되고 

큰 기물은 역시나. 균열의 크기가 작기는 했지만 냉정하게 보면 망한 것이다. 


기분 좋지도 좌절하지도 않았다. 

아쉽지만 있을 수 있는 수준의 하자였다. 


지저분한 부분을 사포로 다듬고 먼지 털어 내고 시유를 했다. 광택을 좀 더 높이기 위해 좀 더 길게 담갔다. 


재벌을 시작했다. 

8월 초 한참 더운 시기였다. 

에어컨을 틀어도 가마와 외부 열기 때문에 전혀 시원하지 않았다. 

후끈한 공간에서 뭘 할 의욕이 나지 않았다. 


손님 없어서 다행인가? 


그렇게 3일간 식히고 뚜껑을 열었다. 최종 결과를 확인해야 한다.


이런.  


건조 시에도 초벌 후에도 이상이 없었던 것들에 금이 가 있었다. 

단체 수업에서 머그컵을 만든 이들이 많았고 손잡이를 제대로 붙이지 못할 것 같아 내가 붙여 주었는데 크게 금 간 것도 있고 실금이 간 것도 많았다. 


왜 이럴까. 안정적으로 두껍게 처리했어야 했나? 


그리고 광택을 더 내기 위해서 욕심을 났던 것이 문제가 되었다. 

유약이 고르게 안착되지 않고 울퉁불퉁 얇게 된 곳이 발생했다. 보통 말렸다고 표현한다.

그밖에도 형태 변화가 많았다. 


아.. 이 흙은 적당치 않구나. 


대중성을 위해 밝은 흰색의 비싼 백자토를 사용했는데 기존에 쓰던 거친 흙에 비해 지탱하는 힘이나 점성이 약해서 접시의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평평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물레작업이 아닌 석고틀로 형체를 잡으면 이렇게 되나? 

내가 샘플 작업했을 때는 왜 괜찮았지?

오래 기다렸고 그만큼 기대를 하고 있을 텐데. 


마음이 무거웠다.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 봤지만 재벌까지 마친 기물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즐겁게 체험하고 재밌었다고 하면서 떠나간 어린 학생들이 떠올랐다. 


어쩔 수 없다. 

내 잘못이 크다. 잘못 인정하고 다시 만들어 보고자 하는 학생들을 공짜로 해주자. 

그것 말고는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완벽한 해결책은 아닌 거 같지만 어쨌든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포장을 하고 주소를 받아 교회로 향했다. 

나와 조율하고 수업 시 인솔했던 관계자가 아닌 목사님이 나오셨다. 

표정이 굳어 계셨다. 초벌 시 파손된 모습과 금이 간 기물에 대해서 사진을 먼저 보내 놓은 상황이었다. 


교회 문 앞에 포장해 놓은 것들을 내려놓고 설명을 했다. 

초벌 시 파손된 이유. 금이 간 이유..


과정을 지켜봤던 관계자였으면 생략했어도 될 얘기를 도자기 상식과 더불어 다시 설명해야 했다.

그리고 해결책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쉬우신 분은 다시 체험을 진행해도 된다. 무료로 해 드리겠다는 말을 했다. 


목사님은 별다른 반응이 없으셨다.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서 많이 신경 쓰고 있다고 

이번 체험은 본인이 나서지 않고 모든 것을 선생님에게 맡겨 놓았는데 결과가 이렇게 됐다고 

영상 제작도 했는데 아쉽다고.. 


뭔가 억울했다. 

포장을 풀어 가면서 지적하시는 것 중에 잘못이 아닌 것들이 꽤나 있었다. 


그건 다른 공방이었어도 마찬가지인데… 

그건 아이가 그렇게...

일일체험으로 기성품같이 세련된 것을 기대하면 안 되는데...


찜찜함을 갖고 공방에 돌아왔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내가 잘못했고 나름 대안을 제시했고 이제 처분을 기다리면 된다. 


잠시 후 교회에서 전화가 왔다. 

기물이 누락되었다고 하신다. 개수가 맞지 않는다고.


당황스러웠다. 또 다른 잘못인가? 


어떤 것이 빠졌는지 물었고 그것은 내가 포장한 기억이 있었다. 

다시 찾아보신다고 하셨고 이후 연락이 없었다. 


나와 조율하면서 예약하고 진행했던 담당자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곤란한 상황이 되실 것 같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는데 다시 무료 체험을 하겠다는 연락은 없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체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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