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듦새에 집중하기로 한 이후 디자인 고민은 그만하고 많이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다.
체험수업에 뒤따르는 은은한 잡무 후 시간 나는 대로 만들어 보고 있다.
체력 닿는 대로가 아닌 시간 나는 대로.
몸이 망가질 정도로 열정이 넘치는 사람은 아니다.
판매용으로 만들 그릇은 실크4B라는 백자토를 사용한다.
백자토로 불리는 것은 여러 가지인데 제조사에서 붙인 상품명 같은 것이 실크4B이다.
깨끗한 흰색을 띠는 백자토는 어두운 색의 흙보다 민감해서
만들기도, 굽깎이도 쉽지 않다.
- 굽깎이
체험, 취미용으로 공방에서 많이 사용하는 아이보리색 백자토는 판매용으로 애용되지는 않는 것 같다.
그 흙은 성형도 비교적 쉽고 꾸덕할 때 깎으면 부드럽게 잘 깎인다.
실크4B는 깎이지 않고 뜯기는 듯 거칠게 잘려나갔다.
그렇게 깎고 말리면 바닥에 금이 가는 경우가 많았다.
기대에 차서 만들고 며칠 후 뒤집어 보면 금이 가 있었다.
가슴이 스윽 내려앉는다.
반으로 갈라 바닥 두께를 확인해 본다.
바닥이 두꺼웠다.
벽면과 바닥의 두께가 일치해야 금이 가지 않는다.
예전에 만들어 놓았던 것을 폐기하면서 확인해 보면 두께가 일정했다.
퇴행인가?
슬럼픈가?
이후 좀 더 두께에 신경 썼고 일정한데도 금이 갔다.
너무 말랐을 때 굽을 깎아서 그런가?
좀 더 촉촉할 때 깎아 보았다.
뜯기 듯 깎이는 현상은 없어졌지만 기물에 힘이 없으니 얇게 다듬기가 어려웠다.
며칠 지나 뒤집어 보면 금이 가 있었다.
짜증이 난다.
때려치우고 싶어지고 흙이 문제고 제품용으로 사용해서는 안될 흙이라고 생각했으나
남들은 다들 잘도 만들어 팔고 있었다.
집어던지고 싶었다.
폭력성을 반성하고
영상 찾아보고
도자기 카페 검색도 하고
다시 이런저런 시도를 하였다.
체험 수업을 하면서 틈틈이 하다 보니 지리멸렬한 상태로 몇 개월이 지나갔다.
지금은 굽칼을 최대한 날카롭게 갈아서 쓰고 있다.
칼갈이 그라인더, 칼갈이 끌을 구매했고
기물을 말릴 때
보다 천천히 자주 뒤집어가면서 말린다.
축축할 때 만져보면 두께 파악이 잘 안 되니 굽깎이 후 다음 날 다시 확인한다.
많이 굳었을 때는 초경칼이라고 날카롭고 단단한 칼로 아주 얇게 깎아 보강한다.
아직도 호흡 한번 하고 기물을 뒤집어 보지만
금이 가는 경우는 많이 줄었다.
이제 남들 수준은 된 건가?
- 물레 차기, 성형하기
쫌 큰 사발을 만들어 팔려고 한다.
냉면 말아먹고
야채 비벼 먹고
할 게 많은데
실크4B는 아이보리 백자토에 비해서
점력이 떨어지고 자연스럽게 성형이 되지 않는다.
흙을 높게 끌어올리기 어렵고 옆으로 벌리면 힘 없이 주저 않았다.
내가 원하는 실루엣을 만들기가 어려웠다.
답답하고 짜증 났다.
지금은 흙이 단단할 때 만든다.
손가락 힘이 생겨서 단단할 때도 성형이 가능하다.
그리고 흙에 수분이 많아 무를 때에 만드는 형태가 따로 있다.
상황에 따라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되니 짜증이 없어지고 물레 차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남들 수준은 된 건가?
외부에서 문제를 찾고 싶었지만 당연히 내 문제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 당연한 건데 왜 핑계를 찾았을까
열등감, 조급함인가
나는 부족한 걸 알았을 때 불필요한 감정이 가로막지 않도록 관리해야 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