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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 Feb 03. 2021

잃어버린 주부의 시간을 찾아서

재접근기가 앗아간 내 시간 이리 돌리도!!!!!

봄이 태어나는 순간 내가 잃어버린 몇 가지가 있다.


첫째로 이름을 잃었다. 봄이가 태어난 이후로 기적처럼 누구도 나를 내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결혼식을 준비하면서는 신부님이라 불렸고, 아기를 낳으면서는 산모님, 나중에는 봄이엄마로 불렸다. 시부모님께서 간혹 내 이름을 불러주시긴 했지만 역시나 봄이엄마로 통했고, 유일하게 내 이름을 주로 불러주었던 남편도 결혼을 하면서 '여보'라는 호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친구니까 나를 내 이름으로 부르겠지 싶었지만, 슬프게도 나를 부를 일이 좀처럼 없다. 만나야 말이지. 온라인 상에서도 거의 연락을 못한다. 그건 친정엄마도 마찬가지다.


둘째로는 나이를 잃었다. 나는 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면접합격 통보를 받은 날 저녁에 알았다. 원래 하던 일을 과감하게 내려 놓고, 다시 시작하려는 마음에서 이곳 저곳 면접을 다니고 있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내 나이는 유효했다. 주민등록번호 앞의 두자리가 나의 가치를 측정하는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날 저녁 봄이가 생겼다는 증거의 두 줄이 나타난 이후로 나의 나이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병원에서 노산인지 아닌지를 가르는 유일한 기준이 되었을 뿐이었다. 결혼을 하면서 남편에게 내 나이가 몇이냐, 동갑이냐 연하냐 연상이냐 따위를 묻는 경우는 있어도 누가 내 나이가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렇게 나이를 잃었다.


세 번째로는 시간이다. 가장 원통하고 비통한 일이다. 나는 결혼을 하기 전, 혹은 봄이를 갖기 전엔 시간이 이렇게 귀한 건줄 전혀 몰랐다. 욜로의 대명사로 살던 나는 돈도 욜로처럼 썼지만 시간은 더더욱 욜로처럼 사용했다.  아기를 낳은 엄마들이 모두 그렇듯, 똥싸고 양치하는 시간까지도 내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그 슬픔은 어떻게 표현이 안 된다. 단순히 돈이 없어서 느끼는 박탈감이나 서러움 그 이상이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나를 살필 혼자만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데, 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 나라는 존재는 정봄의 똥수발, 밥수발, 잠수발을 들어주는 수발러일 뿐이었다.


봄이가 갓 태어나 돌쟁이가 될 무렵까지는 어떤 다른 일을 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초반에는 잠을 아예 잘 수 없으니 봄이가 자는 시간에 나도 잠을 자고, 봄이가 일어나면 수발을 하고 뭐든 봄이의 패턴에 나를 맞춰야 했다. 그렇다 보니 그 어떤 것도, 하물며 외출도 함부로 하기가 힘들었다. 욕심을 내서 봄이가 자는 동안 내가 하고싶었던 일을 한 날에는 어김없이 피곤함과 짜증이 밀려왔고, 입 안에는 수포가 생기고 심한 경우에는 편두통이 오기도 했다. 수면이 부족하고 바이오리듬이 깨지니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웠다.


운동은 꿈에도 꾸지 못했다. 봄이를 갖기 전, 44키로의 마른 몸이었던 나는 봄이를 가지면서 64키로까지 몸무게를 불렸다. 봄인 4키로로 태어났는데, 기적처럼 딱 봄이 무게만 빠진 60키로로 새 삶을 시작했다. 운동을 해야겠다는 의지만 불타고 모든 시간은 잠에 빠졌다. 자연스럽게 붓기도 빠지고 무게도 조금씩 빠지긴 했지만, 그게 다 근육이었는지 내 몸은 날로날로 쇠약해져 갔다. 그러지 않아도 허약했던 몸이 모든 시간까지 봄에게 빼앗기게 되면서 정신마저 박약해져 몸과 마음이 모두 너덜너덜해졌다.



다행스러운 것은 봄이 돌이 지나고 나서는 나도 어느정도 정신을 차릴 틈이 생겼다는 점이다.


봄인 커가면서 잠을 자는 패턴이 생겼고, 덕분에 통잠이라는 걸 자기 시작했다. 봄이 언제 일어나고 언제 잠을 잘 거라는 걸 알게 됐다는 건 그야말로 유레카!였다. 내가 시간을 운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여태까지처럼 아무때나 자고, 아무때나 일어나고, 아무때나 먹고 하는게 아니라 이제는 패턴이 생겨 나도 그에 맞게 움직이면 나의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생각할 수록 가슴이 두근대고 설렜다. 이제 '엄마'나 '아내'가 아닌 '나'로서의 시간을 보낼 틈이 생긴 것이다.


나는 하고 싶은게 많았다. 글도 쓰고 싶었고, 글도 읽고 싶었다. 그간 계획했지만 하지 못했던 일들을 실행해보고 싶었다. 마음이 굴뚝같고 당장이라도 나설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봄이와 같이 자고 봄이와 같이 일어나 눈을 비볐다. 일어나서는 봄의 기저귀를 갈고 급하게 남편의 밥을 차리고 어질러진 집을 치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봄이 이렇게 규칙적으로 잠을 자고 나에게 시간을 주고 있는데, 왜 나는 여전히 봄이랑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는 걸까? 나는 봄이를 재우러 8시에 잠자리에 들어서 다음 날 7시에 일어나고 있었다. 봄과 함께. 중간에 어떻게든 일어나보려 했지만 몸이 따라주지를 않았다.


체력이 문제였다. 3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운동이란 걸 해 본적도 없고, 밥도 제대로 못 챙겨먹고 시체처럼 피슝피슝 지내던 내 삶이 건강할 리 만무했다. 그러니 신생아처럼 잠을 자야 조금이라도 활동할 수 있는 체력이 쥐어짜듯 생겼다. 내 유일한 생존수단이 잠을 최대한 많이 자는 것이었던 셈이다. 몇 번이나 이 단단한 틀을 깨고 내 할일을 해보려 시도해봤지만, 늘어나는 건 퀭한 눈 밑 다크써클과 짜증뿐이었다. 잠을 조금이라도 덜 잔 날은 어김없이 봄이를 쥐 잡듯 잡았다. 인내가 줄고 괴성이 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옳은 방법인 것 같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정수기에서 물 한 잔을 받으며 생각이 들었다. 1월 중순쯤이었다.


'새벽에 사이클을 타면서 책을 보는건 어떨까?'


나는 활자를 읽어야 스트레스가 풀리는 이상한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 활자가 뭐건 간에, 일단 글자를 읽기 시작하면 쌓였던 스트레스가 풀리곤 했다. 그래서 책을 좋아하는 편이고 이왕 읽는 거 재미있는 걸 읽자 싶어서 소설을 주로 읽곤 했다. 하지만 봄이를 키우면서 책을 읽는 건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그런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건 정말이지 또 유레카! 였다.


저녁까지 미루다보면 잠들어서 또 운동을 할 수 없을거야. 아예 하루의 시작을 운동으로 하자! 사이클은 앉아서 타니까 책을 읽을 수도 있어. 좋아. 사이클을 60분동안 타면서 책도 읽고, 이거 진짜 마당 쓸다가 500원짜리 주운 셈이네! 당장 내일부터 5시에 기상해야지!


나는 이 생각을 해내고 나서 내가 그렇게 대단하고 기특할 수가 없었다. 사실 남편이 몇번이나 했던 말이다. 사이클이라도 타서 유산소 운동으로 체력을 키워보는 게 어떻겠냐고. 관심이 없으니 그간 내 머릿속에 들어올 리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엇보다 기분이 좋았던 건 틈을 내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한 시간이나.


나는 이런 생각을 해낸 게 꽤 만족스러워서 잠을 참다 오후 11시 50분에 침대에 몸을 뉘었다. 두근대는 마음을 안고 침대에 누웠다. 평소에 어쩌다 깨 있는 날에는 낮에 못 봤던 핸드폰을 들여다 보느라 새벽 2시까지도 뜬 눈으로 멀뚱멀뚱 있었는데, 핸드폰은 쳐다보지도 않고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봄이를 낳은 이래로 가장 설레는 순간이었다.


새벽 5시가 되자 알람이 울렸다. 나만을 위한 시간이었다. 남편도, 봄이도 나를 방해하지 않는다. 나는 오롯이 운동을 하며 땀을 흘릴 수 있고, 그동안 보지 못한 채 책꽂이에 꽂혀만 있던 하루키의 (오래 전)신간을 차근차근 읽을 수 있다. 오늘만 이런 시간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일도, 모레도, 가능하다면 평생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로 설렜다. 5시에 일어났는데도 몸이 피곤하지 않았다. 이런 것이 정신승리인가 싶을 정도였다.


첫 날에는 한 시간동안 사이클을 타고 30분정도 아침을 여는 요가를 했다. 몸이 한결 가벼웠다. 평소에는 짬을 내서 15분 정도 요가를 하는 것으로 근근히 몸을 움직여왔는데, 유산소운동으로 몸을 풀고 나서 요가까지 하고 나니 정말 새로운 아침이 밝는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책을 마무리 짓고 잔잔한 음악도 들었다. 나라는 인간을 필터에 넣고 달달달 돌려서 정화시켜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이렇게 타임스탬프로 일어난 시간과 읽을 책을 사진으로 남기곤 했다.


하루키의 책은 언제든 재미있어서 오바해서 80분이나 사이클을 타고 말았다.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나의 욜로 인생을 청산하고자 하는 의지가 돋보이는 도서 선정이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즐거움도 길게 가지 못했다. 내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봄의 '재접근기' 이다.

(재접근기: 영아의 정신이 성장해 나가는 과정 중에서 그 어는 시기보다도 혼란이 심한 시기, 아기의 입장에서는 엄마의 격려와 지지를 얻어 정신적으로 독립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를 말한다. -인터넷검색 중)


이 단어를 임신했을 때 책에서 본 적이 있는데, 아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잊은게 아니라 몰랐다고 하는게 더 맞는 것 같다. 이튿날까지도 나는 여유롭게 사이클과 요가를 하며 개운한 아침을 열었다. 시간이 남아서 빨래도 개고 아침도 다채롭게 준비했다. 더 이상 부시시한 눈으로 '더 자, 더 자' 하며 일어난 봄이를 협박하지 않았다. 맑게 웃으며 개운한 목소리로 '일어났어?' 하며 기저귀를 갈아줬다. 내가 꿈에서나 그려본 이상적인 아침이었다.


문제는 네번째 날부터 시작됐다. 사이클을 한참 열심히 타며 책을 읽고 있을 때였다. 저 멀리서 다다다다 소리와 함께 '으아아아아아아아앙!!!' 하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문이 덜컥 열렸다. 봄이었다. 눈에는 눈물이 한가득 고여있었다. 한 손에는 애착인형인 윌리를 붙들고 '엄마아아아아아아아아아'하면서 엉엉 울고 있었다. 60분 정도를 이미 사이클을 탔던 터라 온 몸이 땀범벅이었다. 울면서 문을 열어 재끼고 나에게 달려오는 봄이를 보고 있자니 온갖 생각이 뒤섞였다. 안돼, 안돼!! 봄아 왜 네가 여기 있는거야!!!!!


내가 정말 좋아하는 책
이 날부터 문제가 생겼다. 6시 16분에 봄이가 뛰어오는 바람에 사진만 급하게 찍고 봄이를 재우러 갔다. 그리고는 다시 돌아와 마저 27분을 더 타서 70분을 채웠다. 하ㅜㅜ


땀을 뻘뻘 흘리며 봄이를 안아 들었다. 새벽 6시 16분이었다. 혹시 밝은 불빛에 잠이 다 깰까 재빨리 모든 불을 껐다. 침대로 달려가서 같이 누웠다. 그리고는 예전과 같은 협박이 시작됐다. '더 자, 더 자, 자는 시간이야. 빨리 자.' 말이 빨라졌다. 내 목소리와 말의 속도에서 인내심을 잃어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내가 평소에 시간을 뺏기는 것과는 다른 경우다. 이건 내 시나리오에는 없던 상황이다. 분명 내가 주인공인데 왜 니가 더 많이 등장하는거야 봄아!!!!!



네번째 날 6시 10분에 일어났던 봄의 기상시간은 점점 빨라졌다. 5시 50분, 5시 30분, 5시 10분.. 나도 그에 맞춰서 기상시간을 점점 더 빠르게 잡았다. 4시 40분, 4시 30분, 4시 20분... 하지만 나도 낮에 봄이를 봐야하니 그 이상은 당길 수가 없었다. 나의 사이클과 요가, 책읽는 아름다운 새벽시간은 중간에 봄이 우다다다 달려와 앙앙 울어재끼는 통에 매번 중간에 멈추고 봄이를 다시 데려가 침대에 눕히고 재우다 나도 잠들고, 다시 일어나 급하게 요가를 하고 급하게 아침을 차리는 등의 상황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이윽고 새벽 4시, 봄이가 나보다 먼저 일어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 날은 사이클도, 요가도, 책읽기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사실 봄이는 접근기라는 시기가 없었다고 느껴질 만큼 낯을 가리지 않았다. 잠깐동안 엄마가 없어도 괜찮았다. 애착관계를 의심할 만큼 봄인 잘 지냈다. 긴 시간 나와 떨어져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낯선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이 곁에 있어도 생글생글 웃으며 엄마를 곤란하게 한 적이 없었다. 그런 봄에게 재접근기가 왔다. 자면서도 몇 번씩 손을 휘저으며 엄마가 있는지 확인한다. 엄마가 손에 잡히면 안심하고 다시 잠이 든다. 하지만 아무리 휘저어도 엄마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으면 벌떡 일어나 우다다다다다 달려오는 것이다.


봄이 이렇게 잠을 자다 보니 잠자는 패턴이 완벽하게 틀어졌다. 다시 잠들어서 9시에 일어나고, 낮잠을 자지 않고 6시에 잠들었다가 새벽 4시에 일어나는 등의 생활이 반복됐다. 이것은 나만 괴로운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남편의 일상까지 영향을 미쳤다. 봄의 규칙적인 루틴이 망가진 것은 당연했다. 세 사람 모두가 피곤하고 힘들었다. 내가 나의 시간을 확보하고자 시작한 4시 30분 기상이 우리집에 이렇게 큰 나비효과를 가져올 줄 누가 알았나. 결국 남편은 한 마디 했다.

기상시간은 5시 5분인데 51분 사이클 완료사진은 7시 50분에 찍은 시간차 공겨끄...ㅎr...
봄이가 나보다 일찍 새벽 4시에 일어난 날. 그냥 오후 4시에 정봄 낮잠재워놓고 사이클 탔다.

"그냥 예전처럼 7시에 일어나면 안 될까..."


주부라는 이유로 많은 것을 희생해왔지만, 나의 잠까지 희생하면서 확보한 나의 시간마저 이렇게 내려놔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될 줄은 몰랐다. 근데 아직 내려놓지 않았다. 내 유일한 행복까지 내려놓을 수는 없었다. 내 핸드폰 알람은 아직도 4시 30분이다. 4시 30분에 일어나 요가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오늘 읽을 책을 고르고 사이클에 올라 자전거를 탄다. 예전엔 잔잔한 음악도 틀어놓고 운동을 했지만, 혹시 봄이 소리를 듣고 달려올까 이제는 음악은 틀지 않는다. 그리고는 언제 봄이 올지 몰라 긴장상태로 사이클을 마구 돌린다. 하지만 하루 걸러 하루는 실패하고 있다. 봄이가 여전히 나를 손으로 더듬더듬 찾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이 잃어버린 시간은 누가 되찾아 주나? 되찾아 주지 않아도 되니 앞으로의 시간만이라도 뺏기고 싶지 않은데. 눈물이 앞을 가린다. (눈물철철)


그래도 한 가시 희소식이 있다면, 잠깐이지만 유산소와 요가를 꾸준하게 병행했더니 하루가 길어졌다. 잠을 덜 자도 덜 피곤하다. 봄이에게 짜증을 내는 횟수가 줄었다. 그리고 지금처럼 시간을 내서 글을 쓸 수 있게 됐다. 어쨌거나 잠을 포기하고 운동을 시작한 나의 새벽시간은 잃어버린 시간을 되려 어떻게든 찾아주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네 번이나 엄마 찾으며 우는 봄이 달랜건 정말이지 안 비밀이다. ㅎ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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