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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ia Choi Sep 07. 2023

아르카디아

향수 - 베토벤 교향곡 제6번 "전원"

날씨가 꽤 선선해졌다. 더위는 아직 여전하지만 높고 파란 하늘엔 뭉게구름이 떠 있고, 서서히 낙엽이 물들면서 가을이 왔음을 느낄 수 있다. 실내에 앉아서 밖을 내다보면 나가고 싶다는 충동이 마구마구 솟구친다. 이렇게 아름다운 날씨에 어둑어둑한 실내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해가 어느 정도 기울면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나간다. 아무생각없이 터덜터덜 걷다보면 머리도 맑아지고, 나도 모르게 이런 노래 저런 노래를 내 마음대로 흥얼거리고 있다. 까치인지 물까치가 떽떽거리고, 주인을 따라나온 강아지들은 열심히 이리저리 냄새를 맡으며 꼬리를 살랑살랑 움직인다.


벤치에 털썩 앉아 다리를 아무렇게나 꼬고 하늘도 봤다가, 무성한 나무도 봤다가, 길가에 핀 들꽃도 봤다가, 지나가는 사람도 구경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멀리 갈 필요가 어디있을까? 이곳처럼 내 마음이 편한 곳이 없는데...


우울한 일이 가끔 머릿속에 스쳐지나가지만 혼자 웅얼거리다 하늘을 보고, 그러다 또 오랜 시간 한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을  공원 한가운데의 커다란 고목을 쳐다보고 있으면,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는 명언이 생각나면서 걱정거리를 내 마음 한 구석 어딘가로 휙하고 치워버린다.


이렇듯 산책의 효과는 다이어트 등 신체적인 효과도 있지만, 신경을 안정시켜주는 심적인 효과도 뛰어나다. 그래서 많은 예술가와 철학자들의 전기를 읽어보면 산책을 즐겨했다는 기록이 빈번하다. 루드비히 반 베토벤 역시 산책을 즐겨했었다. 귀가 안들리는 상황에서 아름다운 자연을 느끼며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은 아마 그의일상에서 일종의 치료제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름다운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풍광을 담은 교향곡에 직접 "전원 (pastoral)"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각 악장마다 짤막한 표제로 자신이 무엇을 음악적으로 묘사했는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자연에 대한 애착이 돋보이는 세심한 배려다.


먼저 1악장인 "시골에 도착했을 때 깨어난 상쾌한 느낌"으로 시작한다. "옛날 옛적에" 같은 느낌을 동화의 첫 도입부의 시작으로 평화로운 전원을 묘사하고 있다. 이어서 새들의 지저귐이 인상적인  2악장 "시냇가에서의 풍경"으로 이어진다. 여기서도 베토벤은 친히 목관 악기의 연주는 꾀꼬리, 메추라기, 뻐꾸기의 울음소리라고 명시해 놓았다. 짧은 2악장이 끝나면 "시골사람들의 즐거운 회합"을 묘사한 3악장이 곧바로 이어진다. 빠른 스케르쵸 형식으로 시골사람들의 춤곡인 "랜틀러"를 차용했다. 술을 마시며 이리저리 춤을 추는 소박한 농부들의 축제가 연상된다. 그러나 3악장은 갑작스런 마무리를 지으며 뒤 이을 4악장의 "폭풍우"를 암시한다. 피콜로, 트럼본,팀파니가 합세한 가운데 현악기의 빠른 트레몰로 연주가 천둥번개를 동반한 갑작스런 소나기를 표현한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5악장 "목동의 노래, 폭풍우 이후의 즐거움과 감사"에서 다시 목가적인 평화로움이 서정적이면서도 유쾌하게 전개된다.  


조용히 앉아 듣고 있으면 유럽 어딘가의 평화로운 숲속을 산책하다 나온 듯한 느낌이 들면서 심신이 안정된다. 귀가 들리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자연을 묘사할 수 있다는 건 베토벤이 뛰어난 음악적 능력뿐 아니라 예민한 감수성 또한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베토벤의 목가적 교향곡에 가장 적합한 주제를 미술사에서 찾는다면 바로 "아르카디아"라는 고대의 아름다운 자연을 묘사한 그림이다. 그리스 펠레폰네소스 반도의 지역명에서 유래된 이 "아르카디아"는 살아있는 인간들의 천국, 즉 유토피아와도 같은 곳이다. 인간들의 이상향인 그 곳은 온화하고 따뜻한 날씨에 드넓은 평야에서 양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인간들은 속세의 욕심없이 아름다운 자연 그대로를 즐기며 때때로 양이나 치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낙원이다.


미국의 풍경화가인 토마스 콜은 "제국의 길"이라는 시리즈 중 두번째 작품인 "아르카디아"에서 당시 서구인이 그리워하는 목가적 이상세계를 뛰어나게 묘사했다. 저 멀리 올림푸스가 연상되는 높은 산이 보이고, 신에게 기도드리는 신전도 보인다. 커다란 나무 사이의 구릉에서 양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남녀노소 모두 춤을 추거나 산책을 하며 자연을 즐기고 있다.


만약 베토벤에게 "이 그림이랑 전원 교향곡이랑 찰떡입니다"하고 보여준다면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을 바로 지적했을지도 모른다. 새가 안 보인다느니, 사람들이 너무 띄엄띄엄 그려져 있다느니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베토벤 선생이야. 예리하시군"하면서 그림을 들고 후딱 자리를 벗어날 것이다.


누구나 자신만이 그리는 꿈꾸는 이상향이 있다. 저 멀리 지중해나 인도양의 이국의 에메랄드빛 바닷가일 수도 있고, 세상과 단절된 채 혼자서 온전히 편히 쉴 수 있는 소박한 집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동서양 고금을 막론하고 우리 모두 인간이라면 느끼는 자연에 대한 향수가 있다.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은 시각적으로 그려낸 그만의 "아르카디아"이다. 하지만 그의 음악을 들을 때  그리고 토마스 콜의 "아르카디아"를 볼 때 우리는 모두 "어머니와 같은 포근한 자연에 대한 향수"를 느끼며 마음이 편안해 진다. 그건 아마 인종을 막론하고 우리의 DNA 어딘가에 우리의 선조가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그리고 우리가 언젠가 돌아가야 할 그 곳에 대한 기억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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