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움의 새로운 발견

생각보다 강력한 힘을 지닌 '감사하기' 스킬

by 유연

미국에 와서 신기하다고 느낀 것 중 하나는 버스에서 내릴 때 운전기사님께 큰 소리로 "Thank you"라고 외치고 내리는 점이었다. 승객들이 저마다 운전석을 향해 우렁찬 인사를 하고 내리는 광경은 꽤나 신선한 모습이었다. 목소리가 태생적으로 작은 나에게 이런 문화는 부담스러웠는데, 소심하지만 나 나름대로 큰 소리로 Thank you를 외쳐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정류장에 다다를 때쯤이면 이게 뭐라고 마음 졸이게 됐었다. 다행히 지금은 적응하여 쩌렁쩌렁하게 인사를 하고 내리고 있다.


사람이 많은 공간에서 목소리를 크게 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많이 어색했지만, 나는 그간 '고마움'이라는 감정 자체에 어색함을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따지고 보면 승객은 운전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운전기사는 본인의 의무를 할 뿐인데 여기에 감사함이 끼어들 틈이 있나? 그냥 각자 도리를 다하면 그만 아닌가? 이게 지금까지의 내 기본적인 감정 혹은 사고방식 틀이었다.


최근 우연히 박용철 님의 "감정은 습관이다"라는 책을 읽게 되었는데, 이런 나의 태도, 그러니까 고마움에 인색했던 무미건조한 나의 감정이 낮은 자존감과 우울감, 걱정, 불안 등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삶의 소소한 행복과 즐거움을 발견하기 위해서 평소 감사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을 제안하는데, 단순히 도덕책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뇌과학적으로 효과가 있음을 설명하고 있었다. 행복과 직결되는 호르몬인 세로토닌이 실제로 사람이 고마움을 느낄 때 뇌에서 많이 분비된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는 것이다. 햇빛을 쬐고 숙면을 취하면 분비된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특정한 감정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호르몬이 분비된다는 게 너무나 신기할 따름이었다.


나는 타인에게, 혹은 내 주변 상황에 고마움을 잘 느끼는 편이 아니었고, '마땅히 해야 할 도리' 또는 '당연히 있어야 할 존재', 이렇게 인식해 왔다. 그런데 이런 사고방식은 결국 근본적으로 나 스스로에게도 야박해질 수밖에 없는 감정패턴이었다. 나에게도 더욱 엄격해지고,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나로부터 부족한 점만 자꾸 찾게 되었다. 내 존재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더 큰 성과를 내야만 했는데, 결국 이런 내 감정습관 때문에 더 견디지 못하고 지쳐 고꾸라진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감사할 줄 모르는 이런 태도는 끊임없는 불평과 비판, 부정적인 감정과 걱정들로 이어졌고, 내 주변 사람들까지도 지치게 만들었다. 이렇게 보니 새삼 고마움이라는 감정이 경외스러웠다. 알고 보니 무진장 대단한 놈이었다.


신선한 충격을 받은 후, 책의 조언대로 내 주변에 고마워할 것들을 찾아 감사하는 연습을 매일 하기로 다짐했다. 등굣길 햇빛을 쬐며 걷는 30분 남짓 시간 동안 고마움의 대상을 찾아보고, 고마운 이유에 대해 생각하며 감사의 인사말로 각 대상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로 말이다. 많이 어색했고 좀 오글거리기도 했지만, 가까운 곳에서부터 하나씩 찾다 보니 고마운 것들이 계속 찾아졌다. 음악을 들으며 걸었는데,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도 사실은 감사한 일이었고, 이렇게 좋은 음악을 만들어준 아티스트에게도 고마웠고, 그러자 새삼 아무 통증 없이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내 몸 상태도 진심으로 감사할 일이었다.

(학교가는 길 들었던 올드팝 - Doris day, "Whatever will be, will be(Que Sera, Sera)" https://music.youtube.com/watch?v=r1C69fzfGBM&si=dIuy2foYOs4tL2hm)


아직은 여전히 나에게 버거운 상황이나 자극이 올 때면 오랜 시간 굳어져버린 감정 연결고리들이 불쑥 튀어나왔다. 하나의 새로운 습관을 만든다는 건 내 뇌 속의 연결고리를 리모델링하는 일이라 꽤 긴 시간이 필요한 듯했다. 하지만 책에서 이야기해 준 것처럼 새로운 감정습관이 놀랄 만큼 행복한 미래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꾸준히 훈련해보려고 한다. 나를 둘러싼 세상에, 그리고 나 자신에게 늘 고마워할 줄 아는, 세로토닌으로 가득 찬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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