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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 Feb 24. 2021

요리똥손이 빵을 만들면

시부모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내가 베이킹을 시작하게 된 건 순전히 게으름 때문이었다.


봄이가 막 돌이 지날 무렵, 밥 말고도 간식으로 줄만한 게 필요했다. 고민고민하다 떠올린게 겨우 식빵이었다. 마트에 오며가며 지나친 유기농빵집이 생각났다. 유모차를 끌고 7분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곳이었다.


처음으로 빵을 사러갔다. 여름이 막 시작된 초여름이었다. 나름 짧은 옷을 입었는데도 등에 땀줄기가 흘렀다. 봄인 덥다며 유모차 안에서 칭얼댔다. 그렇게 봄일 달래가며 귀차니즘의 끝판왕이 간식을 사겠다고 도착한 그곳에서 만난 식빵은 손바닥만한 반토막 난 식빵 한 줄에 5천원. 눈을 의심했다. 뭐라구욧 식빵을 반으로 쪼개 놓은 크기인 것도 모자라 오천원이라구욧


땀을 흘리며 도착한 곳에서 너무 비싸다며 돌아나올 수 없었다. 애써 골라 결제를 하고 집어서 빠르게 집에 왔다. 식빵 하나를 잘게 잘라 그릇에 담아 봄이에게 줬다. 당연히 웃으며 맛있다고 헤헤 할 줄 알았다. 하지만 봄인 한 입 물더니 보란 듯이 집어 던졌다.



화가 났다. 왜 안 먹니. 왜 줘도 못 먹니. 이게 얼마 짜리 빵인 줄 아니. 엄마가 너를 위해 무려 14분이나 걸어서 무려 유기농 식빵을 사왔다 이 말이야. 엄마랑 아빠는 먼지구덩이에 구른 빵을 먹어도 배부르단다. 너는 유기농을 먹으래도. 왜! 왜! 왜 유기농식빵을 사왔는데 먹지를 못하니..!!!


가슴 속에서 울분이 터져나왔다. 이상한 데서 끓어오르는 나의 뜨거운 심장을 느꼈다. 먹어! 먹으란 말야! 인력거 끌 듯 유모차 끌고 사왔단 말이야! 으앜! 부왘! 아무튼 이 더운 날 바깥에 나갔다 들어왔다는 이상한 억울함에 봄이에게 괜한 투정을 부렸다.


게다가 내 핸드폰 사이즈만한 식빵 열 장이 오천원이었다. 두 입이면 끝날 것 같은 사이즈였다. 남편도 퇴근 후에 "오 빵이네!" 하고 먹으려다 유기농 세 글자를 보더니 냉큼 내려놨다. 그의 직감은 대단했다. 그래, 그거 우리 먹는 빵 아니야.. 그거 봄이나 먹을 수 있는 황금씩빵이라꼬.


하지만 봄인 먹지 않았다. 엄마를 닮아서 달달구리구리한 것만 입에 맞았던 모양이다. 그 때 까지는 단 것도 먹어본 적 없으면서, 왜 안 먹었는지 아직도 의문이지만. 그냥 식빵을 안 좋아했던 걸로 마무리를 지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식빵. 그 까이꺼 집에서 대애충 만들면 될 것 같은데. 왜 그 비싼 돈을 주고 7분이나 걸어 나가서 사와야 한단 말이야. 오며가며 다 합치면 무려 14분인데! 그 시간동안 만들고 말겠네. 그래. 만들자 만들어! 그냥 그거 내 돈주고 만들고 말지!


그렇게 마트에 가서 이스트와 강력분을 사왔다. 그리고는 이 세계 요리 똥손을 넘어 요리고자로 일컬어지는 내 손으로 유튜브를 찾기 시작했다. 이런 소식을 들은 친구들은 뜯어 말리기 시작했다. 빵을 파는 사람들이 괜히 있겠냐며, 그거 먹고 봄이 병원 가면 어떡하냐며. 아무튼 안 들어도 될 농담을 일주일은 들었다.


남편도 소심하게 거들었다. 자기는 빵집이 그렇게 좋단다. 유기농빵집이 너무 멀고 부담스러우면 그냥 옆에 있는 뚜레쥬르를 먹이잔다. 그거 먹어도 안 죽는다고, 내가 만든 건 죽을 수도 있다는 이상한 뉘앙스를 풍기며 나의 제빵에 자꾸 제동을 걸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귀는 닫으면 그만이지!


그렇게 빵을 만들었다. 그리고 보란듯이 실패했다.



빵을 만드는 과정은 대략 이렇다.


1. 반죽을 미친듯이 30분간 치댄다.

2. 1차 발효를 한다. 이 때 전자렌지에 반죽과 함께 뜨거운 물 한 컵을 같이 넣어두면 발효가 빨라진다. 대개는 60분에서 90분정도 걸린다.

3. 두 배로 부푼 반죽을 원하는 사이즈로 잘라 공굴리기 하여 15분간 중간발효를 한다.

4. 원하는 모양으로 예쁘게 성형을 한다.

5. 2차발효를 한다. 대개 30~40분정도 걸린다.

6. 오븐에 굽는다.

(적고 보니 꽤 번거롭네)


나에게 문제가 된 부분은 2번이었다. 2번부터 틀려먹었다.

온도가 높으면 발효가 빨리 된다. 이를 위해 전자렌지에 뜨거운 물을 넣고 온도를 높여주는 건데, 나는 뜨거운 물을 넣고 렌지를 돌렸다.(깔깔웃음) 30초나 돌렸다.

이 떄는 오븐도 없어서 에어프라이기에 돌렸다.

그러니 반죽이 익지. 반죽은 익고 말았다. 부풀지 못하고 익어버렸다. 그렇다! 익었다!

6번까지 가야 하는 반죽이 2번에서 익었다. 그냥 길게 말할 것도 없이 대박 망했다. 근데 그 때는 대박 망한 줄 몰랐다. 음. 왜 안 부풀지? 하면서 저 상태 그대로 6 번까지 쭈욱 갔다.

남편과 친구들의 비웃음을 산 식빵의 잔해

더 웃긴 건 이 날 시댁에 갈 일이 있었다. 당시 시댁은 차를 타고 15분정도 거리에 있었다. 그래서 왕래가 잦았다. 어머님이 맛있는 걸 하시면 부르기도 하시고, 맛있는 반찬을 가져다 주기도 하셨다. 그래서 매번 빈 반찬통을 가져다 드리는 게 민망하곤 했다. 그런 민망함을 왜 거기에서 떠올렸는지


"오! 이거 첫 식빵이니까 어머님 갖다드리자!"


저는 죽일 ...입니다..



"어머님! 제가 빵을 만들었어요!"


왜 주접은 그런데서 부리게 됐는지 아직도 모를 일이다. 나는 확실히 그런 타입이 아닌데. 나는 무뚝뚝의 대명사인데 왜인지 요리고자가 먹을 수 있는 걸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에 흥분을 한 모양인지 결국 주접을 떨며 손으로 빵을 꺼내고야 말았다. 어머님이 그릇을 꺼내게 뒀으면 음식쓰레기겠거니 알아서 버리셨을텐데, 왜, 도대체 왜 이상한 주접은 항상 생각지도 못한데서 튀어나오는지 모를 일이다.


조용한 시식 시간이 흘렀다. 아버님도, 어머님도 조용히 입만 오물거리셨다. 침묵의 시작이었다. 쩝쩝 소리만 들려왔다. 남편도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있는 건 나와 봄이뿐이었다.


"맛있구나.. 아가야.."

"그래.. 맛있네.. 맛있다.."


어머님과 아버님은 빛의 속도로 빠르게 흡입하셨다. 흡입이라는 행위가 무조건 맛있다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다. 이건 필시 며느리를 향한 사랑이었다. 우리집이었으면 당장 "야 갖다버려라!" 했을건데. 다시는 밀가루와 이스트를 모욕하지 말라며, 환경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더 이상 음식물 쓰레기를 만들지 말라며 한 소리 들었을텐데.

 


내 실패한 첫 식빵이 처음이자 마지막 베이킹이 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내 베이킹을 향한 열정은 생각보다 길게 갔다. 사실 갔다는 어미는 옳지 않다. 왜냐면 지금도 만들고 있으니까. 꽤 긴 간 빵과 과자를 굽고 있다. 물론 저 망한 빵 이후로도 요리고자의 고자빵들은 줄줄이 나왔다. 그 줄줄이 다 시댁으로 간 건 안 비밀이다. 불효녀는 왜인지 웃고 있습니다. 방실방실..


분명 내 베이킹 시작을 기록하려 컴퓨터를 열었는데, 시부모님의 사랑으로 이야기를 끝맺음 하고 있습니다. 저희 시부모님은 정말 좋으신 분들입니다. 그 뒤로도 제 망한 빵을 맛있게 다 드셔주셨습니다... (눈물)


(웃음으로 이야기했지만, 시부모님은 정말 좋으신 분들입니다. 그래서 빵을 만들고 시부모님 얼굴이 가장 먼저 생각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망한 빵을 가져가도 다 받아주실 걸 알고 있었던 걸까요 ㅋ_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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