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진실했을 때 결과와 상관없이 미소 지을 수 있는 이유
추수감사절을 하루 앞둔 수업에서 조별발표가 있었다. 사실 조에서 유일한 비영어권 출신이었던 나는 내가 발표를 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인 세 명이 추수감사절 동안 미리 고향에 가느라 수업을 빠진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최소 2명 이상 발표를 해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부득이 내가 전체 발표 중 절반을 도맡게 되었다.
일주일 간 이 발표의 존재는 나를 짓눌렀다. 3분이 넘는 시간을 혼자 영어로, 그리고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미국 테킬라 브랜드에 대해 마케팅 전략을 시연하는 것은 큰 부담이었다. 무엇보다 반에서 영어가 서툰 게 나 포함 두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외국인이더라도 영어권에서 줄곧 살거나 일을 하다 온 학생들이 대부분이었기에 그들에 비해 수준이 너무 떨어질까, 무능력한 아이로 학우들로부터 낙인찍힐까 걱정이 몰려왔다.
스크립트를 모두 외워 아이 컨택트를 하며 발표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한국어로도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발표하는 걸 하지 못했던 나다. 사실, 오래도록 발표 울렁증이 있었다. 많은 사람이 나를 쳐다볼 때면 숨이 막혀오고 목소리가 떨려와서, 회사에서도 가끔 발표나 강연을 해야 할 때면 떨리는 목소리를 겨우 억누르며 황급히 끝내곤 했다. 그래서 비단 언어 때문이 아니라 발표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발표를 앞두고 이틀간 직접 쓴 스크립트를 읽고 또 읽었다. 타이머로 시간을 체크하고, 문장들이 입에 붙을 때까지. 제한된 발표 시간 안에 많은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해야 하는데 다른 학우들은 말하는 속도가 정말 빨랐고, 나는 한국어조차 말이 느린 편이었다. 현실적으로 그들의 속도처럼 말을 하는 건 불가능했기에, 최대한 가능한 범위에서 전달하도록 연습했다.
발표시간이 다가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 조가 첫 번째 발표를 하게 되었다. 같은 조 파트너가 먼저 발표하기 시작했다. 스크립트 따위 없었고, 마이크를 들고 한가운데에서 이리저리 사람들과 눈을 마주쳐가며 미친 속도로 발표를 해주었다. 그리고 약 3분이 지난 후 나에게 마이크를 건네주었다. 물론 스크립트를 외울 정도로 연습하긴 했지만, 마이크를 건네받자 머리가 하얘졌다. 그리고 눈을 마주치는 게 공포스러웠기에 내 앞의 노트북에 띄어놓은 확대한 스크립트에 시선이 돌렸다.
최대한 내가 연습한 속도로, 중간중간 힐끗힐끗 교실 안을 둘러보며 한 두 명씩 눈을 마주치려고 노력했다. 말하다가 눈이 마주치면 순간 목소리가 떨려오기 시작했지만,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리면서 떨림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Thank you"를 끝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던 3분 남짓 발표 시간이 끝이 났다.
내가 어떻게 말을 했는지 기억조차 안 났다. 같은 파트너에게 어땠냐고 묻자 그 아이는 나를 위로해 주었다. 너는 비영어권 출신으로 영어를 신경 써야 하는 상황에서 막힘 없이 말을 했다, 그걸로 충분히 잘했다고 생각한다, 결과가 나쁘더라도 우리는 같은 조로 발표를 한 거기에 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 등등 따뜻한 말을 해주었지만 이 말들을 잘 곱씹어보면, 결국은 이 아이, 혹은 다른 학우들 기준에서 내 발표는 절대적으로는 열등했다.
다른 조들의 발표가 이어졌고, 어쩜 저렇게 농담과 바디랭귀지를 자유자재로 쓰며 빠른 속도로 말을 할 수 있는지 감탄을 자아냈다. 한국에서조차 난 저렇게 하지 못했을 거다. 그렇게 나의 모자람을 한껏 각인당하고 수업이 끝이 났다. 수업이 끝난 뒤 내가 발표로 걱정하는 걸 알았던 몇몇 친구들이 나에게 발표 잘했다고, 자신감 있었다며 위로일지 모를 칭찬을 해주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학교 시스템에 수업 녹화본이 올라와서 내가 발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강단 뒤로 자그마한 아이가 마이크를 꼭 쥔 채 고개를 좌우로 돌려가며 한 마디 한 마디 공기 중으로 음파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비록 다른 학우들에게는 많이 서툴고 부족하게 보였을지언정 나는 그 아이가 참으로 대견했다. 더듬지 않았고, 틀리지 않았고, 간간이 사람들과 눈도 마주쳤다. 마음 한켠이 가득 차올랐다.
아마 다른 아이들이 이 발표 준비에 들인 시간의 두 세배는 들였을 것이다. 비단 발표뿐만이 아니었다. 이 수업에서 얼마 전 제출해야 했던 두 장짜리 쓰기 과제 역시 나는 하루를 모두 쏟아부어 작성하고 제출했다. 하지만 그룹채팅에서 그들이 나누던 대화로 미루어 짐작컨대 다른 학우들은 마감시간 몇 시간 전 대충 20장짜리 케이스를 휘리릭 읽고 2장짜리 페이퍼를 후다닥 써서 제출하는 듯했다.
학업적 요구가 가해지는 중력이 나에게 두 세배 정도 큰 듯했지만, 그래서 다른 아이들이 빠르게 과제를 끝내고 바에 가서 놀 때 나는 여전히 과제를 해야 할지언정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 그래야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나에게 떳떳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발표가 끝난 후 이틀 뒤 쓰기 과제 평가 결과가 나왔다.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는데, 심지어 중간값보다 훨씬 높은 점수였다. 그리고 평가 멘트 중 "Exceptionally thoughtful and well reasoned"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울컥했다. 높은 점수를 받아서가 아니라, 마치 '열심히 한 거 알아, 수고 많았어'로 들렸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늘 내가 들이는 노력은 최대한 결과 대비 효율적이어야 한다는 기준을 가지고 살았다. 그리고 이 기준에 꽤 부합하며 지내왔었는데, 미국에 와서 나의 한계와 부족함을 새삼 느끼면서, 나의 이런 시선이 누군가에게는 어쩌면 소리 없는 꾸짖음, 혹은 낙담이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건 나 스스로조차 결과만을 좇고 과정은 아무것도 아닌 걸로 치부하고, 그래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그 시간이 주는 충만함을 놓쳐버리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다.
드라마 "인간실격"에서 '세상에 태어나 무엇이 되는 것보다 무엇을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던 주인공의 독백이 다시금 떠올랐다. 내가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말로 진실했다면, 꼭 근사한 무언가가 되진 못했더라도 나는 어느새 따뜻함과 흐뭇함으로 가득 차있을 것이다. 남은 알아채지 못하더라도, 내가 어떤 마음으로 얼마 큼의 진심을 쏟아부었는지 적어도 나는 알 테니까. 그리고 어쩌면 자신을 사랑하는 첫걸음은 스스로를 한 순간의 사진이 아닌 그 순간까지의 영상으로 바라봐주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사진 기사보다는 촬영 감독이 되어 애정 어린 눈으로 나를 보듬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