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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 Feb 21. 2021

집순이와 집돌이의 딸로 살아남기란

코로나를 핑계로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게으른 엄마의 반성문

집에서 뒹굴거리는 게 세상 낙이다. 특히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게 가장 행복한 일 중 하나다. 나는 결혼하기 전에도, 후에도 집 한 구석에 박혀 텔레비전을 보며 여가시간을 보내곤 했다. 결혼하기 전에는 바깥 약속이 취소되면 그 날은 축제였다. 집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고 아무데나 앉아서 멍을 때렸다.


남편의 취미는 분명히 캠핑이었다. 과거형이다. 내 귀가 막히지 않았다면 캠핑이 자신의 낙이라 했다. 내 눈이 삐꾸가 아니라면 남편의 텐트도, 캠핑 테이블도, 캠핑 의자도 남편 트렁크 안에 있었다. 결혼 전에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근데 왜인지 남편은 언젠가부터 내 옆에서 오늘 하는 드라마 제목을 읊으며 리모콘을 돌리고 있다.

 

연애를 할 때도 우리는 집에서 제법 잘 놀았다. 당시 남친인 남편의 자취집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며 놀았다. 바나나킥과 허니버터칩을 사두고 바삭바삭 먹었다. 밀린 드라마를 같이 보거나 못봤던 고등래퍼를 다시보기했다. 텔레비전을 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훅훅 갔다. 남편의 캠핑 용품은 어느샌가 본가인 시댁으로 밀려났다. 사귄 기간을 포함해서 결혼을 하고 나서도 캠핑은 단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 (ㅋㅋㅋㅋㅋ)



봄이는 그런 집에 태어났다. 불행하게도 집순이와 집돌이가 사는 집에 태어난 봄이는 바깥에 나갈 일이 많지 않았다. 태어난 지 100일까지는 아직 어려서 위험하다는 이유로, 100일부터 200일까지는 덥다는 이유로, 200일부터 300일까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이유로 집에 있었다. 그래도 그 때 까지는 봄이가 잘 걷지 못하고 밖이나 안이나 큰 차이가 없어서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나 스스로 집에 있는 건 괜찮은데, 봄이가 내내 집에만 있는 게 괜찮은건가 하는 생각을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주변 시선이 두려웠다. 아이를 집에만 두고 밖으로 나가지 않는 엄마를 세상은 탓할 것 같았다. 애 엄마가 부지런하지 못하다며 손가락질 당할 것 같았다. 밖으로 나가 이것 저것 체험해봐야 아이들은 잘 자란다는데, 내가 어렸을 때 그런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봄이를 데리고 어디를 나가는 게 정말 힘들었다. 집이 좋았고 집에서 책을 백 번 읽어주는 게 차라리 자신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주변 친한 친구들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미혼이 대부분이고, 결혼을 했어도 아이를 낳지 않은 경우가 많아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해 비교를 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예전에는 자주 드나들던 카페 어플까지 일찍이 지워버려서 남들이 뭘 입히는지, 뭘 먹이는지, 어떻게 놀아주는지 알 방도가 없다. 그래서 더, 더, 더! 강렬하고 열정적이게 집에만 있었다. 친정엄마가 "애좀 데리고 좀 나가라!"고 말해서 내가 너무 집에만 있나,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코로나가 왔다. 그것도 정봄이 막 달리기를 하는 시점에 와버렸다.


나는 봄이가 12개월이 되면 꼭 문화센터를 데리고 가겠다며 나 스스로 결심했었다. 그건 나에게 하는 반강제 약속과도 같았다. 니가 엄마라면 적어도 문센 한 번은 가줘야 하는거 아니겠냐? 라며 그 때의 나에게 밖으로 나가는 것을 다 미뤄뒀었다. 12개월에 갈 거니 지금은 안 나가도 돼, 지금은 집에 있어도 괜찮아라며 내 주특기 미루기 신공을 마구 펼쳤다. 돈이라도 잔뜩 내고 나면 어떻게든 나가겠지, 하는 무책임한 마음도 없지 않아 쬐에끔 있었다. 그런데 봄이가 막 돌이 되는 시점에 코로나가 창궐하기 시작했다.


집순이에게 코로나는 마치 면죄부와 같았다. 그야말로 초특급 면죄부였다. 예전엔 집에서 나가지 않는 게으른 엄마를 욕하는 것 같았는데, 이제는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칭찬을 한다. 나는 가슴이 설렜다. 애기 데리고 어디 안 나가니, 하는 질문에 당당하게 답할 수 있었다. 사실 그런 질문 자체가 요즘은 성립되지 않는다. 밖으로 나가는 가족들을 욕하는 시대가 올 줄이야. 누가 알았겠나? 코로나는 위험하니 저희는 집에만 있지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바깥은 위험해요


정말이지 문센도 키즈카페도 문을 모두 닫아버렸다. 봄이는 살면서 문센도 키즈카페도 한 번 못 가본 아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슬프고도 아슬아슬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쯤 되니 남편도 우리가족이 너무 집에만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나보다. 봄이는 하늘도 창가에 앉아서 눈으로 익히고, 자동차도 주차장을 내려다 보며 빠방이가 뭔지 알았다. 눈과 비도 모두 창문을 통해서 접했다. 눈은 차갑고, 비는 물이라는 걸 봄인 바라보고 알았다. 느껴보지 못했다.


집순이와 집돌이는 이제야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우리의 게으름에만 취해 봄이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기회들을 박탈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고 있었다. 너무 춥다는 이유로, 봄이가 감기에 걸린다는 이유로, 코로나가 도처에 깔렸다는 이유를 들어 눈도, 비도, 바람도, 새도, 길가의 냥이도 봄이는 접할 기회를 잃었다. 사실 이런 것들은 멀리 나가지 않아도 충분히 만날 수 있는 것들인데. 게으른 엄마는 오늘도 책장을 넘기며 비도, 눈도, 멍멍이도, 기린도, 사자도, 그렇게 봄이의 세상에 주입하고 있었다.



오늘은 날이 좋았다. 온도도 적당하고 바람도 선선하게 불었다. 미세먼지가 안 좋았지만, 집에 있는 일산화탄소보다는 건강할 것 같았다. 아빠도, 봄이도, 엄마도 산뜻하게 옷을 입고 나갔다.


핸드폰 속 사진첩을 보니 온통 거실 사진뿐이다. 집에만 있으니 사진 속 옷도 내복에 부시시한 것들뿐이었다. 내 사진첩 기억 속에도 거실 밖에 없는데, 자라나는 23개월 머리 속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지 잠시 몽롱해졌다. 너의 머리 속에는 수면바지와 암막커텐과 엄마의 늘어진 목티만 남아 있는 건 아닌지.

슬프게도 봄인 밖을 좋아한다. 나무도 아파트도 자동차도 바퀴도 냥이도 구구구도 쉴새없이 말을 해댔다. 미안하다..


온도, 바람, 날씨까지 삼박자가 맞아야만이 밖으로 나오는 집순이와 집돌이의 딸래미, 너는 집순이가 되는 걸 자처한 적도 없는데. 강제 집순이행 시켜서 정말 미안해. 물론 아빠는 스스로 리모컨을 잡고 집돌이가 된 거니 미안하지 않아. 앞으로는 너와의 기억이 춥고 불편하더라도, 시원하고 차갑고 뜨겁고 따뜻한 것이 뭔지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할게. 게으른 엄마가 사과한다.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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