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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hyeonju Sep 30. 2016

초보 마라토너에게

우리는 모두 처음으로 인생에 도전한 사람들이다

  "탕!"

 총성과 함께 사람들이 달리기 시작한다. 물밀듯이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앞을 향해 저마다의 속도로 내달린다. 도로는 줄 지어 달리는 사람들로 가득 차있다. 앞장 서서 달리는 사람은 있어도 전속력으로 달리는 사람은 없어보인다. 달려야 할 거리가 한참 남아있기 때문이다.


  평소에 운동 깨나 했다고 생각했는데, 마냥 신나게 뜀박질 하는 것은 겨우 3km 남짓이었다. 아참, 아직 한참 남아있지-하는 생각에 슬슬 정신을 차리고 속도를 줄인다. 5km 팻말이 보이기도 전에 발이 절로 느려진다. 다음 식수대까지는 왔던 거리만큼을 또 가야하고, 목을 축이는 그 잠깐에 기운을 낸다. 10km쯤 달리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두 다리는 저절로 움직이는 것 같고, 순간 순간 멈추고 싶은 충동이 들기 시작한다.


  절반.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가며 숨을 고르다보면 드디어 뛰어 온 거리가 뛰어야 할 거리를 넘어선다. 구름 한 점 없는데 한바탕 소나기를 맞은 것처럼 젖어있다. 몸에 있는 수분은 땀으로 고스란히 다 나오는지 입이 바싹바싹 마른다.  이때부터는 뛰어 온 노력이 아까워서라도 절로 이를 악물게 된다. 그럼에도 결승점이 가까워지면 마음이 들뜬다. 시작할 때는 완주만이라도 해보자는 마음이었지만, 목표가 눈 앞에 있으니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줘 가며 속력을 높인다. 결승점이다. 절로 두 손이 번쩍 들어올려진다.






  운동 삼아 달리기를 연습하다가 난생 처음 참가한 마라톤. 5km는 시시해보이고 10km는 뭔가 아쉬워서 처음부터 하프 마라톤에 도전했는데, 내가 미쳤지- 뛰는 내내 스스로를 원망할 수 밖에 없었다. 단거리 주자들이 반환점을 돌아 코스를 되돌아갈 때, 식수대에 멈춰 서서 간식을 먹고 있는 참가자들이나 편한 마음으로 걷기 시작한 다른 참가자들이 시야에 들어올 때마다- 차라리 눈을 감고 뛰고 싶은 심정이었다.


  누가 시켜서 뛰고 있는 것도 아니고, 완주하지 않으면 안되는 강제적인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해내고 싶어하는 나와 그만두고 싶은 내가 있었고, 참아내고 견디고 싶어하는 나와 편해지고 싶은 내가 싸우는 것이 문제였다. 그렇게 두 시간이 못 되는 '러닝 타임' 내내 나 자신과 싸웠다. 가장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는 운동이 달리기이고, 그만큼 포기하기도 쉽다. 그저 멈추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마라톤을 해보고나서야, '인생은 마라톤'이라는 명제를 몸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길고, 험난하고, 때때로 포기하고 싶어지는 것이 우리네 사는 것과 꼭 닮았다. 달리는 와중에도 나를 앞서있는 사람과 뒤에서 달리는 사람들이 신경쓰이는 것마저도.


  "네 속도를 찾아. 그렇지 않으면 말려."

마라톤을 앞두고 이미 수차례의 완주 경험이 있는 친구가 해 준 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결승점을 향해 동시에 출발하지만, 나처럼 완주가 목표인 사람과 기록 갱신, 순위권 입상을 목표로 하는 사람은 다르다. 그것을 인지하지않고 무심코 그 속도를 따라가려한다면 절반도 따라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 앉아 버릴 것이다.






  아무도 나의 첫 마라톤 기록을 묻지 않았다. 완주했다는 것만으로 생각보다 많은 축하를 받았다. 그러고보면 우리는 지금 모두 인생이라는 마라톤에 처음으로 도전한 사람들이다. 저마다의 결승점을 향해 자신의 속도로 뛰어간다. 심지어는 결승점의 개수조차도 다르다.


   산다는 것은 공평하지 않을지 모른다. 아니, 공평하지 않다. 누구는 맨 발로, 누구는 운동화를 신고 또 다른 누구는 다른 이의 등에 업혀서 뛰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렇게 사방팔방을 둘러보다가 정작 내가 뛰어가야 할 길을 잃어버리게 되는 데에 있다. 나를 앞서 있는 사람들을 보며 자괴감을 갖거나 내 뒤에서 뛰는 사람들에게 우월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 사람들은 그저 저마다의 결승점을 향해 자신의 속도로 뛰어가고 있을 뿐이다.


  어떤 인생을 살아갈 것인지는 미리 알수도, 스스로 결정할 수도 없지만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 것인지는 순전히 나에게 달려있다. 다리가 후들거려 포기하고 싶을 때 의외로 힘이 되었던 것은 길가를 지나가던 사람들의 파이팅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에 주고받는 인사가 그렇게 큰 힘이 되는 줄은 미처 몰랐을만큼. 그러니 나를, 내 인생을 가장 잘 아는 내가 하는 격려는 식수대 그 이상의 힘을 발휘한다.  



  오늘도 하루의 끝을 향해서 숨차게 달리는 우리에게 말해주자. 인생의 쓰디 쓴 순간들을 참아가고 버텨내는 자신에게 잘하고 있다고, 잘 뛰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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