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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격 Jun 04. 2022

가족 이야기 (어머니)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

괜찮아지는 것과 익숙해지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닌 것 같다. 

익숙해지는 것만으로도 괜찮아야겠다. 


어머니 나이가 이제 여든다섯이다. 

당뇨를 안고 사신지 20년이 넘었고 각종 합병증을 갖고 계신다. 

모든 기능이 고통을 수반하는데 올겨울은 두통을 호소하며 병원을 다니셨다.

그 상황을 나와 형은 다르게 받아들였다.

 

고통이 심해서 응급실로 가는 엘리베이터에서 형은 탑승하는 사람들에게 웃으며 일일이 친절히 인사했다. 

어머니와 나는 누구에게 인사할 기분이 아니었다. 엘리베이터가 자주 멈추는 것도 거슬렸으나 형은 그렇지 않았다. 

마음이 무거운 나는 벌써 맥 빠지고 걸음걸음 한숨이었으나 그는 병원은 병원이고 인사는 인사였다.

그뿐이다. 군더더기가 없었다. 

못 마땅했다.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을 지켜보는 건.

힘이 든다. 

웬만하면 아침, 저녁을 어머니와 같이 먹는다. 안 그러면 입맛 없다고 간장에 밥 말아 대충 드신다. 내가 같이 먹을 경우 나를 위해서라도 반찬을 차려 놓고 드신다. 

그러면서 아픈 곳을 얘기한다. 오늘은 어디가 아파서 뭐가 잘 안 되고…


형이 가고 난 후에 코로나 양성이 나왔다.

몸살감기라고 생각하고 병원에 다니며 약을 드셨는데, 코로나였다.

고위험군이시지만 다행히 일주일 후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근데 후유증이 남았다.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니 거실 소파에 앉아 계셨다. 

불도 켜지 않고 TV도 켜져 있지 않았다. 

보통은 안방에 누워계셨던 분이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실 불을 켜자 먹다 남은 밥그릇이 하나 앞에 놓여 있었고 풀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셨다. 영혼이 없어 보였다.

치매가 오신 것이다. 

 

길을 읽어 버리시고 가방도 잃어버리셨다. 휴대폰, 지갑, 통장이 모두 들어 있었다. 

잃어버린 곳을 기억 못 하고 누군가의 도움으로 집에 오셨는데, 그를 기억 못 하신다. 그가 가방을 가져갔다. 

 

휴대폰을 찾아보려 애쓰다가 새로 개통하고 카드, 통장 재발급하고 주민등록증 신청하고 신경외과와 치매 검사받고 뒷수습하느라 일주일을 보냈다.


큰 병을 앓고 난 이후니까. 기력이 없어서 그런 거겠지. 지켜보기로 했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병원에서는 집중력을 높여 주는 약이라며 처방을 해 주기는 했는데, 나이가 많아서 어쩔 수 없다는..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섭섭할 만한 태도를 보여줬다. 다른 병원을 가봐야겠다.

괜찮을 때는 괜찮으시다가 가끔 뜬금없는 얘기를 하신다.  덜컹덜컹 마음이 내려앉는다. 

 

이후에도 넘어지시면서 다쳤다고 팔을 못쓰시고 발등에 물건을 떨어 뜨려 절룩거리시고

이제 집안 일도 하지 못하신다. 밥솥 작동법을 잃어버리시고 찌개는 대부분 태워 버린다. 

혼자서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냥 기계적으로 움직이면 되는데 감정이 개입되어 그 이상으로 힘이 든다. 

한숨이 나오고 짜증이 올라와 어머니에게 화를 내게 된다. 

이걸 못하냐고 추궁을 한다. 그러면 풀이 죽어 안방으로 들어가신다. 


거리 두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화를 내지 않으려면 그렇게 해야겠다. 

어머니 인생과 거리를 두자. 

형들이 그랬던 것처럼. 


어머니는 얼마 남지 않으셨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프면 병원에 모셔다 드리고 그뿐이다. 

뭔가를 기대하지 말고 실망하지도 말고 앞날을 생각하지 말고.

동요하지 말고.


아침, 저녁을 먹으면서 아픈 곳을 얘기하시는 어머니 옆에서 그런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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