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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ia Choi Aug 30. 2023

키스

사랑의 본질 -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 

"연리지"는 서로 다른 뿌리를 가진 나무 두 그루가 자라면서 하나가 되는 현상으로 "영원한 사랑"을 상징한다. 일종의 접붙이기로 파생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종이 다른 나무는 연리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에게도 이런 경우가 적용되는지 흔히 서로 닮아야 잘 산다고 어른들께서 자주 말씀하셨다. 나 역시 주변의 친구들이 결혼할 사람이라고 데리고 오면 그들이 너무 닮았다는 사실에 놀라 "혹시 잃어버린 남매가 아니냐"는 농담을 자주 했었다. 옛말처럼 그들은 서로 아끼면서 잘 살고 있다.


서로 닮은 두 사람이 만난다는 사실도 기적에 가깝지만 이끌리고, 맺어져서 오랜 시간을 함께한다는 것도 운과 노력이 따르지 않으면 이루기 어려운 일이다. 세상의 많은 부부들이 그림처럼 행복하게 살지는 않는다. 서로 다른 세상에서 살던 두 사람이 수많은 난간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말하지 않아도 아는 진정한 서로의 "반쪽"이 되는 과정은 한 편의 인간승리에 가깝다. 


프랑스 조각 대가인 로댕은 제자인 카미유 클로델과의 러브스토리로 유명하다. 24살이나 어린 예쁘고 재능이 넘치는 여제자를 얼마나 아꼈는지 그만 정분이 나버리고 말았다. 오늘날도 로댕하면 카미유 클로델이 떠오르고 카미유 클로델하면 자연스레 로댕이 떠올를 정도로 두 사람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자신을 사랑하였지만 절대로 뛰어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로댕의 "영원한 연인"으로 기억되다니 카미유 클로델의 말로를 생각하면 잔인하고 지독한 사랑이다. 애증, 예술가로서의 존경심, 영혼까지 이해하는 소울메이트, 둘 사이의 감정을 단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을까?  


로댕에게는 사실 카미유 클로델말고도 여러 여인이 있었다. 바람기야 으례 지금이나 예나 예술가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천성쯤으로 받아들여지니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다. 예술가의 변덕이 바뀔 때마다 여자들은 쇼윈도의 신상품처럼 곁에 한 철 머물다 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 로댕에게도 "영원한 연인 카미유 클로델"에게 가려졌지만 그의 젊은 시절부터  붙박이처럼 그의 곁을 지키던 조강지처가 있었다. 조강지처라는 법적인 부인이 되는 꿈은 나중에 이루어졌지만, 그 사이에 이미 아들까지 둔 평생의 파트너, 반려자라 해도 과언이 아닌 그녀의 이름은 로즈 뵈레. 그녀가 무슨 마음으로 수 많은 여자들이 로댕을 지나쳐가는 동안, 아니 로댕이 수 많은 여자를 지나쳐 가는 와중에도 로댕의 손을 놓지 않았는지, 또 로댕도 그녀를 외면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쨋든 두 사람 사이엔 범인들이 이해 못 하는 무언가가 있는 듯 하다. 


아들까지 두어서 그런지, 아니면 젊은 시절부터 한결같이 자신을 지켜준 그녀가 고마웠던지 로댕은 끝까지 그녀를 책임지려고 했다. 궁핍했던 시절이 지나가고 로댕이 성공한 예술가로서 대단한 부를 쌓게 되자 그는 로즈에게 정식결혼을 함으로써 재산을 물려주려고 한다. 비록 50여년을 기다려 일흔이 넘어서 한 결혼이지만 로즈는 감개무량했을 것 같다. 이미 같이 산 세월을 보면 정식부부나 마찬가지겠지만, 결혼식이란 당사자들에게는 정말 특별하고 소중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아쉽게도 로즈는 결혼식 이주만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제 "마담 로댕"으로 떳떳하게 사나 싶었는데 신이 그녀의 행복을 질투했나 싶다. 평생의 반려를 잃은 로댕 역시 큰 실의에 빠져 얼마 뒤 로즈의 뒤를 따라간다. 

로댕의 여성 편력 이야기만 빼면 두 사람의 이야기는 세기의 로맨스에 견줄 만 하다. 궁핍하던 젊은 시절부터 반백년을 기다려준 여인과 겨우 성공해서 이어지나 했더니 결국 여자가 죽자 남자가 따라 죽는 이야기...


까미유 클로델이 "영원한 연인"이라면 로즈 뵈레는 산전수전 다 겪은 "평생의 사랑"이 아닐까 싶다. 로댕의 평생의 역작 중 하나인 "키스"를 보고 있으면 로댕의 러브스토리가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면서 사랑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모델들이 누구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유명한 불륜 커플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와 파올로"라는 설이 제일 유명하지만, 까미유 클로델과 로댕 자신이라는 이야기에서 로미오와 줄리엣까지 다양한 가설이 나오고 있다. 



평생 기다려 결국은 맺어지는 해피엔딩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있는가 하면 불같은 사랑을 하고 맺어져도 평생을 이해 못 하며 전쟁같은 사랑을 하는 부부도 있다. 정 반대로 영화 "비포 선라이즈" 처럼 단 하루를 지냈을 뿐인데 평생 기억에 남는 연인도 있다. 서로에게 상처가 되어도 평생 헤어지지 못 하는 연인이 있는가하면, 너무나 사랑하기에 헤어져야 하는 이들도 있다. 로즈와 카미유처럼 세상엔 다양한 사랑이 존재한다. 


로댕의 조각을 보고 있으면, 단단한 하나의 돌에서 빠져 나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연리지 나무처럼 하나가 되어 뜨거운 입맞춤을 나누고 있는 연인이 보인다. 단단한 돌로 만들어져서 일까? 절대로 부서지지 않을 영원할 것 같은 그들의 사랑이 느껴진다. 하나의 돌에서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그들의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일까? 그들의 사랑은 어디까지일까? 단 한순간의 감정일까? 그래서 뜨겁고 소중한 것일까? 아니면 영원한 사랑일까? 그래서 단단해 보이는 것일까? 여러 버전이 있지만 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원본 조각이 가장 가슴에 와닿았다. 마치 순수한 날 것의 감정을 보는 것 같아 사랑이란 진정 무엇인가 고민해 보게 된다. 


사랑에 관해 가장 유명한 클래식 곡을 뽑으라면 말러의 교향곡 5번 중 4악장 "아다지에토"를 빼놓을 수 없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으로 이미 유명세를 탄 이곡은 고전영화 마니아라면 "베니스에서 죽음을" 그리고 피겨팬이라면 국민 여동생 김연아가 금메달을 획득한 캐나다 밴쿠버 올림픽에서 테사 버추와 스콧모이어어가 연인을 연기한 아이스 댄싱 배경음악을 떠올릴 정도로 "사랑"과 아주 연관이 깊다.


곡을 작곡할 당시 말러는 부인인 알마를 만나 사랑에 빠져 있었다. 훗날 부인이 될 알마에게 이 곡의 악보를 보내자, 말러의 "러브레터"를 알아챈 알마가 말러에게 자신을 보러와도 좋다는 답장을 보냈다고 한다. 과연 곡을 듣고 있으면 잔잔한 사랑의 맹세와 그에 대한 대답 같기도 하고, 연인에 대한 굳건하고 단단한 믿음과 열정을 느껴지는가 하면, 사랑하는 이와 맺어지는 듯한 환희도 느껴진다. 사랑의 베스킨라빈스라고나 할까. 드라이브를 하면서 무심코 듣다보면 '사랑이란 무엇일까?' 나도 모르게 고민하게 된다.  


말러의 아다지에토나 로댕의 키스나 듣는 이에 따라, 보는 이에 따라 여러가지 해석이 나올 수 있다. 우리가 가진 경험이 다르고 사랑에 대한 정의도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작품들의 전달하는 "보이지 않는" 사랑의 조건을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다. 그렇기에 작품을 보고 들으며 누군가를 생각하며, 가슴 속 어떤 감정을 떠올리며 아름답다고 느끼는게 아닐까?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이해를 하며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이 사랑의 본질이자 조건이 아닐까? 인간의 감정은 영원하지 않더라도, 연인이 맺어지거나, 맺어지지 않더라도, 두 사람 사이에 단단하고 기적과 같은 사랑이 존재했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을 것이며, 사랑의 본질 또한 영원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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