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격 Oct 13. 2021

걱정 없는 사람이 될뻔했다.

에니어그램이라는 것이 있다. 

MBTI 같은 건데 사람 성향을 9가지로 정의하고 장단점을 기술하고 성향끼리의 관계성을 얘기한다. 


지대넓얕이라는 팟캐스트를 듣다가 알게 됐고 테스트 해 보니 나는 4번 예술가 유형이 나왔다. 

성향에 맞는 일을 하고 있기는 하다


팟캐스트에서 소개한 이유는 본인의 성향을 알고 신경을 좀 쓰는 것이 사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단 걸 좋아하는 입맛대로 살다 보면 성인병에 걸리듯 

몽상가에 혼자 있기 좋아하는 4번 유형은 성향대로 살다 보면 이(異)세계로 너무 멀리 가버려 고립되거나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내가 그랬다.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자신을 관찰하고 판단하는 데 도움을 주는 도구로 에니어그램을 소개한 것이다. 

예전의 나였으면 비웃거나 귀를 닫았을 것이다. 


그 따위 몇 가지 유형. 가볍고 경솔하다.


내 성향에서 몇 개의 특징이 기억에 남는다. 

4번 유형은 특별한 사람.

난 그냥 특이 취향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과도 좋아하는 음악이나 드라마가 달랐다. 

타이틀 곡보다는 숨겨진 곡, 남들 보는 드라마보다는 마니아 드라마. 

유행이다 싶은 건 싫었다. 

특별한 사람이라기보다 남다른 사람이 되고자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질투가 문제인 유형이란다.

그런가?


맞다. 

지금은 조금 덜 하지만 젊은 시절에는 분노와 짜증이 한가득이었다.  

피해의식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질투로 바꿔 말해도 되겠다. 

급발진하고 여유가 없었다. 

평가받는 것도 싫었다. 그냥 하는 말도 부정적으로 들렸다. 

인정할 수 없었고 두려웠다. 

억지를 부리던 시기였다.

그래서 편하지 않고 행복하지 않았다. 


나이 들면서 조금씩 나아졌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고부터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남들도 자세히 보면 대단할 것 없는 것을 목격하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조금.


그렇게 내려놓고 보니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즐겁게 사는 이들. 

텐션 좋고 가벼움이 적성인 이들. 

행복을 뿜 뿜 거리니 주변에 사람이 모인다.

그런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능력으로만 평가받을 것 같은 직장에서 만나는 이들이다. 

팀 분위기를 원활히 만드는 이들은 의미가 있었다. 

일이라는 게 혼자 할 수 없는 만큼 그들처럼 사는 것이 문제 되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느꼈다. 일을 대신해주기도 하고 문제 돼도 많이 화를 내지 않는다. 

저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덤벙거리고 어이없는 행동을 해도 일은 진행이 되고 시스템은 돌아갔다.

잘 돌아갈 필요 있나. 그냥 돌아가면 되지.

회의실의 우리 모습을 보고 


그 팀은 항상 즐겁네요.

우리 가요?


팽팽하고 긴장된 완벽함. 이건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스템이 장애를 일으킬 때면 콜센터로 민원이 폭주했다.


문자 몇 건 안 되는 것이 그렇게 흥분해서 욕할 일인가…


예전과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장애 보고서 쓰고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사죄하고, 코딩 검증이나 품질 테스트 강화하고…

몇 개월 그러다가 퇴사했다. 

4번 유형에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나는 큰 일을 성취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원한다”라는 테스트 항목이 있다. 

Yes로 선택하면 8번(지도자) 유형이 된다. 한 문장의 선택이 4번을 8번으로 만든다. 


필요 없으면 버림받을 거라는 생각을 갖고 살았다. 그 두려움에 어디에 속하든 역할과 책임을 다 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었다. 그렇다면 큰 일을 성취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원한다는 것에 “yes”를 해야 한다. 

젊은 시절의 나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버림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든 이후에 4번 유형이 된 것이다. 


용기가 생겨서 두려움이 극복된 것은 아니다. 잡고 있던 두려움을 놓았다고 하는 것이 더 가까울 것 같다. 

남을 의식하고 두려워하는 것을 그렇게 조금 놓아 버렸다. 




추석부터 네이버 예약이 뚝 끊겼다. 

혹시 부정적인 댓글이 있나? 

플레이스 정보 확인하고 블로그도 확인해봤지만 별다른 것이 없었다. 아무 댓글 없이 조용했다…

원래 추석 즈음은 안 되는 건가? 

평일은 이전에도 손님이 없었다. 주말은 선방하니까. 잘 되겠지.. 

나 답지 않은 생각을 했다.

근데 그 예측이 맞았다. 

전화로 예약하고 지나가 들르고 예전에 취소했던 분이 친구를 데려오고. 

예상이 맞았다. 


그리고 또 한주가 흘렀다. 여전히 사전 예약이 없었고 3일 연휴를 끼고 있는 주말이 왔다.

주말이잖아. 잘 되겠지. 

근데 별로였다. 

주말마다 30은 벌어야 월세 내는데 15 벌었다.  

이번엔 틀렸다. 


하마터면 걱정 없는 사람이 될뻔했다.  

작가의 이전글 취소가 3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