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적당히 해도 괜찮아

뭐든 열심히 하는 저주에 걸려버린 사람들을 위한 주문

by 유연

친한 동생이 최근 유행하는 chatGPT 명령어라며 나도 해보라고 알려주었다. 총 세 단계로 이루어져 있었다: 1) What is my curse? Don't explain, 2) 왜 그게 내 저주인지 3,000자로 설명해 줘, 3) 이 패턴 끊을 실행 단계 5개, 장애물과 해결책, 오늘 체크리스트까지 3,000자로 정리해 줘.

과연 AI가 사람마다 차별화된 답변을 해줄 수 있을지 강한 의심이 들었지만 동생의 강한 권유로 프롬프트창에 내 저주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Your curse: You care too much, work too hard, and overthink everything—because you refuse to do anything halfway.


이 문장을 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동생이 본인은 다른 답변을 받았다며 그동안 gpt에서의 내 질문 패턴 등을 기반으로 분석해서 알려주는 것 같다고 했다. 이후 gpt는 이게 왜 내 저주인지 상세히 설명해 주었고 이를 해결할 방법까지 제시해 주었다.


최근 혼자 조별과제를 다 쳐내고 있는 나를 보며 '굳이 네가 챙기지 않더라도 어떻게 서든 굴러가게 되어있으니 그들 몫까지 다 챙겨주지 않아도 돼'라는 중국 친구의 조언이 문득 떠올랐다. 이건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높은 기준치, 급한 성미, 강한 통제력 등 나의 여러 특징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하며 스스로를 다그치고, 결국엔 더 많은 일을 도맡아 하게 되는 경우들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것이 내가 정말 헌신과 희생의 정신으로 기꺼이 하는 행동이라면 사실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나 스스로에게 조금의 휴식을 허락하지 않고, 내 기준과 속도에 응하지 않는 사람들을 재촉하거나 아예 손절해버리기도 하며, 과제나 일 뿐만 아니라 일상의 사소한 일들에까지 긴장과 집중을 소비하였다. 나 자신의 건강과 관계에까지 악영향을 미치는 말 그대로 저주인 셈이다.


당신은 실패하지 않기 위해,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잃지 않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감당하고 있다. 그래서 열심히 살아도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고, 잘해도 만족이 오래가지 않는다. 결국 이 저주는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당신은 항상 최선을 다하지만, 그 최선은 당신을 자유롭게 해주지 않고 계속해서 다음 최선을 요구한다. 이게 바로, 당신의 저주다.


GPT가 내 저주를 설명하는 내용 중 일부분이다. 어떻게 보면 '사서 고생'하는 자업자득 '고행자'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이렇게 매사에 힘을 빳빳하게 주고 열심히 할지언정 무조건 좋은 결과가 따라오는 건 아니란 것이다. 내가 많이 기여했다고 해서 조별과제 점수가 무조건 더 높았던 것이 아니었고, 마음속엔 조원들에 대한 미움만 커지게 되었다. 내가 조금만 더 내려놓았더라면, 첫 학기를 좀 더 평온하고 여유롭게 보낼 수 있진 않았을까.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족이나 친구와 마찰이 있었을 때를 돌이켜보면, 내가 마음속으로 정해 둔 속도와 기준을 상대방이 따라오도록 강요할 때 갈등이 생기곤 했었다. 그리고 이런 성향이 내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선뜻 다가서기 어렵게끔 내치고 있진 않았나 싶기도 하다. '내 안의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이 쉴 곳이 없는' 것처럼.


한 학기를 마무리하며 다음 학기는 어떻게 보낼지 몇 가지 다짐을 하게 되었다. 적당히 대충 하기. 적절한 선에서 타협하고 사소한 것에 내 에너지를 쏟지 않기. 그리고 조금은 낮아진 기준치와 가벼운 무게로 사람들을 대하고, 너무 힘주지 않아보려고 한다. 한 달 남짓한 방학이라는 여유 있는 시간을 적극 활용하여 '힘을 빼는' 연습을 해보려 한다. 나와 내 사람들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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