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 사이의 안전거리
모든 것에는 때와 순서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치과에 가는 일도 그러합니다. 제 때 치료하지 못한 치아로부터 시작된 통증은 온몸을 헤집어 놓거든요. 그러고 보니 오늘은, 비가 옵니다. 놀랍게도 항상 비가 올 즈음 시큰거리던 발목이 조용합니다. 아마 통증에도 우선순위-같은 것이, 있나 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내가 1순위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 단어는 내 심장 박동 수를 최대치로 올려놓았을 테지만- 내일모레 서른인 무심한 이 처자는, '사이의 우선순위'란 목록은 지운 지 오래입니다. 상대도 나와 같은 사회적 존재이기에 나보다는 일을, 나보다는 가족을, 친구를 우선해야 할 때도 분명 아주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나는 더 이상 맹목적인 우선순위란 것에 의미를 부여하지도, 그것을 강요하지도 않을 줄 아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네, 다행히도(더 늦지 않게요).
그 또한 연애를 할 만큼 해 본 어른이니, 그가 이야기하는 우선순위란, 자기 자신이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과 더 가까이에 있을 겁니다.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나에게만 올인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나이를 먹을수록 손에 쥔 것, 쥐고 있어야만 하는 것들- 책임의 무게가 늘어나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그 와중에 함께 하는 사람이 짐을 지운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서는 안 될 테니까요.
함께 하는 순간이 소중한만큼, 각자가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 또한 존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흔히 하게 되는 착각 중 하나가 매 순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서로 좋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다가, 어느 한쪽이 의무감이나 부담을 느끼는 순간 관계의 중심이 확 기울어져버립니다.
건강한 연인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밀당이라거나 파워게임이 아니라, 온전한 나로서의 시간과 연인과 함께하는 나의 시간의 균형입니다.
그가 운동을 정말 싫어한다면, 퇴근 후 나와 자전거를 함께 타지 않더라도 괜찮습니다. 내가 술을 마시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면, 그와 새벽까지 술을 마시지 않더라도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연애는 싫어하는 것까지도 기꺼이 함께한다거나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혼자서도 행복한 사람이어야 행복한 연애를 할 수 있다는 말이 생기지 않았나 싶습니다.
연애는 두 사람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자신의 일부를 공유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두 행성의 궤도의 일부가 겹치는 것이지요. 딴은 우리가 지구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태양으로부터 적절하게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가까우면 태양의 열에 타버려서, 너무 멀면 온도가 너무 떨어져서 살 수 없으니까요. 연인 사이에도 그 '안전거리'가 필요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최선과 상대방이 할 수 있는 최선이 서로 다를 때, 상대에게 내가 바라는 최선을 강요한다면 그 사이는 서로 행복을 찾기 어렵습니다. 나는 비싼 수업료를 내고 내쫓기듯 이 교훈을 얻었거든요. 상대방의 최선을 존중하고, 그에 감사하며,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믿고 인정하는 것은- 상대에게는 물론이거니와 또한 나에게도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원 없이 좋아하고, 사랑할 순간들의 때를 놓치지 않게요.
손에 쥐지 못한 것을 생각하느라고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놓쳐버리지 않을 것. 순간순간 가질 수 있는 행복을 다 끌어안을 것. 그것이 지금 나의 1순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