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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 Feb 17. 2021

성냥팔이 소녀의 신발을 훔쳐간 소년

다 내 마음 편하자고 하는 뻘짓입니다.


"엄마 우리 집은 성냥 안 필요해요?"


소년은 길가에서 성냥을 팔고 있던 소녀를 바라보곤 했다. 소녀의 짧은 단발 머리와 동그란 눈이 어린 소년의 마음을 흔들었다.


"성냥 사세요!"

소녀는 매일 같이 나와 외쳤다. 성냥을 외치는 소녀의 목소리는 꽃핀 들녘에 날리는 꽃가루 같았다.

매일같이 날아와 소년의 귀를 간지럽혔다.


소년은 소녀에게 다가가고 싶었다. 하지만 소녀에게 다가갈 방법은 성냥을 사는 것뿐이었다.


"우리집은 가스를 써서 성냥이 필요 없어. 성냥은 왜?"

엄마는 항상 성냥이 필요 없다고 말했다.

소년은 아쉬운 마음만 손에 쥔 채 소녀의 뒤에서 뒷모습만 바라봤다.


그렇게 여러 계절이 지나 또 다시 차가운 겨울이 왔다.

소년은 어느새 학교에 갈 만큼 자랐다.


"눈이 많이 내리네.."

소년은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다 학원 종소리가 울리자 마자 재빠르게 문밖으로 튀어 나갔다.


차가운 눈길을 친구와 앞다투어 빠르게 달렸다.

"야~ 야~ 이거 맞아라!"

소년과 친구는 보란듯 신나게 눈을 뭉쳐 서로에게 던졌다.

"너 죽었어! 낄낄낄"

소년과 소년의 친구는 정신 없이 눈싸움을 해댔다. 집으로 가는 길 내내 쌓인 눈을 뭉쳐서 던지고 받았다.

눈이 오는 게 마냥 즐거웠다.


"성냥 사세요, 성냥 사세요"

봄에도 여름에도, 그리고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에도 소녀는 성냥을 팔고 있었다. 학교도 가지 않았다. 소년처럼 학원을 가지도 못했다. 언제나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자리에서 성냥만을 팔고 있었다.


정신 없이 친구와 눈싸움을 하던 소년의 시선이 소녀에게 머물렀다. 자신만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아 소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주머니를 뒤졌다. 동전만 달그락 거렸다.

"아씨.. 이걸로 성냥을 살 수 있나?"

주머니 속 동전에 정신이 팔린 사이, 친구가 던진 눈덩이가 소년의 얼굴을 강타했다.

"와하하! 명중이네!"


소년이  표정을 찌뿌리며 얼굴에 묻은 눈을 털고 있는 동안, 소년과 소녀의 사이를 급하게 지나가던 오토바이가 소녀의 팔을 스쳤다. 소녀는 깜짝 놀라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소녀의 신발이 벗겨졌다. 넘어진 소녀는 당장 팔아야 하는 성냥을 줍느라 신발이 벗겨진 것도 모르고 있었다.


소년은 소녀의 곁에 달려가 소녀의 신발을 한 짝 주웠다. 눈 속 떨어진 성냥을 찾느라 정신이 없는 소녀에게 신발을 가져다 주려던 참이었다. 그 사이 친구가 재빨리 달려와 나머지 한 짝을 낚아 챘다.

 

소녀는 그것도 모른채 젖은 성냥을 쥐어 들고 양말도 없이 맨 발로 눈밭을 헤매고 있었다. 무릎을 꿇고 쌓인 눈 속을 뒤지며 자신의 신발을 찾고 있었다.

"이거봐라~ 신발 여기 있지롱~"


소년의 친구는 웃겨 죽겠다는 듯 손가락으로 신발을 팽팽 돌리며 소녀를 놀리기 시작했다.

"거지야~ 맨발의 거지야~ 신발 여기 있지롱~"

소녀는 울상을 지었다.

"신발 돌려줘.. 발이 너무 시려워. 신발 어서 돌려줘"


하지만 소년의 친구는 소녀를 놀리는 재미가 쏠쏠했는지 신발을 들고 자신의 집이 있는 방향으로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소년은 멀뚱멀뚱 그 광경을 지켜보다 자기도 모르게 빠르게 도망가는 친구의 뒤를 쫓았다. 혹시 소녀가 자신을 오해할까 두려웠다. 소년은 소녀를 도우려던 것 뿐이었는데. 소년은 소녀가 자신의 얼굴을 기억할까 한참을 달렸다. 그리고 뒤를 돌아봤다. 소녀는 없었다.


"나 간다! 내일 봐!"

집에 다다른 소년의 친구는 소녀의 신발을 소년에게 툭 던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소년은 신발 두짝을 손에 쥐고 가만히 쳐다봤다. 하늘에서는 다시 조용히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돌려주러 갈까.."

소년은 소녀의 파랗게 변한 발가락이 생각났다. 울먹이 어쩔 줄 몰라하던 소녀의 표정 눈 앞에서 아른거렸다. 하지만 소녀가 자신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을까 겁이 났다. 자신의 마음이 오해받는 게 무엇보다 가장 싫었다.


"에이 눈도 오는데 내일 갖다주지 뭐"

소년은 신발을 한 번 꼭 쥐었다. 그리고는 소중한 보물이라도 되는 듯 자신의 겉옷 안에 꼬옥 숨겼다.


"엄마! 저 왔어요"

"왜이렇게 늦었어, 학원은 잘 다녀왔니?"


소년은 소녀의 신발을 책상 아래에 숨겨두었다. 방을 오갈 때마다 책상 밑으로 시선이 향했다. 책상 옆을 지나갈 때마다 소녀의 얼굴이 떠올라 가슴이 두근댔다.


따뜻한 물에 온 몸을 씻고 나른한 기분으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 소녀에게 신발을 가져다 줄 생각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빨리 내일이 왔으면, 생각했다.


소년은 창문 너머로 내리쬐는 햇살에 눈을 떴다. 밖을 보니 눈이 한가득 쌓여있다. 밤새 소리도 없이 소복이 눈이 내렸다. 창 밖의 풍경은 한 없이 평화로웠다.


소년은 말끔하게 머리를 빗고 책상 밑에 숨겨둔 소녀의 신발을 꺼냈다. 소녀의 신발은 다 낡아서 밑창이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어떻게 이런 걸 신고 다닌거지.. 빨리 갖다줘야지"


소년은 급하게 옷을 챙겨 입고 양 겨드랑이 밑에 신발을 한 짝씩 숨겼다. 그리고는 거실로 나가 현관으로 향했다.

"엄마 몰래 나가야 하는데"

소년은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부엌에서 엄마가 뭘 하는지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눈치를 살피며 바깥으로 도망갈 준비를 했다.


"쯧쯧쯧.."

엄마의 혀 차는 소리가 집안에 울렸다.

"어린 게 성냥을 팔다가...가엾네"


성냥이라는 단어에 소년의 귀가 쫑끗 커졌다.

소년은 바깥으로 달려 나가려다 엄마에게 슬며시 다가갔다.

"성냥이 뭐요 왜요?"

소년은 당황해서는 아무 말이나 뱉었다.

"일어났니? 어딜 가려고 그렇게 옷을 입었어?"

"성냥이 뭐요? 뭐요?"

"아, 어제 우리 동네에서 성냥을 팔던 여자아이가 길거리에서 밤을 지새다 죽었대"

"네?"

"그 추운 겨울에 신발도 없이 눈 밭을 걸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소년은 귀를 의심했다. 그 소녀가 아닐 거라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빠르게 문을 열고 나갔다.

쉬지 않고 달렸다. 어제 소녀가 있던 곳으로 갔다. 친구와 함께 눈을 던지던 그 사거리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웅성이고 있었다. 아니길 바랐다. 신발을 돌려주고 싶었다.


눈에 익은 바구니가 길 한구탱이에 덩그러니 버려져 있었다.

소녀가 오토바이에 스쳐 넘어졌을 때 쥐고 있던 그 바구니였다.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리 둘러봐도 소녀는 없었다.

"신발도 없이 죽었대. 성냥불로 온 몸을 녹이려고 했다던데. 딱하고 가엾어서 어떡하면 좋아"

그곳을 지나는 모두가 안타까운 음성을 흘렸다.


소년은 양 겨드랑이에 꼭 쥐고 있던 신발을 다시 한 번 양 팔로 꼭 쥐었다.  


그리고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봄인 요즘 책에 관심이 많다. 그 중에서도 인어공주와 성냥팔이 소녀를 정말 좋아한다. 하루에도 열 번 씩 같은 책을 읽는데도 질리는 법이 없다.


성냥팔이 소녀를 읽어주다 보면 시선이 떨어지지 않는 장면이 하나 있다. 남자아이들이 성냥팔이 소녀의 신발을 훔쳐서 달아나는 장면이다.

"아이 큰일났네, 신발이 어디갔을까?" 소녀는 둘레둘레 신발을 찾았어요. "거지야 거지야 맨발의 거지야" 개구쟁이 꼬마들이 놀리며 소녀의 신발을 들고 달아나 버렸어요.

나는 항상 '내일 아침 죽어서 발견 될 성냥팔이를 보고 이 남자아이는 무슨 생각이 들까?' 하는 생각이 책을 읽을 때마다 든다. 하루에 열번 넘게 성냥팔이 소녀를 읽으니 나도 이 생각을 열 번을 넘게 하는 셈이다.


남자아이에게도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번 이 남자아이의 다음 날 느낄 감정을 내가 느꼈다. 그래서 그 아픈 감정을 덜어주고자 오지랖을 부려 그냥 이야기를 상상해봤다. 적어도 자기가 일부러 성냥팔이 소녀의 신발을 훔쳐간 건 아닌 걸로.. 다 친구의 탓으로 돌려버렸다.


아무튼 오지랖이 호남평야 저리가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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