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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 Feb 16. 2021

골프채를 휘두를 때는 순서가 있어.

무턱대고 많이 휘두른다고 잘 할 수 있는게 아니야

남편은 참 성실한 사람이다. 어떤 일을 시작하면 뭘 하나 허투루 하는 법이 없다. 요즘 시작한 골프도 마찬가지였다. 울며 겨자먹기로 시작한 골프레슨이지만, 어찌나 그렇게 열심인지. 입으로는 욕을 하면서 손은 이미 긴 나무막대기를 들고 휘두르고 있다. 입과 손이 따로 노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참 대견한 생각이 든다.


남편은 그렇게 싫다던 골프 레슨을 하루에 한 번씩 꼬박꼬박 갔다. 나라면 미루고 미룰텐데 절대 미루는 법이 없다. 정해진 시간에 반드시 간다. 남편을 가르치는 코치님도 너무 자주 오지 말라고 했단다. 남편은 시작한 지 한달이 채 되지도 않았는데, 공을 많이 친 회원으로 벌써 5위에 이름을 올렸다.


결국 남편의 손목은 병이 났다. 아침에 일어나서 손목을 아예 움직이지 못했다. 골프를 칠 때 중심축이 되는 왼손이 특히 문제가 컸다. 당장 키보드를 칠 수 없을 만큼 손과 손목에 통증이 왔다. 남편은 성격이 급하다. 단기간에 승부를 보고싶어 한다. 빠르게 결과가 나오는 걸 좋아하고, 빨리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그래서 골프도 무리를 해서 휘둘렀다.


테니스도 비슷했다. 쉬는 법이 없었다. 완성할 때까지 미친듯이 쳤다. 레슨도 빠지지 않았다. 선생님을 들들 볶아 배울 수 있는 걸 최대한 끌어냈다. 다행스럽게도 테니스는 승부가 바로바로 나는 스포츠이다 보니 남편의 성질에 잘 맞았다. 경기가 재미있었다. 이길 수록 실력도 쑥쑥 늘었다. 테니스만큼 남편의 지랄맞게 급한 성질머리와 잘 맞는게 없겠다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골프는 전혀 달랐다. 자세를 잡는데만 온갖 생각을 해야 했다. 단순하게 그립을 잡고 휘두르는데서 끝나지 않았다. 힘이 많이 들어가서도 안 되고, 적게 들어가서도 안 됐다. 남편처럼 무작정 많이 휘두른다고 실력이 느는 것도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급하게 휘두르면 그 즉시 골프채는 땅을 치고 날아갔다. 남편의 과욕이 부른 손목 참사처럼 골프는 적당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깨닫게 했다.


오늘 남편은 일주일만에 다시 골프레슨을 받으러 갔다. 회사 일 때문에 시작한 레슨이지만 어쨌든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열심히 가고 있다. 다녀와서 남편이 꺼낸 말이 굉장히 인상깊었다.


"골프는 정말 재미 없지만 나 같은 사람한테 진짜 필요한 운동인 것 같긴 해"

"왜?"

"단계를 건너 뛸 수가 없어"

"답답하겠다"


남편은 순서에 맞게 차근차근 무얼 하는 것에 굉장히 취약하다. 결과가 바로바로 나오는 것에만 익숙해서 그런지 회사 일도 그렇고 집안일도 빠르고 급하게 해결한다. 남편이 재택으로 일을 하면서 알게 됐지만, 그렇게 일을 후다닥 해치울 수가 없다. 나는 끝까지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 마지막에 끝내는데, 남편은 받은 그 즉시 일을 다 쳐냈다.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다.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잘 해내지만, 섬세함을 요구하는 일에서는 스스로 갑갑해서 견디지 못한다.


물론 남편이 하고 있는 일이 세밀하고 섬세한 일은 아니다. 다행스럽게도 남편의 적성과 잘 맞는 일이라 크게 문제가 되는 건 없다. 하지만 삶의 구석구석에서 남편도 자신이 느끼는 스트레스가 있었나보다. 조립이란 걸 전혀 하지 못한다. 순서대로 차근차근 뭘 하는 법이 없다. 그래서 조립을 맡기면 항상 끝은 부셔져있다.


그래서 우리집 조립은 제가 다 합니다. 전등도 제가 답니다.

급한 성격으로 인한 불편함, 상대가 느리적거릴 때 솟는 분노, 내가 마트에서 계산을 느리게 하면 끓어오르는 짜증 등. 아무튼 다양한 부분에서 견디지 못하는 일들이 이곳 저곳 산재해 있었다. 특히 나무늘보과인 나와는 여러 부분 부딪힐 일이 많았다.


그런 삶의 어려움을 남편은 돈을 주고 골프를 치며 한 몸으로 견디고 있다. 손목이 아프지 않게 휘두르려면 급해서는 안 된다. 막대기 하나를 휘두르더라도 순서가 있다. 골프채를 휘두르며 삶의 교훈을 얻었다 한다. 자신같은 사람은 골프를 배워야 한다면서. 대신 나에게는 테니스를 추천했다. 제발 빨리빨리좀 움직이란다.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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