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떠나가게 하는 사람.
심약한 사람이 몸까지 약해지면 사소한 일이 큰일이 된다.
속상한 마음이 몸까지 상하게 한다.
믹서기가 안돼서, 밥솥에 취사가 안돼서 심장이 내려앉고 몸이 쑤신다. 기운 없이 누워계신다.
내가 손보기 전까지 소소한 일에 밥도 못 먹고 누워계신다.
이래서 어떻게 살아요.
이렇게 생겨 먹은 걸 어떡해.
들으시라고 어머니 앞에서 크게 한숨을 내쉰다.
걱정을 사서 하시는 어머니는 항상 불안하다. 그렇게 살아오셨다.
아침이면 공방 그만 두라 하고 취업 얘기를 하신다.
낮에 놀러 왔던 단순 긍정 친구는 친구 일이라고 '괜찮아 잘 될 거야'를 남발한다.
둘 다 짜증 나지만 잘 될 거야가 낫다.
백번 낫다.
어머니는 38년생이시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대한제국 시대 분이다. (늦둥이인 나는 뵌 적이 없다.)
척박하고 거칠고 육아에 대한 개념이 없던 시절이다. 인권에 대한 개념도 없다.
어머니는 초등학교를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가사 노동을 시작으로 10대 시절부터 공장에 다니셨다.
외할아버지는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6명의 이모를 낳으셨고 큰딸(어머니)을 시집보내고 나서야 아들을 얻었다. 큰형과 외삼촌이 동갑이다.
그리고 아기 시절 세상을 떠난 이모가 둘이 있다고 얼핏 들었다.
지구 저편 가난한 나라의 모습과 비슷했을 것이다.
외할머니는 어머니를 포함해서 여자아이 셋을 낫고 돌아가시고 외할아버지는 재혼 후 다시 이모 셋과 삼촌을 나으셨다. 재혼한 외할머니가 어머니를 그렇게 잘 대해 주신 것 같지는 않다.
어머니는 ‘아이는 알아서 크는 것’이라고 방치하던 분위기에서 눈치 것 성장했을 것이다.
막내 이모는 이름을 지어주지 않아 어머니가 TV 드라마 여주인공 이름으로 부르고 그게 이름이 되었다. 아기를 방치해 놓아서 어머니가 밭에 있다가 주기적으로 살펴야 했다고 한다. 어려서 죽은 이모 둘도 어쩔 수 없는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의 잣대로 보면 범죄에 가까울 것이다.
기어코 아들 낳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모두 돌아가셨다.
어린 자식들을 남겨두고 돌아가셨다.
막내 이모와 외삼촌은 어렸기 때문에 우리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머니는 불쌍해서 거둬줬다고 말씀하신다. 당연한 일은 아니고 다른 방법이 없었던 듯하다.
형들과는 차별이 있었을 것이다.
무뚝뚝한 어머니의 새엄마에 대한 감정이 이모와 외삼촌에게 투영되었을 수도 있다.
이모와 외삼촌은 섭섭함과 억울함이 많은 듯하고 어린 기억이 점차 늙어 가면서 헤아림 보다는 분노 쪽으로 기울었다. 새삼 옛날 얘기로 싸우고 이제는 연락하지 않는다.
다른 이모들도 오래전부터 소원했다.
해외에 있는 셋째 이모와만 연락을 한다.
나 하고도 어머니 때문에 자주 연락을 했었다.
서울에서 내려와 어머니와 같이 생활하게 된 것에 대해서 반가워하셨으나
365일 최선을 다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하고 그 잔소리를 내가 달게 받지 않았기에 이제 나에게는 연락하지 않는다. 방문을 열어 놓으면 나를 두고 통화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본인을 보호하기 위해 상대를 탓하고 자신의 불쌍함을 이야기한다.
어머니는 사람을 떠나가게 하는 사람이다.
공방에 가마를 때면 더운 열기가 천장을 타고 퍼진다. 머리만 은은하게 달궈진다.
문 열어 놓고 선풍기 틀고 환기를 시킨다.
별로 뜨겁지 않은 열기에도 쉽게 두통이 온다.
산책을 해야 한다.
어느 날은 가마를 땠는데 머리가 아프지 않았다.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온다.
집에 안 들어오고 뭐하냐고.
오후 3시였고 잠자다 일어나신 어머니는 새벽 3시로 생각하셨다.
불안해서 전화하신 것이다.
밖에 보면 해가 떠 있는데, 구분 안되세요?
그걸 내가 아냐?
두통이 시작된다. 공방을 닫고 집에 들어갔더니 수육 냄새가 났다.
주방에 가 보니 고기 삶은 것은 없었다.
밥솥을 열어 보니 고기를 다져서 얼려 놓은 것을 보리쌀로 인지하시고 쌀과 섞어서 밥을 하셨다.
심약한 사람이 몸까지 약해지면 사소한 일이 큰일이 된다.
형이 가져가려고 사놓았다가 짐이 많아서 남겨 놓은 소주가 두 박스 있다. 이제 거의 다 먹었다.
나를 불쌍히 하고 누굴 탓하고 싶은 마음으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