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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 Jan 27. 2021

오늘도 괴성을 지르고야 말았다.

아직도 내겐 너무 어려운 육아

내가 봄이라는 아름다운 존재를 갖게 된 일은 사실 필연이라기 보다는 우연에 가까웠다. 남들에게는 축복이라 불릴 일이었지만, 우리에게는 사건과도 같았다. 임신말이다.


혼전임신, 흔히 신호위반이라 불리는 결혼 전의 임신은 당사자들을 꽤 곤란하게 만든다. 우리도 다른 이들과 딱히 다르지 않았다. 주기가 비교적 규칙적이었던 내가 5일이 다 지나가도록 월경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별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 즈음 회사 이직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건강상의 문제라고만 생각했다.


먹는 족족 얹히고 체했다. 좀처럼 먹는 걸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몸인데 유난히 속이 답답하고 어려워 매 끼니마다 소화제를 복용했다. 임신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하고 '음식에 문제가 있었나?' 하는 막연한 생각만 가졌다. 돌이켜보면 정말 어리석었다.


그렇게 별 일 아닌 듯이 대수롭지 않게 시간을 보내다 현재의 남편인 남자친구를 만난 날, 정말 장난스럽게 건넨 한 문장 "테스트기좀 사다주세요"


걱정과 불안을 안고 부탁한 건 아니었다. 그야말로 장난이었다. 생리대도 나를 통해 처음 보고 만져본 남자였기에 짖궂은 장난을 치고 싶었다. 약국에서 얼굴을 붉히며 민망한 얼굴로 테스트기를 사다주는 모습을 구경하고 싶었다. 정말 단순히 그런 이유로 테스트기를 부탁했다. 기대를 져버리지 않고 붉은 얼굴로 테스트기 한 개를 내게 안겨줬다. 그리고는 화장실에 들어가 소변을 봤다. 한 줄이 나와도 두 줄이 나온 것처럼 호들갑을 떨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 눈에 보인건 선명한 두 줄이었다. 정말 두 눈을 씻고 봐도 줄이 두개였다.

이럴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보고 또 봤다. 테스트기를 한 개만 사오는게 아니었는데, 하는 10초간의 이상한 후회감과 함께 어리둥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나는 변기에 앉은 채로 남자친구를 불렀다. 크고 다급하게 불렀다.

평소에도 장난끼가 많았던 나라서 남자친구는 이번에도 장난일거라 생각하며 밍기적거리고 있었다. 왜 호들갑을 떠냐는 듯이 화장실 문을 빼꼼히 열었다. 그리고는 나를 내려봤다.

"왜?"


성가시다는 그의 얼굴에 두 줄짜리 테스트기를 건넸다. 그는 잠시 갸우뚱하니 고개를 기울였다. 좀 전의 내 모습과 판박이었다. 그리고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두 줄이 비임신인건가?"

웃음이 나는 질문을 했다. 아마 그도 임신일리가 없다는 생각을 간직하고 있었을 터였다. 당연히 우리는 임신이 아닐거라고 생각하며 화장실 문을 열고 화장실 안에서 소변을 봤으니 두 줄은 비임신이었어야 했다.


"두 줄이 임신이야"

내 대답에도 남자친구는 장난끼 가득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장난치지 말라며 손사레를 쳤다. 이런 걸로 장난치는 거 아니라며 두서없이 아무 말이나 막 내뱉고 있었다. 그리고는 5초간의 침묵이 이어졌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별안간의 침묵과 함께 느닷없이 문 앞에 주저 앉아 그간은 본 적이 없던 엄청 커다란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나는 변기에 팬티를 내리고 앉아 바닥에 주저 앉은 남자친구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제 3자가 있었다면 우리 둘의 모습이 꽤 충격적이면서도 괴랄했을 것 같다. 그 이상한 모습으로 우리는 봄의 처음을 맞이했다.




양가 부모님께 빠르게 알리고 3개월만에 결혼식을 마쳤다. 그 사이에도 배는 불러왔다. 나는 꽤 마른 몸이었는데, 아기가 생긴 뒤로 허벅지와 엉덩이, 아랫배에 어마어마한 양의 지방이 붙기 시작했다. 살면서 처음 보는 수준의 지방이었다. 나의 몸이 이렇게 변해가는구나, 하는 걸 누구나처럼 실감했다. 그 때까지도 내 몸 속의 '아기'에 대한 인식은 별로 없었다. 그때도 여전히 일을 다니고 있었고, 내가 하고 싶은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엄마가 될 준비', 혹은 '부모가 될 준비' 없이 맞이한 새 생명은 생각보다 예쁘고 귀했다. 눈으로 바라보는 아기는 한 없이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이런 존재가 우리의 자식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웠다. 물론 새벽에 일어나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주고, 또 재워주고 하는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나는 엄마니까, 라는 생각에 축나는 몸을 두고도 해낼 수 있었다. 봄이 돌쟁이가 될 무렵까지는 말이다.


내게 본격적인 문제가 생긴 건 돌이 지나면서부터였다. 왜일까. 몸이 아프고 힘든 건 차라리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봄에게 슬슬 자신의 생각이 생기고 자아가 생기면서부터 나는 조금씩 아기를 키운다는 것에서 아기를 버티고 있다는 말이 어울릴 만큼 조마조마한 정신상태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굉장히 게으르고 여유가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불편한게 싫은 사람일 뿐이었다. 시간을 당겨쓰는게 귀찮아서 대충 사는 사람일 뿐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봄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나의 영역을 침범하고, 나의 물건에 손을 대면서 나는 가슴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그만한 아기가 물건을 만지고 물고 씹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어찌 된 일인지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어하는 나를 발견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아기가 움직이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그것을 왜 못 참아서 스트레스를 받는 건지 좀처럼 나는 나 스스로를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봄은 22개월이 됐다.

제법 말이 빠른 봄은 이제 본인의 생각을 어느정도 말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자아가 생긴 것은 물론이고, 내 말에 싫어, 아니야 등으로 거절을 표현하기도 한다.


봄은 생각보다 순하고 귀여운 아이다. 낯을 가리지 않고 새로 만나는 얼굴에 더 반가움을 표현하는 외향적인 성격을 가졌다. 그래서 바깥에 나가면 꽤 이쁨을 받는 편이다.


하지만 그렇게 예쁜 아기를 기르고 있으면서도 오늘 또 나는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거의 괴성에 가까운 소리였다. 이번에 새로 들인 식기세척기는 손가락을 3초간 갖다 대고 있으면 '띵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는 방식이다. 고심끝에 들여온 친구라 그런지 정말 소중한 가전 중에 하나다. 봄인 습득이 빠른 아이인데, 내가 문 여는 걸 언제 봤는지 틈만 나면 가까이 와서 '띵띵' 하고는 문을 열고 식기세척기를 밟고 올라서기 시작했다.


누구나 그런 상황이 되면 당황스럽고 화가 나는 사람도 있고 짜증이 나는 사람도 있을테지. 나는 매우 화가 나는 편이었다. 그걸 보면 그 어느 때보다 이성을 잃고 "그거!!! 만지지!!! 말라고!!! 했지!!!!!!"라며 복식호흡을 곁들여 뱃속 깊은 곳에서 온 힘을 끌어와 괴성을 고래고래 지르고야 만다. 봄이가 한 일이라고는 문을 열고 식기세척기를 만진 것 뿐인데, 왜인지 그런 모습을 보면 나는 좀처럼 이성을 찾기가 힘들어진다.


나름 상냥한 엄마가 되기 위해서 여러모로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책도 열심히 읽어주고 엄마를 부르면 상냥한 얼굴로 예쁘게 미소를 지어주기도 한다. 그런 엄마가 손가락 하나를 움직일 때마다 괴물같은 얼굴로 괴성을 지르며 자신을 쳐다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싶은 생각이 아주 뒤늦게야 들곤 한다. 내가 소리를 지르면 봄의 얼굴이 한껏 슬퍼진다. 시무룩해지고 말이 없어진다. 조용히 뒤로 물러나 거실로 간다. 그 때 마저도 나는 씩씩대며 "하지 말라니까!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서 해!" 라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곤 한다.


왜, 나는 그렇게 해야만 했을까?

사실 하루하루가 조금 고되고 벅차서 내 삶 자체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반추하고 반성하고 뉘우치는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나를 돌아보려 글을 쓴다. 이 시간이 내 안에서 내 스스로의 해답을 찾는 귀중한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 시간에 치이고 체력에 치이며 하루를 버텨내는 엄마들이 많을텐데, 그들은 어떻게 소리를 지르지 않고 그 순간을 지나갈까?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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