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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hyeonju Oct 16. 2016

나 그리고 모두의 인생 빵집

빵의 역사는 앙버터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나는 자타공인 '빵순이'다. 쌀밥 대신 빵으로 하루 세 끼를 무던히 때우고, 동네의 빵집이란 빵집은 모조리 섭렵하고도 모자라 다른 지역에 유명하다는 빵을 찾아다니며 먹어 본다. 어느 동네 어디 무슨 빵이 참 맛있다더라- 하는 말을 듣고 나면, 오롯이 빵 하나를 목적으로 일부러 찾아갈 정도로. '빵 투어'라는 말이 흔해진 요즘이야 놀랄 것도 없지만은, 빵은 절대로 밥을 대신 할 수 없다는 울 엄마의 입장에서 보면 나는 참 별난 사람인 것이다.


  갓 튀긴 따끈한 고로케부터 고슬고슬한 소보로, 담백하고 고소한 스콘, 투박한 맛이 있는 발효빵에 이르기까지-  내게 있어 빵은 별 반찬도, 상차림도 필요없이 한 입만으로도 훌륭한 한 끼가 되어주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밥 안먹고는 살아도(나는 실제로 거의 밥을 먹지 않는 편이다) 빵 없이는 하루도 못 살 것만 같던 이 빵순이의 인생에도 권태기가 찾아왔다.





  요즘에야 파리바게트, 뚜레주르 같은 어디에나 있는 프랜차이즈부터 골목 골목 숨어 있는 동네 빵집들까지- 수 많은 빵집이 있고 그 종류는 셀 수도 없이 많지만, 내 유년기를 지배한 빵은 단 두 종류 뿐이었다. 그 중 하나는 포켓몬 빵이었는데, 원하는 포켓몬 스티커가 나올 때까지 꾸역꾸역 사먹었던 기억이 난다. 또래들 사이에서는 나중에는 빵은 버리고 스티커를 위해 빵을 사는 일도 벌어졌는데, 그 중에 가장 맛있었던 것은 단연 로켓단의 초코롤이었다. (요즘에는 카카오프렌즈 캐릭터 빵으로 판매되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밀가루로 만든 '호빵맨'인데, 그는 주변의 어려움과 불의(주로 세균맨이다)에 맞서 자신을 희생해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빵'이다. 그의 든든한 조력자인 '잼 아저씨'는 그야말로 빵을 만드는 도사이자 장인이다. 호빵맨의 눈부신 활약을 보며- 앙꼬가 든 빵을 먹을 때마다, 호빵맨은 도대체 무슨 맛이 날까 생각했다. 대체 무슨 맛이 나길래, 그렇게 다들 맥을 못추는 것일까.

 

  만일 내가 잼 아저씨라면, 약간의 단팥과 맛 좋은 버터를 넣어 그를 만들어 내었을 것이다. 호빵맨의 맛을 어렴풋이 동경하던 빵순이의 일생은, 그렇게 '앙버터'를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뉘기 때문에.

   


동명동에 위치한 윤슬베이커리는 좋은 재료를 사용한 유기농 빵집이다


  광주의 오랜 번화가로 꼽히는 충장로에서 조금 벗어나면, 과거 학원가와 부촌, 예술인의 중심으로 유명했던 '동명동'이 있다. 모 여고가 자리를 옮기고 중앙도서관을 중심으로 위치해 있던 학원들 역시 많이 빠져나갔고, 그 주변을 특색있는 작은 가게들이 하나씩 차지하게 되면서, 동명동은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 곳에는, 나의 '인생 빵집'이 있다.  


  곱디 고운 우리말인 '윤슬', 환한 미소와 낭랑한 목소리가 인상적인 사장님 내외의 자녀 이름에서 따 왔다는 빵집 이름에서부터 마음을 훅 빼앗긴다. '요즘 빵집' 답게 유기농 밀가루와 각종 좋은 재료를 사용해 주민들의 입소문을 타고 유명세를 얻었다. 천장이 높은 가게에 꽉 들어 찬 갓 구운 빵 냄새는 덤이고, 인심 좋게 내어주시는 맛보기 한 입은 진짜 덤이다.





  씹을수록 고소한 치아바타를 비롯한 건강빵과 각종 베리와 견과류가 듬뿍 들어 씹는 재미가 있는 '동명로', 달달한 가나슈가 든 초코빵인 '초코송이', 크림치즈의 깊은 풍미를 느낄 수 있는 '보름달' 등 무엇 하나를 제일로 꼽기가 어려울만큼- 이 곳의 모든 빵은, 솔직담백하게 잘 구워져 저마다의 자태를 뽐낸다. 그럼에도 그 중에 하나를 반드시 꼽아야한다면,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바로 이 빵, '앙버터'를 꼽으리라고 확신한다.



 


  빵 사이에 팥 앙금과 고메버터를 샌드한 '앙버터'.

 "앙버터 한 개 주세요"라고 하면 사장님이 손수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담아내어 주시는데, 빵은 바삭하게 씹히고 달달한 앙금과 살짝 차가운 고메 버터가 입 안에서 이루는 조화가 가히 환상에 가깝다.





  

  살면서 절대 빵을 먹는 것에 질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나에게 불어닥친 위기를 극복하게 해 준 것도 바로 이 앙버터였다. 권태기를 극복하는 대부분의 유효한 방법이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듯- 수만가지의 재료, 갖은 기교 없이 오로지 빵과 버터, 앙꼬만으로 승부를 건 이 빵이야말로 빵순이에게는 흰 쌀밥과 같은 의미로 다가왔다.


  누구에게나 인생 빵집이 있다. 윤슬 베이커리에 가면 그날 갓 구워 신선한 빵을 먹을 생각에 문을 열기 전부터 배가 부르고, 사장님 내외의 따뜻한 인사에 마음까지 덩달아 가득 채워오곤 한다. 어쩌면 호빵맨은 잼 아저씨의 제빵 실력보다도 포근한 그 마음씨에 싸울 힘을 얻곤 하지 않았을까. 일주일에 한 두번은 꼭 이곳에 들러야만 하는 이 빵순이처럼.








* 광주광역시에서 손에 꼽히는 '맛있는' 빵집 / 커피메뉴 판매

* 매주 일요일 휴무 (였으나 지금은 격주로 영업을 하고 있다)

* 당일 생산 당일 판매가 원칙인데다 대부분 오후를 기점으로 일찍 품절되기 때문에

  방문 전에 미리 전화를 하는 것이 좋다 (예약 가능)

* 추천 메뉴 : 앙버터(4,500), 초코송이(3,300), 동명로(4,500)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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