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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ia Choi Sep 04. 2023

바다 위의 폭풍우

여름이 지나가는 소리 -비발디 사계 중 "여름"

어젯밤 갑자기 천둥이 치고 비가 내렸다. 저녁 내내 후덥지근하다 싶었는데 비가 내릴려고 그랬나 보다. 처서가 되고 이제 시원해지나 싶었는데, 후덥지근한 날씨는 그대로다. 올 한 해는 정말 더웠던 것 같다. 해가 갈수록 더위가 점점 심해지니 앞으로가 걱정이다. 흔히 냄비 속의 개구리로 이상기후를 논할 때 언젠가의 일이라 생각하며 그려려니 고개만 끄덕였는데 이렇게 빨리 실감을 하게 될 줄이야. 너나할것 없이 에어콘으로 더위를 식히지만 여름이 될 때마다 에어콘으로 온도를 낮추면서 사는 것도 한계가 있으리라 본다. 자연과 인간의 기술 어느 쪽이 이길까?


어쨌든 올해도 이제 4개월 밖에 안남았다. 지독했던 여름이 이제 끝물이란 소리다. 어쩌면 어젯밤의 그 천둥소리는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가는 소리가 아니었다 싶다. 유난히 변덕스러웠던 올해 여름답다. 정말 지긋지긋한 무더위였다. 사람의 진이 빠지는듯한 무더운 열기와 소나기를 잘 묘사한 음악이라면 당연히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이다. 처음에 비발디 사계의 해설을 듣고 나니 저 멀리 이탈리아의 날씨도 이곳 대한민국의 여름과 별반 다르지 않구나 싶어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이과생이 나의 반가운 마음을 안다면 뜨거운 공기가 상승하여 구름을 만드는 게 자연스러운 자연의 이치이니, 여름철 무더위와 소나기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 여름이 연주되는 곡에 무더위와 소나기가 나오는게 뭘 그리 새삼스럽게 신기하냐고 비웃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18세기의 음악가가 겪은 여름과 21세기의 내가 겪는 여름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재밌다.   


붉은 머리의 천재 괴짜 바이올리니스트가 1725년 작곡한 음악 "사계"는 아마 한국인들 누구나 다 아는 아주 유명한 음악이다. 핸드폰 벨소리, 관공서 연결음, 지하철 알림음으로 봄이나 가을의 경쾌한 악장이 자주 쓰이고, 주목을 끌어야 하는 CF나 드라마의 배경음악으로는 겨울이나 여름의 심각한 분위기의 빠른 악장이 쓰인다. 각 악장마다 비발디가 썼을 지도 모르는 짧은 설명(소네트)가 붙어 있는데 여름의 설명은 대략 다음과 같다.


제1악장:  뜨거운 여름이 다가오면 타는 듯 뜨거운 태양아래 사람도 양도 모두 지쳐버린다. 느닷없이 북풍이 휘몰아치고 둘레는 불안에 휩싸인다.

제2악장:  요란한 더위에 겁을 먹은 양치기들은 어쩔 줄 모르며 시원한 옷을 입으면서 따뜻한 음식을 먹는다.

제3악장: 하늘을 두쪽으로 가르는 무서운 번갯불. 그 뒤를 우레소리가 따르면 우박이 쏟아진다. 잘 익어가는 곡식이 회초리를 맞은 듯 쓰러진다.

(출처: 위키피디아)


축축 처지는 듯한 뜨거운 열기부터 시작하여 갑작스런 북풍에 혼비백산 하는 모습, 엉망진창이 된 살림살이에 절망하는 모습, 그런 인간의 감정따위는 무심하게 잔인하게 인정사정없이 쏟아지는 폭풍우을 듣고 있으면 저절로 그 장면이 눈 앞에 그려질 정도로 음악적으로 탁월하게 묘사하였는데, 이런 걸 보면 비발디는 단순한 음악만 잘했던 천재가 아니라 관찰력과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었을까?


여러 솔리스트와 현악연주단이 호기롭게 비발디의 사계 음반을 내었지만, 가장 추천하는 연주는 이탈리아의 현악합주단 이무지치 (I Musici)의 연주다. 몇년 전 내한연주회에서 본 열정적인 연주는 이탈리안들의 감성 날 것 그 자체였다. 악장인 안토니오 안셀미의 신들린듯한 연주를 보면서 어쩌면 비발디 역시 짐짓 점잖을 빼면서 클래식적인 연주를 하기 보다는 빨간 머리를 흔들면서 자유롭게 자신의 감정 날 것 그대로 집시처럼 연주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안토니오 안셀미는 2019년 50세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RIP)   

 


생각해보면 자연은 절대로 점잖따윈 부리지 않는다. 언제나 정제되지 않은 날 것만을 보여주는데 늘 놀랍고 아름답다. 양식에서 자유롭고 기교를 부리지 않은 채 자연 그대로 날 것을 그린다면 어떨까? 이런 전제하에 어젯밤에 나를 잠에서 깨운 천둥을 그린다면 영국의 인상파 화가 존 컨스터블이 그린 "바다 위의 폭풍우" 같은 그림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1826년 그려진 이 그림은 결핵에 걸린 부인의 요양차 머물던 바닷가의 마을에서 그려진 것이다. 사랑하는 부인의 병색때문에 우울해진 마음이 반영되었는지 몰라도 마치 하늘에서 내려오는 피할 수 없는 거대한 재난을 보여주는 것 같다.


비발디의 여름 사계 "3악장"의 거대한 폭풍우가 갑자기 환하던 하늘 위로 몰아쳐서 하늘을 시커멓게 가려버린다. 망망대해에 쏟아지는 비와 바람을 피할 수 곳은 없다. 거대한 자연의 현상을 한낱 인간이 어떻게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시커먼 바다 위에서 파도가 사납게 배를 덥쳐도 그저 신에게 기도를 드리며 폭풍우가 지나가길 버티면서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잘난 인간이라도, 기술이 발달해도 막을 수 없는 것이 천재지변이다. 조절하고, 막으려할수록 자연은 곱절로 갚아준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가고, 나의 한 시절도 지나갔다. 이번 여름은 나에게 뜻깊은 시간이었다. 우연치 않게 브런치를 접하고 용기를 내어 한자, 두자 써내려 갔다. 처음엔 가볍게 시작하려 했는데 얼굴도 모르는 이들의 라이킷 덕분에 뿌듯함과 동시에 책임감을 느끼며 점점 진지모드로 바뀌는 중이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더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도 난다. 이렇게 또 한 번의 여름을 겪고나니 나는 더욱 단단해 졌다. 혹독할 정도로 뜨거웠던 그러나 설레였던 나의 2023년 여름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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