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망고 Feb 06. 2021

'23개월'의 취향

너도 여자구나.

나는 꾸미는 걸 좋아했던 편이다. 그래서 옷도 많고 신발도 많다. 가방도 화장품도 마찬가지다.


나는 취향이 꽤 확고한 편이고 한가지에 꽂히면 사지 않고는 못 배기던 사람이었다. 문제는 아이를 낳으면서 귀차니즘이 발동해 꾸미는 일 자체에 완벽하게 흥미를 잃고 말았다는 것이다. 남들은 아이를 낳으면 입히고 꾸며주는 재미에 산다는데, 나는 아이를 꾸미는 일 마저도 참 관심이 없다. 아이의 옷을 사는 것에도 크게 욕심이 없다. 아이가 예쁘게 머리를 묶거나 예쁜 악세사리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더더욱 관심이 없다.


나는 평생 렌즈를 끼고 화장을 지우지 않을 줄 알았는데, 렌즈가 어디있는지도 기억이 안날 만큼 나는 꾸미는 데에 관심을 잃었다. 그런 마음은 아이를 향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이의 옷은 무조건 편한 옷, 따듯한 옷. 때 잘 안타는 옷, 빨래를 막 돌려도 크게 지장 없는 옷. 안 비싼 옷. 이게 구매의 기준이 되었다.


봄인 머리를 묶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그래서 머리를 안 묶는다. 남들이 보면 왕초가 따로 없다. 그래도 굳이 묶어주지 않는다. 산발머리에 꾀제제하고 투박한 내복만 입고 생활한다. 최대한 따뜻하게 할머니 조끼같은 조끼를 입히고 가장 두꺼운 양말을 신긴다. 그 어디에도 옷의 조화란 찾아볼 수가 없다. 이 나이 때에는 예쁜 것보다  편하고 따뜻한게 제일이라고 생각하는, 어찌보면 구시대적인 발상이 내 머리를 지배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지내기를 23개월, 5인 이상 집합금지로 인해 명절 모임이 모두 취소됐다. 그래도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아뵙지 않을 수는 없어서 사람이 없을 때 뵙기로 했다. 아침 일찍 가서 점심을 먹고 오기로 약속하고는 외출을 위해 봄의 옷을 가장 따뜻한 것으로 뒤지고 있었다.


그러자 봄이 내 손을 잡고 옷방으로 이끌었다. 그러더니 자기는 이 옷을 입고 싶다며 손짓을 했다.


"이거"

"이거?"

"응 이거"

"이거 입을거야?"

"응 이것두"

바지를 가리켰다.

"이 바지 입을거야?"

"응 이 곰도리도"

곰돌이 인형이 달린 조끼를 가리켰다.

"이 조끼도 입을거야?"

"응"

그러더니 내 손을 잡고 양말이 있는 곳으로 가서는 크롱 양말을 집어왔다.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다. 항상 아무 옷이나 입히기만 했지 어떤 옷을 입을 거냐고 물어본 적이 없었다.


옷을 다 입은 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가방에 애착인형을 담고, 주방놀이를 할 때 항상 가지고 노는 락앤락통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할머니댁에 가겠다며 운동화를 신으러 현관으로 갔다.

내딴에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언제 이렇게 자랐지? 언제 이런 취향이 생겼지? 언제 자아라는 게 생긴거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봄이는 자신만의 세상과 취향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내 삶에 집중하느라 봄이가 어떻게 자신의 세상을 구축하고 있는지 알아보지 못했다.


봄인 생각보다 귀여운 옷을 좋아했고, 귀여운 곰돌이를 좋아했다. 조끼를 입으면서 조끼 가슴팍에 달린 곰돌이에게 "안녕? 반가워" 하면서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 옷을 좋아했구나. 좀처럼 안 입히던 옷이었다. 사이즈를 너무 크게 사는 바람에 봄이가 입기에는 아직 컸기 떄문이다. 하지만 봄인 옷방에 들어갈 떄마다 그 옷을 보며 곰돌이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결국 그 옷을 택하고 오늘 입고 나갔다.


예전에는 가방도 모자도 절대 매고 걸치지 않았다. 불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의 취향이 생겼다. 예쁘고 귀여우면 매고 싶고 갖고 싶어한다. 내 가방을 뒤져서 예쁜 화장품을 보면 좋아한다. 목걸이와 반지, 팔찌에도 관심이 생겼는지 어느새 내 결혼반지를 손가락에 끼고 나에게 자랑을 하기도 한다. 예전 남자조카가 클 때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장면이라 정말 생경했다. 봄아, 너 여자 맞구나?


앞으로도 계속 자라며 달라질텐데, 더 여자처럼 변할텐데, 더 놀라운 순간들이 다가올텐데. 나는 그 때마다 어떤 마음으로 너를 어떻게 지켜보고 너에게 반응해야 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자라는 너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데 항상 막무가내로 엄마 마음대로만 하고 있던 건 아닌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이게 반성할 일은 아니겠지?


어쩄거나, 오늘의 너는 참 귀여웠다.

매거진의 이전글 잃어버린 주부의 시간을 찾아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