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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ia Choi Sep 01. 2023

Weather Project

변하지 않지만 늘 변하는 무언가 - 드뷔시 "달빛"

오늘은 가장 크고 둥글다는 슈퍼블루문이 뜨는 날이다. 지금 놓치면 14년 후에나 찾아온다는 말에 유튜브에는 생중계로 달을 보여주고 사람들은 옹기종기 대화창에 모여 갖가지 소원을 털어놓는다. 나 역시 카메라로 어두컴컴한 어딘가를 찾아가 확대도 해보았다가 멀리도 해보았다가 하며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 아쉽게도 핸드폰 카메라를 다루는 기술이 부족해서인지 내가 찍은 블루문은 이전에 찍은 달들과 별달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속상한 마음에 슈퍼블루문이 뭔가 찾아봤더니 슈퍼문과 블루문이 합쳐진 것이란다. 


슈퍼문은 달이 가장 지구에 가깝게 오면서 크게 보이는 현상이고, 블루문은 한달에 보름달이 두번 뜨는 현상이란다. (두번째 보름달을 블루문이라고 한다). 내가 생각한 의미와 뭔가가 달라서 실망이 막심하다. 늘 그렇듯이 하얗고 둥근 보름달인데 괜히 나 혼자서 들떠서 북치고 장구치고 한 느낌이다. 망원렌즈로 찍지 않는 한 크기도 다 고만고만하다는데 뭘 그렇게 열심히 찍었는지 모르겠다.    

 

올라프 엘리아손은 늘 색다른 재료와 구조를 사용해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마법과도 같은 작품을 만들어 왔다. 빛, 물, 안개, 빙하, 이끼 등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자연의 요소를 새롭게 재창조하고 뜻밖의 장소에 배치함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다시한번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 내는데 탁월한 작가이다. 현대예술에서 일상의 익숙한 사물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서 만들어 낸 작가의 세계에서 관객의 예술적 체험은 다시 작가가 만들어 낸 세계에 더해져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같은 시간 속에 이런 피드백이 수없이 이루지며 하나의 작품에 관객의 수만큼 여러 개의 관점이 만들어 진다. 


엘리아손이 2003년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 설치한 거대한 인공태양은 우리를 다시 한번 현대예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반원의 단색광 조명은 거울이 달린 미술관 천장에 비춰져 원래 하나의 둥근 원인양 착시 현상을 불러 일으킨다. 여기에 천장에 비친 터빈 홀은 더욱 확장되어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공간이 되었다. 엘리아손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워터게이저를 이용한 인공안개를 만들어 내었다. 안개로 가득찬 공간은 사물을 더욱 아득하고 신비롭게 보이게 한다. 이렇게 해서 런던의 미술관 어딘가에 새로운 이세계가 만들어 졌다. 엘리아손의 고향 어딘가의 일몰 같기도 하고, 드넓은 우주 공간 어딘같기도 한 이 이공간에서 관람객들은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요가도 하면서 다시 자신의 경험을 이미 만들어진 예술 공간에 더한다. 


멀리 떠 있는 인공 태양을 보며, 사색을 하고, 실제 일광욕을 즐기듯이 누워있는 이들을 보고 있으면 관객들에게는 "이 곳이 어디인가?"보다 "이 곳을 어떻게 느끼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 마치 원효대사의 해골물처럼 중요한 건 우리의 마음이랄까. 블루문이면 어떻고 블러드문이면 어떻고 또 슈퍼문이면 어떠냐. 하얀 달님은 베토벤이 있을 때나, 내가 있을 때나 변함없이 늘 하늘 위에서 변함없이 우리를 비추고 있다. 


어두컴컴한 하늘에 작은 호수처럼 뜬 하얀 달은 보고 있으면 마음이 느슨하게 풀어지면서 감성적으로 변한다. 그래서 그런지 보름달이 뜨는 밤은 서양문화에서는 늑대인간이 나타나거나, 인간의 광기(lunatic)가 깨어나는 날이었다. 전기가 없던 시절에 휘영청 달이 뜨는 밤은 밤나들이 하기 좋은 날이었을 것이다. 아마 젊은 청춘들의 일탈을 막기 위해 어른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가 아닐까? 어두운 밤 하늘 아래 하얀 달빛을 받고 있으면 마음이 설레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지상정이니, 어른들의 걱정도, 젊은이들의 일탈도 모두 이해가 간다.


은은한 빛을 뿜어내는 밝고 하얀 달에 홀린 작곡가가 얼마나 많았을까? 그들이 남긴 작품 중 나는 드뷔시의 "월광"을 참 좋아한다. 이리저리 고요하게 반사되는 달빛을 보면서 내 마음도 같이 달빛에 따라 춤추는 기분이랄까. 프랑스의 서정시인 "폴 베를렌"의 "하얀 달"에 모티브를 얻어 만들어진 이 곡은 차갑고 고요한 달빛의 아름다움을 완벽하게 청각화했다. 


달이 두 개가 아니라면 폴 베를렌이나 드뷔시가 봤던 달이 내가 본 달과 다르지 않을 진데, 슬프게도 난 달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기술이 눈꼽만치도 없다. 그저 그들의 작품과 하늘에 뜬 달을 보며 감탄할 뿐이다. 그러면 어떤가? 중요한 건 내 마음아닌가? 나의 사랑하는 강아지와 가족과 함께 본 달이면 충분하다. 오늘 본 달이 아니더라도 그들과 함께라면 찌그러진 달이라도 아름답겠지. 슈퍼블루문이여, 14년 후에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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