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것으로 마음을 쓰는 일
스승의 날을 앞두고 담임 선생님께 편지를 쓰는 시간이었다. 5학년 담임 선생님은 중년을 지난 풍채 좋은 여자였다. 지금 생각해봐도 수업 시간을 제외하면 초등학교 교사라기에 지나치게 아이들에게 무심했던 것 같다. 나를 몇 번의 교외 글짓기 대회에 학교 대표로 추천 해 주었을 때를 빼면 몇 마디 말도 나눠본 적이 거의 없었다. 당연히, "ㅇㅇㅇ선생님께. 항상 열심히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적고 나니 더는 쓸 말이 없었다.
그 때 막 학교에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체육 선생님이 생각났다. 뭔가 꼬장꼬장한, 결코 다정하지 않은 나이 든 선생님들 사이에서, 젊고 늘 웃고 있는 선생님인 그는 아이들 사이의 막연한 호감과 인기를 누렸다. 편지지를 새로 한 장 꺼냈다. 어린 생각으로 그는 과목 하나를 맡아서 가르치고 있음에도 자기가 맡은 반이 없으니 스승의 날에 편지를 못받을 것이라고 결론을 낸 것이다.
그래서 체육 선생님에게 편지를 썼다. 자세한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선생님이 학교에 오신 뒤에 재미없고 지루하기만 했던 체육 시간이 즐거워졌다고, 여러가지 다양한 운동을 재밌게 배울 수 있어서 좋다고 썼을 것이다. 지금 되짚어 보아도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으니까. 그리고 본관에 있는 큰 교무실에 가서 직접 편지를 드리고 왔었다.
어쩌면 별 것 아닌 그 일을 내가 지금에도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며칠 뒤에 그 선생님이 내게 '답장'을 써주었기 때문이다. 손바닥 만한 작은 종이에 곱게 쓴 그 편지는 심지어 닳아지지 않도록 코팅까지 되어 있었다.
"현주야. 네 편지를 받아서 가슴이 벅차게 기쁘다. 선생님은 앞으로도 현주가 작은 일에도 고마운 마음을 느낀다면 그것을 표현할 줄 아는 멋진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구나."
길지 않은 편지의 내용 중에 특히 저 두 마디는, 외워버렸을 정도로 진하게 남아있다. 요만큼도 기대하지 않았던 답장을 받은 기분은 참 오묘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생 입장에서는 같은 선생님인데(심지어 담임 선생님보다 더 재밌게 수업을 해주는) 스승의 날에 감사 편지 한 통 받지 못한다면 마음이 서운하시리라 생각했던 것이, 나에게도 기분 좋은 일로 돌아온 것이다.
그 때 열 두 살의 나는 다짐했다. 저 선생님의 바람처럼, 당연한 일에도 고마운 것을 고맙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될 거라고. 선생님의 바람처럼, 자주 편지를 쓰고, 습관처럼 고맙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었다. 쇼핑을 할 때도 진심을 담은 친절이 몸에 배인 직원들을 만나면 어디든 꼭 칭찬의 글을 남기는 게 버릇이 되었다. 상품의 가격에는 분명히 그것을 만들고 파는 사람의 인건비도 포함이 되어 있겠지만, 그 사람의 마음에는 가격을 매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값진 것을 공으로 받았으니 나 또한 내 시간과 마음을 들여 고맙다는 표현을 해야지싶다.
어쩌다 가까운 사람들이 생각나거나, 오랜만에 누구를 만나기로 약속했을 때에도 종종 그들을 생각하며 편지를 적는다. 할 일이 없거나 시간이 남아돌고 여유가 넘쳐서 그리 하는 것이 아니다. 고마움을 표현하는 나름의 방식이 그런 것일 뿐.
그 때 그렇게 어른으로 보이던 선생님의 나이만큼 나도 나이를 먹고 보니, 그가 답장을 쓰고 그 종이를 코팅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아직도 아이들을 가르치고 계실런지는 모르지만, 내가 그 때의 답장 한 통으로 편지 쓰는 사람으로 자랐듯이, 그 또한 아이들에게 늘 따뜻한 말을 건네는 선생님으로 남아 계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