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으로, 오랜 친구를 만나러

여전히 곁에 남아준 사람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by 유연

가을방학을 맞이하여 삼 박 사일로 짧게 뉴욕 여행을 떠났다. 관광보다는 오랜 친구를 만나러. 12년 전 한 학기 동안 교환학생으로 네덜란드 내 한 대학교에서 지낸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외국인 학생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한 명씩 현지 학생 멘토를 붙여주었는데 그게 바로 이 친구였다. 이 친구는 독일인인데 네덜란드 학교로 유학을 왔었고, 내 생에 처음 한국 밖 세상을, 그리고 유럽의 문을 친절하게 열어준 고마운 아이다.


사실 교환학생 기간 동안 다른 유럽국가들을 여행 다니느라 학교수업을 가지 않았고 (결국 모두 F를 받았…) 그래서 따로 친구들을 사귈 기회가 없었다. 이 와중에도 여행을 하지 않을 때면 네덜란드 작은 항구도시에서 이 친구와 시간을 보냈는데, 말이 잘 통하지 않음에도 그냥 그 시간이 즐겁고 재밌었다. 학기가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이 친구의 고향집, 독일 함부르크에 놀러 갔다. 크리스마스 마켓을 함께 누비며 독일 전통 크리스마스 쿠키를 굽고 핫쵸코에 마시멜로를 녹여 마시며 온 마음이 따스함으로 가득 차올라 (살도 함께!) 귀국했었다.


그 이후로도 꾸준히 연락을 했고, 취업 후 긴 추석연휴가 있었을 때 이 친구와 함께 캐나다로 여행을 갔었다. 그 후 친구도 일을 하게 되고 나도 바빠지자 그 후로 10년간 만나지 못했다. 그래도 간간이 소식을 전하며,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안녕을 기원했다.


작년에는 이 친구의 동생 내외가 한국으로 여행을 오게 되어 동생에게 가볼 만한 곳을 안내해주기도 했었다. 그리고 정말 신기하게도, 내가 미국으로 mba를 가게 됐다고 이야기하자 원래 호주에서 일하던 이 친구가 미국 지사로 지원하여 올해 여름 우리 둘 다 미국에 오게 되었다. 나는 서부 끝자락 샌프란시스코에, 친구는 동부 끝자락 뉴저지에. 그리고 10년 만에 친구를 보러 서쪽에서 동쪽 끝으로 떠나는 비행기에 올라타게 됐다.


인연이라는 게 얄궂을 때도 있지만 정말 감사한 선물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의 가까운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씩 떠올려보았다. 하나같이 긴 세월을 함께 한 사람들이었다. 내가 의도하거나 노력해서 얻어진 관계가 아니었다. 우연히, 상황이, 나에게 던져준 뜻밖의 사람들이었는데, 그 사람과의 주파수가 잘 들어맞으면 조화로운 음률이 흘러나왔다.


예전에 처음 입사했을 때 한 지사장님께서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다. 사람 인연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고. 그 조언이 잔잔하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었는데, 직원 한 사람 한 사람 처한 사정을 생각하고 배려해 주시던 인자한 분의 말씀이어서 더 진심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지금 미국으로 와 나 스스로에 대해 돌이켜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깨달은 것은,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즐가운 시간을 보내는 것, 이것이 정말로 내가 추구하는 인생 목표였다는 점이다.


바쁜 일상에 치여 그릇된 허상을 좇다 보니 정말 내가 원했던 바를 잊은 채 지냈었는데, 먼 타지에 홀로 떠나와보니 가까이선 잘 보이지 않던 인연의 소중함이 어떤 크기로 자리 잡고 있었는지 잘 볼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딱히 별 거 없는 우리네 인생을 그래도 계속 이어가게 해주는 힘은 결국 내 옆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나온다는 걸 잊지 않기를.

keyword
작가의 이전글거리두기 - '걱정'과 '너'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