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만추(晚秋)와 초동(初冬) 사이

문학과 커피의 도시에서 곱씹어 본 사랑의 의미

by 유연

멜로 영화를 썩 좋아하지 않지만, '만추'는 내가 손가락 안에 꼽는 영화 중 하나이다. 영화 속 느리고 쓸쓸하고 잿빛의 축축한 분위기가 이후 먹먹함으로 번져 한동안 '만추앓이'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배경이 바로 시애틀이었다. 만추라기에는 조금 늦은, 초동에 가까운 지금, 그때 그 잔상을 몸소 느껴보고자 시애틀로 향했다.


시애틀행 비행기에 타기 전 찾아본 이동진 님의 영화 분석 영상에서 평론가님은 이 영화를 이렇게 한 줄로 요약하였다.

"결국, 사랑은 시간을 선물하는 일"

영화 속 두 남녀의 모습을 단번에 관통하는 한 마디였다. 그리고 시애틀에서의 나의 시간 또한 상당 부분 설명해 주는 의미 있는 한줄평이었다.


어쩌면 미국에서의 첫 여행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지난가을 뉴욕에 다녀오긴 했으나 친구 집에서 지냈다 보니, 여행이라기보다 친구와의 재회에 더 가까웠다. 시애틀에 내리자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고, 내쉬는 호흡에 하얀 입김이 번져갔다. 잿빛의 축축한 한기, 평소라면 썩 유쾌하지 않을 날씨였지만 영화 속 분위기를 다시금 느낄 수 있어 오히려 반가웠다.


호텔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방에서 시애틀의 야경이 한눈에 보였고, 스마트스크린 연결을 지원하는 대형 TV가 설치되어 있었다. 반년만에 TV로 영상을 보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리고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으로 향했다. 비수기에 궂은 날씨, 애매한 시간에 가니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클램차우더로 유명한 가게에서 줄을 서지 않고 수프 한 그릇을 먹을 수 있었다. 가리비 차우더를 주문했는데 차가워진 몸을 덥히기에 더할 나위 없었고, 고소하고 따뜻했다. 시애틀은 연어와 해산물이 유명하여 포케집이 많았는데, 포케 한 그릇을 포장해서 호텔로 돌아왔다. 큰 화면의 TV, 옆에서 보이는 시애틀 야경, 그리고 포케. 너무나 만족스러운 순간이었다.


다음날 호텔 바로 앞 유명한 카페에 모닝커피를 마시러 갔다. 커피를 좋아하고, 카페를 가는 것도 매우 좋아한다. 시애틀은 커피의 도시라고 종종 일컬어지는데, 스타벅스 1호점이 탄생한 곳이기도 하고, 별명에 걸맞게 유서 깊은 카페들과 힙한 카페들이 즐비했다. 샌프란시스코에는 사실 카페가 그리 많지 않고, 맛있는 커피를 발견하기 쉽지 않다. 이런 점에서 수많은 카페들을 가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렜다. 오트라떼 한 잔을 주문하고 책을 읽으며 한 모금 들이켰다. 부드러운 오트우유 뒤에 약간의 산미가 있는 에스프레소 맛이 넘어왔는데, 피식 웃음이 났다. 카페에서 이렇게 만족스러운 라떼를 마셔본 적이 얼마만인지. 스피커 너머로는 끈적한 R&B 플레이리스트가 흘러나왔는데, 검은색으로 뒤덮인 카페 내부와 되게 잘 어울렸다.


이후 여러 유튜브 브이로그에서 추천하는 명소, 카페, 음식점들을 다니며 시애틀을 누볐다. 특히, 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학도시답게 오래된 책방이 많았고, 공립도서관마저 규모가 상당했다. 이렇게 이리저리 목적지를 찾아가면서 문득 해방감이 느껴졌다. 내 뜻대로 부유하는 이 자유로움이 내가 여행에서 좋아하는 면모 중 하나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동진 님 한줄평처럼 사랑이 시간을 선물하는 일이라면, 여행 또한 애정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의 상당한 시간을 한 도시를 탐험하는 데 쏟는다는 점에서 여행은 그 도시에 대한, 그리고 그 도시 속에 존재하는 나에 대한 사랑을 전제하는 걸 수도 있겠다 싶었다.


시애틀은 역사가 오래된 가게들이 많았다. 1920년대에 문을 연 카페와 베이커리 가게들이 아직까지도 운영이 되었고, 이런 가게들에 들러 그곳의 연대기를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수많은 역사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하나는 수많은 이민자들이 시애틀에 정착해 생계를 일구기 위한 노력이었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커뮤니티 공간을 조성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점이다.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 본사가 있는 고층 신축 빌딩들 사이로 옛 시장과 가게들이 같이 어우러진 매력 있는 도시였는데, 서울 을지로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시애틀에서의 시간을 온전히 누리면서 점점 이유 모를 죄책감이 몰려왔다. 일이 바빠 주말에도 집에서 작업하시다 눈병과 몸살에 걸린 아빠, 이 와중에 평소 맨날 집밥만 먹느라 지겹고 힘들었을 텐데 마음껏 맛있는 거 많이 사 먹으라고 독려해 주는 엄마, 매일 지옥철을 뚫고 일하면서도 재밌는 시간 보내라고 응원해 주는 남편. 텅 빈 호텔 방 안을 보며, 나 혼자 이렇게 순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도 되는 걸까, 내가 이런 시간을 누릴 자격이 있긴 한 걸까, 미안함이 목구멍을 조여왔다.


돌이켜보면 나는 내가 좀 더 희생하거나 고생할 때 오히려 마음이 편했던 것 같다. 목적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나를 위한 시간을 포기하게 되는 것을 표면적으로는 불평하고 욕하면서도 내심 안도했던 것 같다. 그래야 내가 이기적이지 않고 쓸모 있는 존재란 느낌을 받았던 것 같기도 했다. 미국으로 도망 오게 된 이유를 떠올려보면 나를 지치게 만든 이러한 사고방식을 극복하고자 함이었고, 내가 지금 느끼는 이 죄책감은 어쩌면 나에 대한 사랑이 부족한 데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전히 나에게 시간을 선물하는 게 미안해서는 안 됐다. 특히 그간의 내 노력과 헌신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러면 안 됐다. 내가 즐거울 수 있도록 시간을 허락하는 건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이니까. 가족에게는 미안함보다 고마움을, 그리고 또 다른 시간을 그들을 위해 쏟기. 이게 모두를 위한 사랑의 모양일 것이다.


시애틀에서의 마지막 날, 가족과 친구들을 위한 기념품을 사서 공항으로 향했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여 화창한 하늘과 햇빛을 보니 새삼 이 지역의 학교를 선택한 게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애틀의 대학교 MBA에도 합격을 했었지만 고민하다 이곳으로 결정했었었다.) 그렇지만 늦가을과 이른 겨울 사이 시애틀이 준 쓸쓸함은 나와 내 사람들을 사랑하는 법에 대해 느리지만 여러 번 들여다볼 기회를 안겨주었다. 좋은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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