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투명인간으로 지내야 할 때 상처받지 않을 방법에 관하여
이번 학기 수강하는 미국 MBA 과목 중에 종종 그룹 토의를 시키는 수업이 있다. 교수님이 랜덤으로 조를 배정해 주면 20분 남짓 주어진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결론을 도출해내야 한다. 이번 주는 누구를 왜 고용할 것인가에 대한 주제로 그룹 토의를 하게 되었다. 그룹에는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이 있었는데, 그동안 말을 거의 안 해본 아이들이었다. 이 중 두 명이 말할 때마다 기분이 묘하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한 사람 한 사람 순서대로 눈을 마주쳐가며 말을 했는데, 유독 나만은 건너뛰었고, 토의시간 내내 한 번도 나를 먼저 쳐다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이야기할 때에만 아주 잠깐 쳐다볼 뿐이었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지만, 내가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로 했다.
며칠 후 (이놈의) 스터디그룹 모임이 있었다. 이번 주는 과제 제출할 게 없어서 잠깐 만나 근황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이곳에서도 나는 철저히 유령이었다. 내가 질문을 하지 않으면 먼저 나를 쳐다보거나 질문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들의 대화에 참여하려면 나는 늘 질문자가 되어야 했다. 그들의 생각과 의견에 호응하고 추가 질문을 하는 등 피드백을 주는 사람으로서 역할할 때만 그들과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그저 나와 공통된 주제가 없어서 그러겠거니, 내가 재미가 없어서 그러겠거니,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었기에 상관없다고 털어버리고 교실로 돌아갔다.
금요일에는 한 수업의 교수님과 몇 명의 학생들과 함께 커피챗을 하게 됐다. 이 학교에는 학기별로 교수진이 학생들과 식사나 커피챗을 하는 정책이 있었고, 영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처음에 필수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행사로 착각하여 커피챗을 신청을 하게 됐다. 해당 장소로 가니 다른 반 학생 두 명과 같은 반 학생 한 명이 있었고 이윽고 교수님이 오셨다. 나름 꽤 고마움을 느끼고 있던 수업이었던 터라 교수님에게 감사함을 표시하고 싶었는데, 커피챗이 진행된 1시간 동안 내가 이번 주 느꼈던 소외감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사회심리학 전공인 리더십 수업 교수님은 생각보다 더 하이텐션이었는데, 전공과 수업 제목이 무색하게도 이 교수님은 처음 인사할 때 눈을 마주치고는 나머지 시간 동안엔 거의 내쪽으로 몸을 돌리지도 않았다. 같은 반 학생 역시 나를 뺀 나머지 사람들하고만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했고, 유일하게 공통 질문을 던진 다른 반 학생만이 나를 쳐다봐주었다. 공통질문은 본인이 덕질 중이거나 하고 싶은 주제가 무엇인지였는데, 내가 답변할 때의 교수님의 표정과 몸짓에서는 답답하고 흥미롭지 않다는 그녀의 감정이 자꾸만 읽혀서 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이번 주 이렇게 여러 번 소위 '투명인간'이 되어버리는 경험을 하고, 나의 느림과 잔잔함을 견디지 못하는 하이텐션의 미국인들과 교류하면서, 스스로 괜찮다고 애써 마인드컨트롤하며 극복하려 노력했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조금씩 생채기가 생겼던 것 같다. 금요일 커피챗까지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와 혼자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려고 일어났는데 순간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뭐 얼마나 대단한 것을 이루자고 지구 반대편 이곳까지 와서 이런 취급을 당하고 있는지 회의감이 몰려왔다.
물론 한국에서도 이런 소외감을 느끼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부서나 팀에서 유령이었던 적이 몇 번 있었고 그때마다 많이 힘들었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느낀 이 부정적 감정이 유난히 더 괴로운 이유는 아마도 미국에 와서 즐겁고 가벼워지자는 나의 최우선 목표에 부합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회사에서 당하는 투명인간 취급은 어쨌든 월급이라는 보상이 있었지만, 이곳은 내가 내 돈 써가며 겪는 감정이다 보니 더 화나고, 더 서글프고, 더 외로웠다. 그리고는 이소라 님의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 노래가 살포시 떠올랐다. (https://music.youtube.com/watch?v=0w9pTifeGMs&si=-9ACghwXHWI45u4V)
기분전환을 위해 가까운 항구에 가서 산책을 하고 다이소에 가서 예쁜 그릇과 컵을 사며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니 조금 회복이 되었다. 그리고는 앞으로 단단하게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마음의 방패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일절 관심이 없는 사람들과 같이 생활해야 할 때 나의 마음을 지켜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지 말이다. 비단 이곳에서만 겪는 일이 아닐 게 분명했다. 미국 MBA에서 겪는 이 소외감과 잠재적인 적대감은 내 나이, 인종, 국적 등의 이유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말이 느리고 생각이 많은 내 성격 상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내가 종종 마주할 어려움 중 하나였다. 그리고 고민 끝에 몇 가지 보호장비들을 찾을 수 있었다.
스스로 대접하기 |
지난번 나를 위한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겠다는 다짐과 결이 비슷한 방법 중 하나로, 나를 위한 무언가를 반대급부적으로 하는 것이다. 그간 바쁘다고 미루어왔던 것들, 바다를 보고, 베이킹을 하고, 요리를 하고, 예쁜 그릇에 플레이팅을 하며 나를 위한 식탁을 꾸미자 한결 기분이 나아졌는데, 이렇게 타인으로부터 느낀 냉소감을 나를 아끼는 포용감으로 채워주는 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샤워하기 | 드라마에서 종종 상대방에게 정신 차리라는 과격한 행위로 물을 얼굴에 끼얹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상대방에 대한 공격의 일환일 때가 많지만 결은 비슷한 것 같다. 부정적인 언행과 감정을 끊어내는 계기를 만드는 것. 이 점이 물을 뒤집어쓸 때 얻는 효과일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상처들로 침잠하게 될 거 같을 때 샤워를 했다. 뜨거운 물이 내 정수리 위로 흘러내리자 스멀스멀 차오르던 잿빛 감정들이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지내는 이 월세방은 수도세를 별로로 내지 않아서 감사할 따름이다.
내 사람들 더 사랑하기 | 최근 읽고 있던 "Comfort Crisis (편안함의 습격)" 후반부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Death can come at any time. Any time.” 현대인들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데, 이것이 오히려 행복을 저해하는 태도라고 지적했다. 일상 속에서 죽음에 대해 인지할 때 비로소 삶이 영원하지 않음을 자각할 수 있으며, 이러한 유한함은 오히려 인생에서 진정한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행복에 가까워지게 도와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짧은 시간 동안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로 인해 괴로워하며 시간을 쓰는 건 너무나 아까운 일이었다. 그 시간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이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훨씬 더 뜻깊고 '중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더 중한 일에 시간을 쓰자 자연스레 소외됨에서 받은 상처들이 상처가 아닌 그냥 휴대폰 액정 위 지문 자국 정도로 느껴졌다. 그저 소독티슈로 닦아내면 그만이었다.
이 정도가 지금까지의 경험들로 확보한 방패막들인데, 또 다른 보호템들을 찾아 보유 중인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어졌다. 그리고는 이들과 함께 온기로 가득 찬 작은 공간에서 향긋한 커피를 마시며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는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커피챗'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시간 안에 상대방을 평가하고 훗날을 위해 잠재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무늬만 커피챗 말고, 결코 길지 않을 서로의 인생을 보다 충만하게 채워주는 따뜻한 커피챗을 나눠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