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게 아니다

익숙해졌거나, 미처 알아채지 못했을 뿐

by 유연

미국에서의 가장 큰 애로사항은 치킨이다. 사실 한국에서 나의 힐링포인트는 집에서 편한 잠옷 차림으로 애정하는 치킨집에서 배달을 시켜 여전히 바삭하고 따뜻한 치킨을 먹는 것이었다. 배달비용이 크지 않고, 배달이어도 음식이 식지 않으며, 무엇보다 음식 자체도 맛있다. 수많은 치킨 선택지와 사이드 메뉴까지. 긴 하루의 피로를 단번에 녹여주는 나의 소울 푸드였다. 각각의 브랜드 치킨들의 매력이 달라서 그때그때 끌리는 곳에서 배달을 시켰고, 속초의 유명 닭강정 집이 백화점 팝업스토어에 올 때면 늘 달려가 두 박스씩 사 오곤 했다.


그런데 미국에 오니 더 이상 치킨힐링을 누릴 수 없게 되었다. 기본 배달비 자체도 비싸지만, 심지어 배달기사에게까지 팁을 줘야 했다. 지금까지 딱 한 번 배달로 치킨을 시켜보았는데, 그때는 배달기사 팁을 주지 않으면 배달 순위에서 밀리거나 늦게 받을 수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나의 첫 미국 배달 치킨은 그렇게 두 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했고, 이미 차갑게 식은 채 눅눅해져 버린 치킨은 힐링이 아닌 분통 터짐을 더해주었다.


배달을 받을 때 얼핏 보니, 따로 보온 가방에 음식을 넣고 배달하는 게 아니라 그냥 차 안에 비닐봉지 포장째로 그냥 놓고 여러 집을 돌며 배달을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치킨 자체도 너무 비쌌다. 한 마리 기준으로는 평균 $35 정도 하는 것 같은데 치솟는 환율을 감안하면 거의 5만 원대인 것이다. 이렇게 첫 배달경험을 이후로 다신 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에서 먹던 다양한 치킨이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여태껏 나에게 당연했던 치킨힐링을 더 이상 내게 가능한 선택지가 아니게 되었다.


비단 치킨뿐만 아니라 미국은 서비스가 포함되는 영역의 가격이 매우 비싸다는 인상을 받고 있다. 마트에서 식재료를 살 때는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지만, 식당에 가면 음식 가격은 순식간에 한국의 두 세배를 뛰어버린다. 미용실이나 다른 서비스 비용 역시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 가격대인데 가끔 이 가격들을 볼 때면 내가 추가로 지불해야 하는 이 가치들이 어쩌면 한국에서 당연시 여겨져 적절히 보상받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분명 한국의 음식뿐만 아니라 제품, 서비스까지 더 좋은 질을 가지고 있음에도 훨씬 싼 게 사실이다. 이것이 효율성에서 오는 가격 인하라면 다행이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누리고 있는 힐링과 안락함과 만족감들이 사실은 그 제품과 서비스가 우리에게 도달하는 과정에서 지불되지 못한 건 아닐까. 누군가의 노력과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고 있는 건 아닐까.


뉴스에서 종종 보이는 과로사, 살인적인 스케줄로 인한 산업재해들을 보면 우리가 지금 당연히 누리는 것들이 당연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미국에서 마주하는 이 가격대들이 모든 경제참여자들에게 적당한 가치를 지불하기 위한 최소 가격일지도. 물론 이 높은 가격의 수혜자가 일부에 국한된다는 걸 감안할 때 이곳 역시 분배의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리고 한국과 비교했을 때 절대 이 돈을 지불할 만큼의 수준이 아니기에 나의 소비를 합리화하기 위한 논리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혹은 어디선가에서는, 당연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특히 회사에서 나를 지치게 했던 건 절대적인 업무량 보다도, 나의 노력을 당연시 여기는 주변의 인식이었다. 너는 잘하니까, 네가 많이 해왔으니까, 너는 더 빨리 하니까, 등의 이유로 회사에서 줄곧 더 많은 업무량을 받곤 했고, 이것이 나의 당연한 평균 업무량이 되어버리면서 더 이상 나의 노력은 고마운 것이 아닌 당연한 것이 되었다. 그리고 그 상향평준화 되어버린 기준치를 충족시키기 위해 늘 수면 밑으로 짧은 다리를 휘저어야 했다. 사실 나는 그리 똑똑하지도 않고 그만큼 해내려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노력과 헌신을 해야 하는데, 힘든 내색을 잘 안 하다 보니 그저 결과만 보고 수월하게 성과를 내는 걸로 인식을 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누군가를 당연시 여기는 것은 한 사람을 어느 순간 깊은 바닷속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들 만큼 무서운 것이다.


관계에 있어서도 서로를 당연시 여기는 것은 파괴적이다. 가족의 헌신이, 친구의 배려가 당연해지는 순간 조금씩 서로를 연결해 주던 관계가 삭고 어느 순간 탁 하고 끊어져버릴 수 있다. 나의 이기심으로 여러 줄이 끊기거나 끊어질 위기를 겪은 후, 상대방을 당연시 여기지 않으려고 조심하려고 애쓰곤 있었다. 그리고 여러 번 언급했던 것처럼 미국에 와서 지금까지 내 곁에 있던 사람들의 당연하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이토록 두려운 당연시 여김의 굴레에서 벗어나 오롯이 그 가치를 인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안타깝지만 어떤 특별한 요행은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익숙해지는 것을 늘 반문해 보기,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지 않기, 소중한 가치에 상응하는 만큼 나의 무언가도 내어주기. 뻔하지만 정작 실천하기는 쉽지 않은 이러한 자기 성찰만이 당연하지 않은 존재들을 지치지 않게 힘을 실어줄 것이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는 사고방식은 우리로 하여금 미쳐 보지 못했던 누군가의 배려와 가치를 발견하게 해 줄 것이다.


P.S. 치킨으로 시작해서 생각이 경제와 관계, 자기반성까지 번져나간 것을 보며, 치킨이 여태껏 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는지 새삼 깨닫는 중이다. 정말,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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