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눈과 뉴욕

언젠가 또 다른 뉴욕을 발견하길 바라며

by 유연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겨울방학의 끝자락을 뉴욕에서 보내고, 봄학기를 감기와 함께 시작하였다. 뉴욕에서의 시간을 기록하고 싶었지만 감기약에 취해 수업을 다녀와서는 계속 쓰러져 자다 보니 이제야 뒤늦은 뉴욕의 겨울을 기록하게 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뉴저지에 사는 내 오랜 친구 집에 다시 놀러 가게 되었다. 가을방학 때 친구를 처음 방문한 뒤 바로 봄방학 비행기 티켓을 끊었었을 만큼 뉴욕의 가을은 매력적이었었다. 뉴욕의 겨울은 어떨지 설레는 마음으로 밤비행기에 올라탔다.


친구가 일하는 동안 지난번 최애 장소였던 웨스트빌리지를 비롯해 지난번 가보지 못했던 곳들까지 구석구석 매서운 겨울바람을 뚫고 돌아다녔다. 캘리포니아에 있다가 뉴욕에 오니 확실히 많이 추웠다. 물론 한국에서 시베리아 한기에 단련된 터라 충격이 크진 않았지만, 바람이 많이 불어서 그런지 걸어 다닐 때 체력 소모가 가중되었다. 그렇지만 칼바람을 감내할 만큼 뉴욕의 겨울거리는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점심으로 쉑쉑버거 1호점을 방문했다. 사실 쉑쉑버거는 신랑과 연애할 당시 즐겨 먹던 메뉴였다. 그 당시 쉑쉑버거는 우리에게 꽤나 충격적인 곳이었는데, 매번 먹을 때마다 고소한 번과 수제패티, 그리고 바닐라 쉐이크와 감튀에 감탄하며 먹곤 했었다. 나에겐 그만큼 꽤 의미 있는 프랜차이즈였고 그 시작이 이곳 뉴욕이라는 점이 흥미로워 호기롭게 찾아갔다. 지도 속 도착지에 도달하고 나서야 이곳이 실내공간이 없는 야외 지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너무 많이 걸었고 배도 고팠던 터라 쉑버거를 주문하고 최대한 햇빛이 잘 내리쬐는 테이블에 앉아 언 손가락을 핫팩으로 번갈아 녹이며 현 고장에서 원조 쉑버거 하나를 먹었다. 너무 추웠지만, 세상에서 가장 낭만 있는 쉑쉑버거 지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다음 장소로 향했다.


지난번 가보지 못했던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가서 다시금 모네 작품 앞에서 발길이 멈추게 되었다. 내가 모네를 좋아한다는 것을 이번 방문을 통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모네 작품을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곳이 두 곳(현대미술관과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나 있다는 사실은 뉴욕을 더욱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주말에 친구와 함께 자연사박물관을 보러 가는 길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박물관을 모두 관람하고 나오자 뉴욕은 설원으로 탈바꿈한 상태였다. 박물관에서 나오자마자 펼쳐지는 새하얀 센트럴파크는 낭만적이었다. 영화 속에서나 보던 눈 내린 센트럴파크를 직접 거닐게 되다니, 믿기지 않았다. 친구와 캐롤을 불러가며 센트럴파크를 가로지르던 그 시간은 정말 황홀했다.


친구가 감기를 앓기 시작했고 날씨도 추운 탓에 지난번 방문했을 때보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함께 집에서 식사를 하고, 친구가 직접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고, 영화를 보았다. 내가 뉴욕을 좋아하는 건지, 뉴욕에서 친구와 보내는 시간을 좋아하는 건지 헷갈리곤 한다. 물론 뉴욕 거리를 거닐 때면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걸 보면 분명 뉴욕 자체를 좋아하는 건 맞지만, 이렇게 오랜 친구와 특별히 하는 게 없어도 피식 웃으며 보내는 시간이 없었다면 이곳에 그만큼 애정이 갔을지는 확신하기 어려웠다. 이렇게 긴 세월이 흐른 뒤에도 함께 있는 것이 어색하지 않고 재밌는 친구가 지금 여기 함께 할 수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이곳에 있는 동안 코코 멜러스의 ‘블루시스터즈’를 읽었다. 뉴욕에서의 자매 이야기를 다룬 소설인데, 여행하는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책을 읽는 게 그 도시를 더 잘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뉴욕에서 펼쳐지는 소설을 골라 빌려왔었다. (이 책을 보고 친구가 본인도 최근 그 책을 같은 이유로 읽었다며 이래서 우리가 친구인가 보다며 한참 웃었다.) '너는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며 책임감과 중압감에 치이던 첫째 딸을 향한 엄마의 조언이 나 또한 가볍게 만들어주었다. 딸들의 인생을 축복하는 아빠의 건배사 'Go lightly'를 마음속으로 함께 따라 외치며 뉴욕에서의 시간을 마무리하였다.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온 후 학기가 시작되면서 마음이 또 시끄러워졌다. 자신의 일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열심히 하는 친구를 보고 온 후, 저마다 여름방학 인턴십을 위해 분주하게 지내는 학우들을 마주치며 다시금 조바심이 나는 듯했다. 긴 여름방학 동안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아니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면 나는 도망쳐왔던 회사 일을 조금이나마 좋아할 수 있게 될까.


미국에 온 후 많은 생각과 시간을 보내며 조금은 가벼워졌음을 실감하는 지금, 가장 두려운 건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다시 끝없이 침잠하는 그 무거운 상태로 회귀하는 것이다. 지금의 내 인생이 내가 작가로 써 내려갈 수 있는 소설이라면 여름방학 동안 운명같이 내 인생의 재능이나 일을 발견하여 한국에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해서 즐겁게 일하며 살았단다는 식의 내용을 썼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이 막상 그렇지 못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에 돌아간 후 나의 일상이 내가 꿈꾸던 그림과 많이 다를지라도 최소한 도망칠 때만큼 무거워지지 않게 나를 대비 또는 단련시키는 게 어쩌면 내가 여름방학동안 할 일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그냥 좀 더 지켜보려고 한다. 내가 미국 유학을 가게 될 줄, 십여 년 만에 다시 독일친구를 만나게 될 줄, 뉴욕을 사랑하게 될 줄, 모네를 좋아하게 될 줄 전혀 몰랐던 것처럼, 이리저리 천천히 부유하다 보면 또 다른 뉴욕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니.


이런 점에서 삶은 꽤 살아봄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또한 나에게는 상당히 큰 사고방식의 전환이라는 점에서 나도 모르는 새 나를 가라앉지 않게 지켜 줄 구명조끼를 지니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 조바심은 잠시 미뤄두고, 내가 마주하는 지금의 순간순간을 차근차근 음미해 나가자. 뉴욕에서 돌아와 새해를 어떻게 헤쳐나갈지 갈피를 잡게 되었다는 점에서, 겨울 속 뉴욕은 나에게 나침반이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시애틀, 만추(晚秋)와 초동(初冬)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