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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격 Oct 04. 2022

무뢰한

자신감. 자존감. 자존심 서로 엮여 있는 단어들인데, 

과거에는 자존심에 대한 얘기가 많이 되다가 언제부턴가가 자존감에 대한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무례함, 진상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한 것 같다.  


수강생에게 설명하고 도움을 주다 보면 기분이 상하는 경우가 있다. 

귀찮은 듯 성의 없이 행동하는.

그런 사람 열심히 돕다 보면 나 혼자 열심히 하고 있다. 

딴짓하거나 휴대폰 하거나 그러고 있다. 현타 온다.

그런 낌새가 있으면 잽싸게 물러나 도움을 주지 않는다.

 

그런 분이 정기 수강을 하셨고 한 달간 이것저것 만들었다. 

꾸준한 정성이 필요한데 예상치를 넘어갔나 보다. 별로 힘든 일도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분에게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마음이 떠나 버리니 특별히 원하는 것도 없고 수강을 시작했으니 하기는 해야겠고 손에 물이나 흙 묻히기 싫으니 장갑을 끼고 하시기도 하고 당연히 잘 안되고... 

다른 사람들이 해 놓은 걸 따라 하는데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간다. 

 

그렇게 그냥 붙지 않아요. 

이렇게 하면 마르면서 금가요. 

그런 모양은 내려앉아요. 

다듬지 않으면 그냥 그렇게 나와요. 


후회되고 퇴로가 없다.

나도 산에 오르기 싫어하는 사람 밀고 당기면서 억지로 등산하는 기분이다. 

일이 아니었으면 여기 있어 나는 갔다 올게. 이런 성격이다 보니 나도 피곤해졌다. 

그렇게 한 달 정기 수강하고 한 달이 지나 결과물이 나왔다. 찾으러 오지 않을 것 같았는데 어려운 걸음 하셨다. 


이 정도면 잘 나온 거예요?


(그걸 왜 나한테 묻나. 남들과 비교해서 얘기해 달라는 건가?)


하신 만큼 나온 거죠. 


짧게 대답했다. 별다른 대답과 표정 없이 돌아가셨고 묘하게 피곤했다. 찜찜했다. 

 

아이들도 그런 경우가 있다. 

한 시간 정도 열심히 하고 그 이상은 좀이 쑤셔 들썩들썩하는 얘가 있다.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마무리는 엄마, 아빠의 몫이다. 

그중 가끔 

하기는 해야겠고 하기는 싫고. 


이렇게 하세요오 ~

그걸 내가 해야 돼요?

(집에서 편하게 사는구나. 좋겠다. 하지만 여긴 아니다.)

음~ 해야 돼요. 

빠르게 대답하고 멀찍이 물러선다.


정기 수강 일 때는 아직 재료비, 소성비를 별도로 받지 않고 있다. 수강생이 많지 않기 때문에 부담되지 않는다. 만드는 개수도 제한이 없었다. 많이 만들어 가시는 분이 없었다. 

그런데 작정하고 크고 많이 만드시는 분이 등장했다. 보통은 정도껏 하시거나 묻고 하는데 두 분이서 계획표를 짜서 가족 수대로 체계적이고 신속하게 만들었다. 꾸미고 뭐 하는 것 없이 수량이 우선이고 품질 같은 건 알바 아닌 상황이었다. 집에 가져가서 쓰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어가는 내 표정은 상관하지 않았다. 


(가마의 반을 차지하겠군..)


그 이후부터 정기 수강 신청을 하시는 분에게는 개수와 크기 제한에 대해서 얘기했다. 

자유로웠던 세상에 단속이 들어간 것이다. 


그렇게 수량을 늘려 가시던 분이 예전에 팔려고 만들었다가 별로 반응이 없어서 장식으로 진열해 놓은 컵에 대해서 물었다. 


저거 얼마예요?

(... 판다는 얘기 안 했었는데) 이만 오천 원이요.

그 옆에 건요? 

그건 팔려고 만든 거 아니에요.

이거는 요? 

그것도요.


그분이 말하는 것들은 시제품으로 만들었다가 마음에 들어서 한동안 열심히 내가 썼던 것이다. 

맥주 500cc와 소주 좀 섞으면 딱 맞는 크기에 손잡이도 편안해서 혼술이 유일한 낙일 때 애용하던. 

추억이 깃든 머그였다. 

그리고 다른 것도 예전에 취미로 하던 시절에 만들어서 재미난 모양으로 추억이 있다. 

팔 마음이 없었다. 


근데 그것에 꽂혀서 계속 팔라고 했다. 딱 마음에 든다고..

어쩌나 저렇게 원하는데, 가격은 또 어떻게 해야 하나? 

팔려고 만든 건 아니지만 판매 준비 과정에서 만들었던 것이고 정이 들었지만 그냥 머그컵이지 않나.

또 만들면 되지. 

나는 좋아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괜찮다 소리 한번 못 들은 얘들 아닌가.

그냥 팔자고 마음이 움직이고 있었을 때 좀 더 강하게 푸시가 들어왔다. 


왜 안 판다 그래 짜증 나게... 중정에 재떨이로 두면 딱인데.


난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흡연자들의 민폐 행동을 상당히 싫어한다. 

재떨이로 하겠다는 사람이 처음은 아니다. 

친구들이 술 먹고 2차로 공방에서 마무리하는 경우가 있다. 정성들이 만들어 놓은 것을 집어 든다. 

이거 좋다. 뚜껑 없냐? 재떨이로 딱이다. 

그들에게는 재떨이가 소중한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쓰레기통이다. 


됐어. 내려놔

돈 줄게.

됐어. 짜증 나니까 그만해.


답을 찾지 못하던 시절에, 화를 잘 내던 시절에 나는 그러했다. 

다시금 재떨이 얘기가 나왔다. 

생각이 복잡해지고 감정이 더해졌다.  

결국 타인이 보기에 그 수준인가. 

내 안에 갇혀서 혼자 흐뭇했던 건가.

사가서 뭐로 쓰든 난 돈 벌면 되는 거 아닌가.

그냥 물건에 쓸데없이 감정 이입하고 있는 건가

아마추어적인 감상인가

그분과 대치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피곤해졌다.

또 만들면 되니까. 뭘 또 만드냐 결국 재떨인데.


팔아 버렸다. 

두 개를 팔고 오만 원을 받았다.  


그분들이 가고 뒷정리하고 공방 문을 닫고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내려와 사람들 사이를 지나 집에 갔다. 


추억이 있지만 진열해 놓고 관심 끄고 있지 않았나. 

내일이면 또 잊어버리고 아무렇지 않겠지. 

비싸게 받을 걸 그랬나?

 

그렇게 그날 저녁이 되고 잠을 자고 아침 일찍 눈을 뜨고 씻고 

다시 공방에 갔다. 

앉아서 생각을 했다.

 

기준을 정하자. 아닌 건 아닌 것이다. 융통성이고 뭐고 그런 상황 아니다. 

정이 든 것은 안 판다. 

싫은 건 안 한다. 

아마추어적인 것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행동이다.  

이렇게 저렇게 흔들어 놓는 사람들에게 반사. 

조건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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