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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 Jan 29. 2021

꽤 괜찮은 남편을 만난다는 것

처음엔 몰랐었다. 하기 전엔 모른다.

나는과거 남성편력이 꽤 있는 편이다. 아무나 잘 만나고 금방 헤어졌다. 솔직하게 말하면 남자를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에서 예의와 도덕이 없었다. 적어도 인간이라면 이정도는 지켜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정도의 적정선조차 없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양다리 삼다리 문어다리 핫다리 오징어다리 다리라는 다리는 이것 저것 다 해본 것 같다.


남편이 될 사람은 그 반대였다. 당연하고 평범한 이야기지만 그런 것들을 결코 용납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타입의 우직한 나무같은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엄청 굵고 든든한 느티나무같은 사람은 아니지만, 그런 면에 있어서는 극도로 격렬하게 강한 반응을 일으키는 대나무같다고 해야하나.


그렇게 다른 우리가 만난 건 소개팅에서였다. 나는 전혀 다른 직종으로 이직을 하면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당시 학원을 다니다 만난 친한 언니가 남편의 직장 동료라며 소개를 해준게 지금의 남편이다. 언니는 정말 이렇게 말했다. "나가서 알리오올리오나 한그릇 하고 와!"


정말 알리오올리오나 먹고 올 셈이었다. 사귀는 건 고사하고 먹고 커피까지 얻어먹는 건 좀 오바겠지? 하는 덜떨어진 생각이나 하면서 나간 자리였다. 드라마처럼 그 자리에서 서로에게 반하는 일도 없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남편도 "저 여자는 여기에 도대체 왜 나온거야?" 라고 생각했단다.



나는 꽤 외로움을 많이 타던 편이라 다양한 남자들과 동시에 연락을 하곤 했다. 애매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여러 사람들과 애매하게 연락을 하는게 일종의 위안이었다. 어떤 날은 이 사람을 만나고, 또 어떤 날은 저 사람을 만나며 서로 다른 얘기를 하고 내 즐거움을 채워갔다. 하지만 남편을 만나면서 이런게 다 사라졌다. 남편은 쉴 새 없이 연락을 했고, 일주일에 7일을 만나는 놀라운 체력을 보여주며 공식적인 관계로 나아가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나는 연락을 강요하는 것이나 그런 부분에 집착하는 것에 굉장한 피로감을 느꼈다. 나 스스로도 원래가 연락을 잘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를 감시하는 듯한 느낌과 나를 구속하려 드는 태도에 기분이 나빴다. 니가 뭔데 자꾸 나한테 일하라 절해라 감키워라 배키워라 애기낳아라 마라 명령질이야!? 그러나 나는 내 기분을 표현하는데 굉장히 서툴었고, 기분 나쁜 것을 말로 표현하기 보다는 말을 안 하고 연락을 끊는 이 세상 최고 나쁜 회피형의 대표적 유형이었다.


이것 역시 남편은 완전 반대였다. 남편은 화가나는 즉시 말을 해야 풀리고, 기분이 나쁜 건 그 자리에서 이야기를 해야 속이 좀 나아지는 것 같았다. 나와 남편의 모습은 극과 극에서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욕짓거리를 날리는 형국이었다. 일주일에 7일을 만나며 7일을 싸웠다. 경찰서에도 갔다. 나는 30년을 살면서 싸운 모든 횟수보다 이 때 싸운게 10배는 많은 것 같다. 10배가 뭐야, 100배는 많다. 회피하면 그만이었던 인생이었는데 어쩌다 저런 게 내 인생에 들어와서 내 하루를 이렇게 망쳐놓나 싶은 생각만 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헤어지고 만나기를 계속 반복했다. 안 만나면 그만인 사람인데, 둘은 욕을 하면서도 만났다. 매일 같은 걸로 싸우고 또 어느 날 정말 이상하게 화해를 했다. 이런 나날이 1년이나 지속됐다. 서로는 아낀다는 마음보다는 한 번 끝까지 가보자. 하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둘의 미래에 서로는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만나고 헤어지며 시간을 낭비하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불현듯 봄이 왔다.

정말 장난스럽게 봄이 왔다.

두 줄을 확인하고 병원에서 작은 씨앗같은 아이가 내 뱃속에 존재하는 걸 확인했다.


남편은 그 때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내가 찾아뵙고 말씀드릴게. 맞으면 아플까?"


자신의 오른 볼을 어루만지며 진지하게 내뱉었다. 그게 뭐야. 우리아빠가 널 왜 때려. 푸하하

처음엔 너무 다른 두 사람이었기에 걱정이 됐다. 우리가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여태 싸우기만 한 우린데 정말 괜찮을까?  


하지만 귀한 생명이 찾아왔다. 정말 봄날이 찾아오듯, 햇살이 스며들 듯 장난처럼 다가왔다.

그간 본 적 없던 웃음을 터뜨린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책임감 있는 모습으로 도장을 하나하나 깨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걱정하지 말라는 한 마디를 하고는 모든 일을 하나씩 처리했다. 부모님을 뵙고, 내게 부모님을 소개시키고, 식장 날짜를 잡고, 상견례를 하고. 결혼식을 위한 하나하나의 과정을 해 나갔다.


놀랍게도 결혼식을 준비하는 3개월동안 단 한번도 싸우지 않았다. 나는 그의 연락을 잘 받았고, 그는 꼭 필요할 때만 내게 연락을 했다. 정말 웃기게도 그 원하는 걸 서로 들어주고 나니 싸울 일이 없었다. 연락을 덜 하고, 오는 연락을 잘 받으면 끝날 일이었는데. 왜 그걸 못하고 1년을 내내 싸웠을까?


그 때 피터지는 혈투가 지금 우리 가정을 만드는 데 한 몫 한 것도 있다. 이제는 서로를 잘 알기 때문에 서로의 약점은 건드리지 않으려 노력한다. 남편은 당장 나에게 따지려 들지 않고, 나는 꿍하거나 속으로 앓기만 하지 않고 어떻게든 입으로 표현하려 한다. 생각보다 많은 우여곡절이 결혼 전에 벌어지는 바람에 신혼의 갈등을 쉽게 넘길 수 있었던 건 장점인가? 뭐 그렇다.



결혼을 하면 가장 좋은 타입의 남자로 친구 없는 남자, 게임 안 하는 남자, 술 안 마시는 남자, 담배 안 피는 남자를 들곤 한다. 남편은 이 모든 걸 다 갖췄다. 예전엔 이게 딱히 내게 장점이 아니었는데, 결혼하고 나니 정말 큰 장점이 되었다.


고집불통 자기밖에 모르는 남자인 줄 알았는데, 자기 사람밖에 모르는 남자였다.

자신의 아이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헌신하고, 그 아이를 낳은 아내가 힘들 때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었다. 연락에 집착하는 사람인 만큼 어디를 가더라도 꼬박꼬박 연락을 한다. 회사에서 미팅을 하러 갈 때, 외근을 나갈 때, 회식을 하러 갈 때, 회식자리를 옮길 때 등, 사실 나는 크게 궁금하지 않은데도 남편은 일일이 나에게 알려준다.


남편이 가장 걱정했던 내가 연락을 잘 안하는 부분은 내가 일을 그만두고 온전한 집순이가 되면서 저절로 해결됐다. 나 또한 외로움에 허덕이다 아무나 만나던 습관이 나만을 사랑해주는 가족이 생기면서 온전하게 사라졌다. 여전히 연락이 귀찮기는 하지만, 남편도 살아있는지 아닌지 수준의 연락만 바라는 정도라 연락으로 크게 싸울 일이 없게 됐다.



나는 육아를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굉장히 힘들어 하는데, 남편은 그 힘든 과정을 눈으로 보고 자신이 어떻게든 도우려 한다. 재택을 하면서 아이를 보려 하고, 내가 지쳐서 예민해지면 본인이 집안일을 하든, 아이와 놀아주든, 차갑게 가라앉은 공기를 어떻게든 환기하려 한다. 집안일을 미루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알아서 한다. 아이를 보는 일도 마찬가지다. 내가 부탁을 하거나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먼저 보고 먼저 한다. 뭐가 됐든. 일단 한다. 이렇게 나열하고 나니 남편이 결혼을 잘못했나 싶은 생각이 든다. 미안..


아마 봄이가 오지 않았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결혼이었다.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다. 친구들도 그만 만나라며 손사레를 치곤 했다. 아마 내 인생의 오점으로 남았을건데.


그랬는데

결혼을 하고 나니 이런 남자도 없다. 정말 인생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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