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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ia Choi Sep 02. 2023

마법사의 제자

Magic! - 폴 뒤카의 교향시 "마법사의 제자"

오래간만에 여의도의 더 현대 백화점을 방문했었다.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로 유명한 이 곳은 늘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풍부하다. 굳이 무언가를 사지 않았도 재미가 있다. 늘 그렇듯이 6층의 식당가로 제일 먼저 향한다. 아르누보 양식으로 꾸며진 거대한 철제 돔 모양의 울타리가 있는 이 곳은 이 백화점의 상징이다. 평일 낮인데도 주차장이 붐빈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이벤트가 시작했나 보다. 젊은 사람들과 어린 아기들을 데리고 온 부모님들이 가득 행사가  열리는 광장을 메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광장의 한 가운데는 마법사의 복장을 입은 미키 마우스가 팔을 벌리고 활짝 웃고 있었다. 


여의도 더 현대의 미키마우스 (직접 촬영)


이를 본 나 역시 백화점이 아니라 놀이동산으로 온 것처럼 마음이 들 떠 이리저리 사진을 찍었다. 이제 더 이상 디즈니 만화영화를 보지 않는 나이지만, 미키 마우스와 친구들 캐릭터를 보면 아직도 마음이 설레는 건 어쩔 수 없다. 왜 미키 마우스가 많고 많은 코스튬 중에 "마법사의 제자" 복장을 입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미키마우스가 부린 마법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평범한 공간을 단 한 순간에 즐겁고 흥이 넘치는 장소로 바꾸는 마법! 이런 마케팅의 생뚱맞음은 현대예술과도 일맥상통한다.


 


  

서울 여의도의 마법사의 제자 미키처럼 귀엽지는 않지만, 독일 오버하우젠 어딘가에 있는 "마법사의 제자(Zauberlehrling)"도 밋밋하고 지루한 공간을 상상력 넘치는 재밌는 공간으로 바꿔주고 있다.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며 휘어진 35 미터의 거대한 송전탑을 보면 먼저 꿈을 꾸고 있는게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미키의 고깔 같기도 또는 마법을 부리는 미키 모습 그 자체같기도 한 이 비현실적인 작품은 독일 베를린의 예술가 그룹 "잉게스 이데 (Inges Idee)"의 작품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깜찍하고 귀여운 캐릭터들을 예상치 못 한 일상의 공간 어딘가에 배치하여 관객이 마치 상상의 동화 속 어딘가로 초대된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재미지고 다양한 예술을 추구하는 젊은 예술가 그룹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무심코 산책을 하다 저 거대한 "마법사의 제자"를 본다면 누구나 처음엔 마법의 세계라도 떨어진 줄 당황했다가, 한참 동안 생각을 한다음 슬며시 웃음 지을 것이다. 아니면 드디어 동화 속의 주인공이 된 줄 알고 흥분했다가 아닌 줄 알고 실망했을지도...숨겨진 동심을 깨운다는 점에서 디즈니의 미키 마우스나, 흐물흐물 춤을 추는 듯한 철제탑이나 다를게 무엇일까? 


이렇게 상상만으로만 존재하는 것을 창작을 통해 현실로 이끌어 내는 점이 예술의 재미 아닌가 싶다.사실 밝고 쾌활한 마법사의 제자의 원조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발라드이다 (그 역시 고대의 어느 설화에서 영감을 받아 각색했다). 몰래 배운 마법을 시전하다 곤경에 빠진 어리숙한 마법사에 대해 재미나게 묘사한 긴 시인데, 내용은 대략 다름과 같다.   


스승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젊은 제자는 어깨 너머로 배운 어줍쟎은 마법으로 빗자루에게 물을 나르는 마법을 건다. 스승에게 그동안 구박이라도 당했는지 그 설움을 해소하기라도 하듯 빗자루를 종처럼 이리저리 부리며 신나게 일을 시키는데, 그만 멈추는 주문이 기억 나지 않는다. 당황한 제자는 계속해서 물을 나르는 빗자루에게 윽박지르고, 도끼로 조각을 내보기도 하지만 빗자루들은 더욱 늘어날 뿐이다. 늘어난 빗자루들은 열심히 시킨대로 물을 길러 나르고 결국 물바다 속에서 익사할 뻔한 제자를 스승이 나타나 구해 준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속담이 생각나기도 하는 이 시는 원문의 해학미와 반복되는 재미나고 동적인 운율이 특징이다. 여기에 영감을 받은 프랑스의 작곡가 폴 뒤카 (Paul Dukas)는 똑같은 제목으로 1897년 교향시를 완성하였다. 도입부는 눈 앞에서 신비한 마법가루가 흩날리는 듯이 시작되는데 전개가 될 수록 주인공의 절박한 상황이 눈 앞에 그려지면서 웃음이 나온다. 현악과 관악의 절묘한 조화를 통해 뒤뚱거리면서 끊임없이 물을 부어대는 빗자루에 절망한 마법사의 제자가 이리저리 이를 수습하려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그려지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클라이막스를 향해 가며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특히 목관악기와 금관악기가 번갈아 가며 빗자루들의 걸음걸이를 표현하는 장면에서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이렇게 고조된 클라이막스는 마지막에 스승인 대마법사가 등장하여 마법을 부려 물바다를 해결하면서 절정을 맞는데, 여기에 사용된 타악기의 효과에 통쾌함마저 느낄 수 있다. 


이 교향시를 더욱 쉽고 재미있게 감상하려면 디즈니가 만든 애니메이션 "마법사의 제자"를 추천한다. 귀여운 미키의 엉망진창 실수연발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그의 불행함과 반비례로 입가의 미소는 점점 커져간다. 특히 빗자루가 걸어가는 모습도 그렇지만 미키의 표정 연기가 일품인데, 애니메이터들이 얼마나 많은 연구를 하여 그려냈을까? 음악에 맞춰 모든 장면을 마법을 부린 듯 정확하게 묘사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을 했을지 대단한 업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밖에 없다. 진정한 예술의 경지다. 


월트 디즈니의 판타지아 영상을 보면 마법사의 제자외에도 베토벤, 스트라빈스키등 다양한 음악이 연주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음악을 적절하고 설득력 있게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낸 그들의 상상력에 놀랄 따름이다.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상상력이란 퇴보되기 마련인데, 어떻게 이런 동화적인 순수함을 유지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I only hope that we never lose sight of one thing – that it all started with a mouse”.

"모든 것이 쥐 한마리로 시작되었다는 사실 한가지만은 절대로 잊지 말아주세요"


-1954년 10월 27일 월트디즈니


비록 지팡이 하나로 반짝반짝 마법 가루를 휘날리면서 단 한 순간에 새앙쥐를 사람으로 만들거나, 호박을 화려한 유리 마차로 변하게 하지 않아도, 고대의 설화를 시로 만들어 후대 예술가들에게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이 된 독일의 시인, 단 몇 줄의 시를 보이지 않는 소리로 정확히 묘사해 내 한편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 프랑스의 음악가 그리고 쥐 한마리 캐릭터로 세상을 정복한 미국의 사업가, 이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진정한 마법사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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