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계절에게 묻다
이런 날씨에는, 내가 가진 가장 좋은 신발을 신고 어디든 가야할 것 같다.
연인끼리는 신발을 선물하는 게 아니라지만, 나의 어떤 이는 이렇게 말했다.
예쁜 구두를 사주었으니, 이 구두에 어울리는 좋은 곳만 데려가겠노라고.
그러니, 자기를 만나러 올 때마다, 신어달라고.
더워서 잠은 오지 않고
잡스러운 고민이 내는 잡음이 모기처럼 귓가에 앵앵거릴 때
별을 보는 그런 마음으로 초에 불을 켠다.
한 줌의 어둠을 밀어내듯
내 마음 속의 잡념도
그리 밀어 내어보려
갑자기 비가왔다. 우산 있냐는 물음에 아니라고 대답하니 수화기 너머로 준비성이 없다느니 오늘 일기 예보도 안보고 나갔냐느니 하는 잔소리가 폭우처럼 쏟아졌다. 그래놓고, 너는, 당연한듯 버스 정류장에 검정색 우산을 들고 덤덤하게 서있었다.
내리는 빗방울은 우산에 부딪히며 지직대는 소리를 냈다. 흡사 오래된 스피커에서 나오는 노이즈와 비슷한 소리였다. 그 좁은 우산 속에서 너와 나는 서로 자기의 어깨를 더 적시려고 투닥거렸다.
결코 떠내려갈 것 같지 않았던 너 역시 어느날 비에 씻겨 내려가버렸고,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나는 울지 않았다. 네가 나를 떠난 계절의 날씨는, 맑다가도 당장이라도 비가 올 것처럼 곧잘 흐려지곤 했다.
오늘 같이 그 때를 닮은 비마저 내리는 날에는, 검은색 우산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너무 뜨거워,
입천장을 데일까
호호 불었다
바람이 불었다
창틀이 삐걱거릴만큼
나는 문득
이 순간의 행복이
내 입김에 날아가버리지는 않을까
수저를 내려놓고
김 서린 네 안경알 너머의
그 따뜻한 눈을
한참 보고 싶었다
면이 다 불도록
지나간 계절의 바람에는-
추억의 온도가 묻어 있다.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