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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ia Choi Sep 03. 2023

지베르니 근처 센강의 아침

 미라클 모닝 - 그리그, 페르귄트 모음곡 중 "아침기분"

부지런한 한국사람들은 잠을 자는 것을 죄악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요즘엔 건강한 몸과 정신을 위해 충분한 수면을 취해야 한다고 하지만, 십년전만 해도, 잠을 많이 자면 게으른 사람이란 인식이 팽배하여, 성공하려면 밤도 잘 새면서 열심히 일을 해야한다고 여겼다. 다행히 인터넷 미디어를 통해 잠의 중요성에 대한 칼럼들이 나오고 사람들이 성공보다는 웰빙에 대하여 더욱 관심을 기울임에 따라 이러 풍조는 많이 사라졌다.


요즘엔 인스타그램등 SNS에 미라클 모닝이라고 하여 다른 형태의 새마을 운동이 전개 중이다. 갓생을 위하여새벽에 일찍 일어나 명상을 하고, 공부를 하고, 운동을 하는 인증사진을 보고 있으면,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의욕이 불끈불끈 생길 수 밖에 없다. 덕분에 일년 전부터 아침 일찍 일어나 조깅도 하고, 기도도 하고, 책도 읽으며 열심히 이것저것 시도하다 보니, 알람없이도 새벽에 눈을 뜨는 것이 자연스럽다.


일어나서 제일 먼저 찻물을 끓인 다음, 제일 귀엽고 예쁜 잔에 티백을 넣는다. 따뜻한 녹차를 호호 불어 마시며 최대한 느릿느릿 걸어가서 컴퓨터를 켠다. 이리저리 인터넷 기사를 훑다가 마음이 동하면 옷을 갈아입고 조깅을 하러 간다. 왠지 몸이 찌뿡둥하다 싶으면 요가 매트를 펴놓고 뒹굴뒹굴 거리면서 음악을 감상한다. 다른 이와 비교하면 살짝 게으른 "미라클 모닝"이다. 너무 열심히 살다 번아웃을 경험한 적이 있어서 개인적으로 빡빡한 생활을 이제 지양하는 편이다. 슬로우 슬로우 퀵퀵~ 쉴 때는 여유를 가져도 좋다.


아침에 듣는 음악이라면 당연히 그리그의 페르귄트 모음곡 중 첫곡인 "아침기분"을 꼽는다. 제목부터 '아침에 들으세요'라고 작곡가가 써놓은 미라클 모닝 전용 음악이다. 클래식 음악을 모르는 이라도 이 음악을 들으면 "아 그 음악!"이라고 할 정도로 티비와 라디오에 배경음악으로 종종 나오는 음악이다. 아침을 여는 새소리를 묘사하듯 플루트가 첫 도입부를 제시하고 나면, 아름다운 아침 석양이 바다에 퍼지는 듯한 현악 연주가 잔잔한 물결을 치듯 전개되는데, 계속 듣고 있으면 커피 한잔 안 마실 수가 없다. 바다 저 너머 황금빛 태양의 석양이 흐물흐물 올라오다가 결국 번쩍하고 떠오르는 장면에서 가슴이 뭉클해짐까지 느낄 수 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유튜브로 느낄 수 있는 조그만 사치랄까? 잿빛 구름이 가득한 찌푸린 날씨에도 이 음악을 들으면 내 마음엔 화창한 태양빛이 비추는 듯한 착각이 들면서 호랑이 기운이 펑펑 솟는 듯 하다.


페르귄트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곡은 인형의 집으로 유명한 입센의 희곡에 곡을 붙인 것이다. 정확히는 "페르 귄트"인데, 바로 이 희곡의 주인공인 남자의 이름이다. 귄트씨의 아들 페르는 게으르고 여기저기 사고를 치고 다니는 한량 같은 청년인데, 솔베이지라는 처녀와 결혼을 하여 가정까지 꾸리고도, 역마살이 있는지 그녀를 버려둔 채 머나먼 뱃길을 떠난다. 공주도 만나고, 마왕도 만나고 이런저런 모험을 즐기다, 장사엔 수완이 있었는지 돈을 꽤 벌어 이제 고향으로 돌아갈까 했는데 폭풍우를 만나 모든 걸 다 잃고 만다. 빈털털이로 돌아온 남편을 착한 솔베이지는 따뜻하게 맞아주고, 페르 귄트는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잠이 든다.


"아침 기분"은 페르 귄트가 뱃여행 중 들린 모로코에서 맞는 아침을 맞는 장면을 묘사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 음악을 듣고 있으면 때묻지 않은 순수한 자연의 아름다움과 일출의 활기참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화가들은 일출을 어떻게 묘사했을까? 일출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화가들은 의외로 많지 않다. 일몰을 많아도 일출이 드문 이유는 아무래도, 예술가들은 올빼미 생활을 좋아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다행히 시시각각변하는 빛에 따른 자연과 대상의 형태와 색을 표현하는데 관심을 가진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업이 남아있다.


특히 부지런한 클로드 모네씨는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아침의 풍경을 많이 남겼다. 화통과 캔버스를 들고 아침부터 자리를 잡으려고 새벽부터 일어났어야 한다는 소리인데, 19세기의 미라클 모닝이 아닐런지... 아무튼 그는 유명한 지베르니의 수련 연못부터 시작해서, 파리의 센강, 루앙 대성당 등 많은 "아침"을 그림에 담았다. 빛의 변화에 따라 바뀌는 사물의 색을 포착하여 시간을 그림에 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륙이라 해가 아직 올라오지 않았다. 하지만 저 멀리 연핑크색의 노을이 보이고, 세상은 이미 밝아진 걸 보니 이제 곧 햇님이 서서히 얼굴을 드러낼 것 같다. 청아한 공기 사이로 버드나무와 숲속들이 서서히 때묻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어디선가 콜로라투라처럼 노래하는 새들의 지저귐이 들린다. 이슬이 맺힌 축축한 풀밭 한가운데서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니 졸음은 어느덧 사라지고 가만히 서서 서서히 떠오르는 해를 기다린다. 풀벌레 소리가 나즈막히 들리는데 인기척이 느껴져 주위를 둘러보니 저 멀리 조그만 배를 타고 해가 떠오르기 전에 열심히 서둘러서 붓질을 하는 모네의 모습이 보인다.


기록에 따르면 모네는 이 그림을 1896년에 시작하여 1897년에 완성하였다. 즉 해가 떠오르기 직전의 아침 풍경을 담기 위해 1년 동안 어쩔 수 없이 미라클 모닝을 하셨단 말씀이다. 그림 그리기에 가장 최적의 장소를 찾은 다음 조그만 보트를 만들어 자신의 아틀리에로 삼았다. 대단한 열정이다. 어쩌면 그는 빛에 매혹된 것이 아닐까? 사랑하는 연인의 머리카락 한 올도 소중한 것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아름다운 자연의 한순간도 놓치기 싫었던게 아닐까 싶다. 요즘 젊은이들처럼 갓생을 위해서가 아니라 예술에 대한 순수한 애정이 그의 미라클 모닝의 동기가 아닐까?


동기가 어찌되었든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는 것은 좋은 일인 것 같다. 여름엔 선선한 공기를 느낄 수 있어서 좋고, 겨울엔 아름다운 아침 노을을 볼 수 있어서 좋다. 일찍 일어나니 여유를 가지고 하루를 준비할 수 있고, 가벼운 운동도 곁들이니 몸도 건강해진다.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신체리듬이 있으니 미라클 모닝을 추천하지는 않는다. 다만 한번쯤은 아침 일찍 일어나 향긋한 커피와 함께 그리그의 아침 기분을 들으며 저 멀리 서서히 변하는 일출을 감상해보는 건 어떨까 싶다. 비록 아름다운 센강의 풍경만큼은 아니더라도 도시의 고층 빌딩 사이로 힘차게 떠오르는 붉은 해를 보면 반복되는 일상의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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