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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ia Choi Sep 06. 2023

뱃놀이 하는 사람들의 점심식사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친구  - 쇼팽 "강아지 왈츠"

얼마전 끔찍한 뉴스를 보았다. 경기도 모처의 강아지 공장에 관한 기사였다. 제목만 보고도 너무나 마음이 아파와서 차마 클릭을 할 수 없었다. 몇 번이나 무시를 하다가 조심스럽게 클릭을 했다. 역시나 누른 것을 후회했다. 처음 사진부터 너무나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창문조차 없는 방에 죄수들마냥 박스안에 담겨있는 조그만 강아지들의 모습에 분노가 일었다. 결국 다 읽지 않고 뒤로 가기를 눌렀다. 이미 저 끔찍한 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굳이 기사를 읽지 않아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아마 눈치를 채셨는지 모르겠지만, 그렇다. 나는 강아지를 키우고 있다. 눈이 동그랗고 털이 달린 나의 강아지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사랑스럽고, 언제나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기쁨을 주는 소중한 존재다. 개를 키워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어떨 때는 사람보다 더 낫다는 것을... 세상에 지치면 강아지의 눈을 바라본다. 나에 대한 흔들림 없는 애정과 신뢰를 느끼면 어느덧 피로는 풀리고 기운이 샘솟는다. 이 조그만 생명체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이 길을 지나가는 그대, 만약 그대가 우연히 이 묘비를 기념한다면, 웃지 마오, 나는 그대를 위해 기도한다오, 비록 이것은 개의 무덤이지만 말이오. 주인은 나를 위해 눈물을 흘렸고, 주인의 손은 내 위에 흙을 쌓아올렸소.”

-고대 로마 시대의 개무덤 비문 중


고대 로마시대에는 개무덤을 따로 만들어 줄 정도로 "견권"이 높았다.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시대때부터 개는 인류의 반려로서 충실히 그 역할을 다해왔다. 그 덕분인지 그네들의 일상을 그린 회화에는 개들이 자주 등장한다. 잘 차려입은 부부의 초상에는 귀여운 애완견이 자식처럼 부인의 품에 안겨있거나, 온 가족이 모인 그림에서는 어린 주인의 발치에 가드처럼 의젓히 앉아 있기도 하다. 휴식을 즐기는 주인의 허리 옆에 딱 붙어서 자기도 사람마냥 졸기도 하고, 산책을 하는 주인을 따라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재롱을 부리기도 한다. 고대에서 현대회화까지 개들은 흔히 말하는 "꼽사리"로 여기저기 등장한다.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익히 아는 르느와르의 "뱃놀이 하는 사람의 점심식사"에서도 여지없이 우리 인간들의 최고의 친구는 스리슬쩍 등장한다. 파리 센강변 샤토섬의 푸르네즈 레스토랑에서 열린 소박하지만 유쾌한 런치 파티에 모인 이들은 모두 화가의 친구들이다.  점심식사 도중을 그린 이 그림은 지금으로 치면 그 자리를 기념하는 일종의 단체사진이라 할 수 있다.


산업화와 철도의 발달로 교외에서의 여가시간을 즐기된 파리지앵들은 파리 근교의 아름다운 명소를 찾아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며 복잡한 도시생활로 지친 심신을 달랬다. 이 날 라울 바비에 남작의 초대를 받은 이 유쾌한 그룹의 구성원은 다음과 같다: 오른쪽 맨앞의 남자는 귀스타브 카유보트, 르느와르의 친구이자 후원자이다. 자신도 재능있는 화가였으며, 르느와르, 모네, 피사로 등 친구를 위해 주머니 인심이 후했던 좋은 친구였다. 카유보트 뒤에 이야기를 듣고 있는 미남자는 언론인 안토니오 마지올로 ,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는 여인은 여배우였던 안젤 르골이다. 그들의 뒤로 세명의 그룹, 칭찬에 어쩔 줄 몰라하는 여인과 두명의 남자는 여배우 잔느 사마리와 예술가 폴 로트, 그리고 관료였던 피엘 레스트링귀이다.


다른 이들과 다르게 높은 모자를 쓰고 격식있는 옷차림으로 참석한 이는 예술역사학자 샤를 엡뤼씨, 그리고 그와 무언가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는 시인 쥴 라포귀라 알려져 있다. 그들 앞에 지루한 듯 물을 마시는 여성은 엘렌 앙드레 역시 배우다. 그 앞에 이 런치파티의 호스트인 라울 바비에 남작이 관객으로부터 등을 보이고 앉아있다.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바비에 남작의 이야기를 턱을 괴고 듣고 있는 여성은 루이즈-알폰시네 푸르네즈이고, 그녀의 오빠이자 이 레스토랑의 주인은 알폰스 푸르네즈가 화면 가장 왼쪽에 시원한 옷차림을 하고 파티의 참석자들을 쳐다보고 있다.


그리고 그림의 가장 귀여운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강아지를 안고 있는 여인이 등장하는데 바로 훗날 르느와르의 부인이 되는 알린 샤리고다. 그녀는 강아지가 귀여워 죽겠다는듯 식탁위로 들어올린 채로 뽀뽀를 하듯 입을 쭉 내밀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강아지는 사랑 그 자체다. 와인과 과일이 이리저리 널부러진, 식사를 거의 다 마친 식탁 위에 강아지를 올리고 뽀뽀를 하는 그녀를 건너편에 앉은 카유보트가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렇듯 초대받지 않았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그림에 등장한 강아지는 자연스럽게 우리의 시선을 앗아가며 입가에는 미소를 짓게 만든다. 강아지를 쳐다보는 알린 샤리고의 모습과 오늘날의 우리의 모습이 다를게 무엇일까? 이심전심,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아마 그녀와 강아지를 그린 르느와르의 마음도 같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녀의 강아지는 르느와르와도 아주 친밀한 사이일 수도 있다. 굳이 화가가 강아지를 그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강아지가 음악에 등장하는 경우는 있을까? 물론! 쇼팽의 "강아지 왈츠"가 바로 그것이다. 르느와르보다 30년 먼저 폴란드에서 태어난 "피아노의 시인". 그는 여류 소설가 "조르쥬 상드"와의 러브 스토리로도 유명하지만, 그보다 아름다운 피아노 명곡을 수없이 작곡하여 지금도 조국 폴란드의 영웅이다. 경쾌한 리듬을 자랑하는 그의 강아지 왈츠는 1847년 작곡된 곡으로서 단순하지만 반복되는 8분음표를 깨끗하게 연주하려면 상당한 연습이 필요하다. 일설에는 연인인 조르쥬 상드가 데리고 온 강아지가 자기 꼬리를 잡기 위해 빙글빙글 돌면서 노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받아 작곡했다고 하는데, 애초에 강아지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작곡에 대한 영감을 받기 힘들지 않았을까?


사랑하는 여인 상드와의 도피생활 중에 작곡된 이 곡은 여러 악재 속에서도 쇼팽이 유머감각을 잃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힘든 연애와 지병으로 인해 점점 음악가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의 삶이 궁지에 몰리고 있었지만 말도 안 통하는 강아지가 그에게 그나마 웃음을 가져다 주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주인을 보면 저 멀리서 헬리콥터 날개처럼 꼬리를 살랑살랑 움직이면서 까맣고 동그란 눈동자를 반짝반짝 빛내며 뛰어오는 강아지를 보면 일상의 복잡한 문제따위는 머릿속에서 금방 잊혀진다. 강아지의 감정에는 거짓이 없다. 언제나 주인에 대한 흔들리지 않은 애정을 보여준다. 수천년 동안 변하지 않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믿음. 말이 통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그들의 마음에 우리는 인간에게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받는다. 바로 이런 이유때문에 문학과 음악, 그리고 미술작품에 그들이 꾸준히 등장하는 것이 아닐까? 가족으로서 그리고 친구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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