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지는 조언은 가볍게, 건네려는 조언은 무겁게
미국 MBA에 오기 전후로 주변으로부터 다양한 조언을 듣고 있다. 조언의 범위는 유희와 자기 계발을 모두 아우르는데, 내가 느끼기에 조언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내 시간과 노력을 더 필요로 하는 조언과 오히려 에너지를 아끼라는 조언으로 구분되는데, 어떻게 보면 전자는 더하기, 후자는 뺄셈의 조언이겠다. 그런데 이 더하기의 조언을 들을 때마다 굉장히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는 나를 종종 발견하곤 했다.
특히, '나는 너 나이 때, 혹은 너 상황일 때 못했지만 너는 꼭 해' 식의 조언이 사뭇 폭력적이라고 느껴졌다. 왜 그들은 하지 못했던 걸 나는 해내야 하는 걸까. 그들이 그 나이 때, 그 상황일 때 못했던, 혹은 안 했던 이유가 분명 있을 텐데. 수월하게 해낼 수 있는 것이었다면 그들도 분명 해내지 않았을까. 무언가 노력을 기울여 극복해야 하는 역경이 존재했으니 그들도 실패했을 텐데, 이를 상대방에게 권유하는 것이 그 사람을 진정 위해서 하는 조언인 걸까. 늘 의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조언을 들을 때마다 내가 경직되는 건 그 조언들이 예의 없다고 느껴져서이다. 그 조언을 하기 전에 우선 상대방이 현재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추가적인 에너지를 쏟을 여력이 되는지 먼저 물어보는 최소한의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인지 미국에 와서 이런 일방적인 조언을 들을 때마다 날을 세우고 그 조언을 내가 왜 실천할 수 없는지 날카롭게 받아치곤 했다.
물론 우리가 조언을 너무 쉽게 일방적으로 던지는 경향이 있고, 그래서 조금 더 조심스럽게, 한번 더 상대방 입장을 헤아리고 이야기하는 자세가 필요한 건 사실이다. 그리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폭력적인 훈계를 쏘아붙이지 않기 위해서 늘 신경 쓰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매번 이런 조언을 들을 때마다 흔들리고 상처받는 나 역시도 좀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충고에 대해 발작버튼이 눌리는 건 아마도 나에게 던져지는 모든 퀘스트들을 다 해내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의무감 때문일 것이다. 분명 나는 그 충고를 따를 여력이 없다는 걸 혹은 그 충고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 켠에서는 그 충고가 그리는 근사한 결과를 이루어내야만 나의 가치가 상승 또는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해 왔던 것 같다. 그래서 한 귀로 흘리지 못하고 그 조언이 계속 내 머릿속을 배회하도록 내버려 두니 그 말들이 점점 더 커져 무거워지고, 이 무거운 돌멩이를 맞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개구리가 되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는 근본적으로 나에 대한 확신과 존중이 부족함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숱한 조언들이 던져지더라도 내가 지향하는 방향이 확고했더라면 그 조언들은 그저 또 하나의 다른 의견 정도로 가볍게 듣고 참고하는 정도로 가중치를 낮춰서 받아들일 수 있었을 텐데. 결국 나를 더 들여다보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아직 부족했다는 것을 다시금, 조금은 아프지만, 깨닫게 되었다.
그래도 돌멩이에 맞아본 경험 덕분인지 나 스스로 조언에 대해 좀 더 신중해지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이 조심성은 혹시 모를 또 다른 개구리를 지켜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 작은 바람은,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조언을 무겁게 느끼는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은 조언은 지난날의 실패를 후회하는 자기 한탄에 지나지 않을 것이고, 이는 조언이 아닌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 그리고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 오히려 상대방에게 더 큰 깨달음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와 같은 개구리들은, 자신을 좀 더 아끼는 마음을 길러 돌멩이를 빗방울로 바꿔보도록 노력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